눈 떠보니 50살

악! 팔이 안 올라가요! ㅠㅠ

by 홍작

1.

언제나처럼 아침이면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점심에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글을 썼다. 평소 같으면 아무 문제없을 스케줄이었는데, 오십이 되고부터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지쳐갔다. 행여 식당이 잘 돼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면, 다리를 질질 끌고 돌아와 침대에 몸을 구겨 넣었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이 지우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 몸을 갈아 글씨를 지우는 지우개처럼 나 역시 내 몸을 갈아 하루하루를 지우는 느낌이었다. 그때까지도 난 이 모든 것이 노화의 과정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그저 일이 힘들어 체력이 떨어졌으니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하고 방법을 찾았다.


체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근력 운동을 추천해 주었다. 특히 초보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는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헬스장을 등록하고, PT를 신청했다. 다행히 좋은 트레이너를 만났고, 운동을 시작한지 2개월이 지나자 근육이 조금씩 붙기 시작하면서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우선 글을 쓸 때 집중이 잘 되었고, 무엇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시시각각 치밀어 오르던 짜증도 많이 줄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할 정도로 몸이 많이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 뒷좌석에 손을 뻗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날카로운 칼이 어깨를 찌르는 듯 했다. 깜짝 놀라 손을 거뒀다가 다시 손을 뒤로 뻗으니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인가보다 생각하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동작을 하다 똑같이 비명을 질렀다. 혹시나 싶어 뒷좌석으로 손을 또 뻗으니 또 비명이 터졌다. 신기하게도 뒤로 손을 뻗는 동작만 아팠다. 뒤로 손을 뻗지 않으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바쁘기도 했고 일상 생활이 가능했기에 병원에 가보라는 남편의 말을 흘려들었다.


진짜 문제는 PT 수업 중에 터졌다. 어깨 운동을 하기 위해 PT샘의 지시대로 팔을 뻗는 순간 비명이 터져나왔다. 팔을 뒤로 뻗는 동작 뿐만 아니라 팔을 올리는 동작도 아팠다. PT샘이 내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라고 하더니 수업을 할 수 없다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순간 운동을 하지 못 하면 체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면 또 다시 마모된 지우개가 될 것 같아 두려웠다. PT샘에게 참을만 하다며 운동을 하겠다고 우겼다. 그러나 PT샘은 단호했다. 어깨 다쳐서 평생 운동 못 하는 선수들 많이 봤다며 운동을 하고 싶으면 병원부터 다녀오라고 했다. 결국 PT샘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불편할 때마다 다니던 U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이곳을 좋아한 이유는 과잉 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샘이 병에 대해 쉽고 짧게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분이라 믿을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엔 X-ray와 MRI까지 찍으라 했다. 어깨가 조금 아플 뿐인데 MRI를 찍으라니 너무 과하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의사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따랐다. 검사 결과 오십견과 목디스크를 진단 받았다. 목디스크는 알던 문제였지만 ‘오십견’은 낯설었다.


“오십견이요? 오십견이 왜 생겨요?”


“쉰 살이잖아. 오십대에 많이 걸려. 체외 충격파 치료랑 물리치료 받으면 좋아져.”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동안 의사샘의 말대로 하면 좋아졌으니까 이번에도 좋아지겠지 싶었다. 실제로 체외충격파를 받고 물리치료를 받은 후 팔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통증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단순 근육통이라 생각했다.


일주일 후 운동을 하러 갔다. PT샘에게 오십견 진단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PT샘이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운동 욕심에 괜찮다며 팔이 많이 좋아졌다며 팔을 올려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팔이 위로 올라가지도, 뒤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특정 각도 너머는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결국 수업을 못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여년간 끌어올린 체력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그 시간을 투자해서 만든 몸인데, 운동을 못 하게 되면 체력이 떨어지고, 또다시 지우개 몸으로 돌아갈까봐 두려웠다. 운동을 계속하려면 오십견을 고쳐야 했다.


다시 U정형외과를 찾아갔다. 나는 화난 얼굴로 체외충격파를 받았을 때만 잠시 좋아졌을 뿐 팔이 더 안 올라간다며 불평을 했다. 그러자 의사는 “왜 체외 충격파를 한번만 받았냐”며 오히려 나를 타박했다. 선생님이 한번 받으라고 했다고 대답하니, 갑자기 간호사에게 안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나무라기 시작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병에 대헤 쉽고 짧게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분이라는 나의 판단은 틀렸다. 어쩌면 이 분은 환자에게 관심이 없는 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체외충격파를 한 번 더 받으면 내 뼈가 으스러질 것 같아서 조용히 U정형외과를 빠져나와 다른 정형외과를 찾았다.






2.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Z정형외과였다. 의사샘이 친절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의사샘의 지시에 따라 X-RAY를 찍었더니 오십견과 거북목, 일자목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U정형외과에서 받은 목디스크 이야기가 빠졌다.


“선생님. 거북목인데 일자목이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목 형태가 그렇습니다.”


“아니, 목 형태가 거북목인데 어떻게 일자목이 나올 수 있냐고요?”


“목이 그렇게 생겼습니다.”


나는 왜 그런 목 형태가 되었는지 원인을 물었는데 Z샘은 형태만 이야기했다. Z샘에게 더 묻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내 몸이 일주일만에 바뀔리는 없고, 분명 X-RAY 사진은 같을 텐데, 같은 사진을 보고도 의사들의 진단이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의사들의 진단이 다르다면 과연 환자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당시 나는 목디스크를 다르게 이해하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암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재활 운동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Z정형외과에서도 오십견을 치료하기 위해 체외충격파 10회를 권했다. 말도 안 돼. 체외충격파를 받지 않으려고 U정형외과에서 도망쳤는데 체외충격파를 또 받으라고?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었다. 체외충격파를 받는 것 자체가 너무 아프다며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묻자, “독일에서 들여온 최신식 장비이며 가장 효과적이다. 아프지 않게 해드리겠다”이라는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결국 난 Z샘의 상술에 넘어가 10회를 결제했다.


다행히 체외충격파가 U정형외과보다 덜 아팠고, 치료 직후에는 움직임이 조금 나아졌다. 물론 하루 뒤면 원상복귀 되었지만 완치의 희망을 품고 끝까지 받았다. 약속한 10회 치료가 끝나고 Z샘을 다시 만났다. Z샘이 내 팔을 잡고 위 아래로 움직이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Z샘은 체외충격파 10회를 더 받으라고 권유했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는 그 길로 병원을 나왔다. 오십견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체외충격파 10회를 이미 받았는데 낫지 않는다면 이 건 체외충격파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내 맘대로 생각했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십견을 고치는 영상들을 찾아 하나하나 따라 하며 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3.

오십견 관련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주로 물리치료샘이나 정형외과샘, 트레이너샘들이었다. 오십견에 좋다는 동작을 알려주는 샘들이야 오십견을 앓는 분이 없어 쉽게 팔을 움직였지만, 오십견 환자인 내가 따라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웠고, 할 수 없는 동작들이 너무 많았다. 팔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너무 아프다 보니 쉽게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트레이너이자 한의사인 ‘트한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트한샘의 진료 특징은 몸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픈 곳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을 살피는 것이다. 만약 왼쪽 어깨가 아프다면 오히려 오른쪽 고관절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왼쪽 어깨가 아프다는 환자에게 트한샘이 오른쪽 고관절을 풀어주자, 왼쪽 손을 조금도 올리지 못 했던 환자가 왼쪽 손을 올리는 영상을 보고 놀랐다.


환자들 치료 영상을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증거였고, 치료 영상들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픈 어깨만 고치면 된다고 믿었는데, 어쩌면 내 어깨 역시 골반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당시 나의 몸 상태를 돌아보면 의자에 15분 이상 앉아 있는 경우 바로 일어나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고관절이 아팠다. 특히 장거리 여행시 휴게실에 도착해 화장실을 갈 때마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어깨 아픈 것 따로 고관절 아픈 것 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해 고칠 수 있다니 너무 반가웠다. 전화를 했더니 생각보다 진료비가 비쌌고 예약 잡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가장 가까운 날로 예약을 잡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트한샘의 치료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의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온몸의 근육을 풀고, 다시 기초 재활 운동으로 균형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무지외반증이 나아지고, 과긴장 되었던 장요근이 풀려 고관절 통증이 완화되는 등 몸 전체가 좋아졌다. 그러나 오십견의 통증은 여전했다. 오히려 야간통이 심해져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달 만에 만난 트한샘에게 밤에 통증이 심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잠시 고민하던 트한샘은 그동안 어깨충돌증후군이라 생각해서 재활운동을 시켰던 것인데 오십견이 맞는 것 같다며 브리즈망 시술을 권했다. 브리즈망 시술이라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난 한의원에서 시술을 하냐고 물었다. 트한샘이 자신의 한의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집 근처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재활운동으로 오십견을 고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고통이 너무 심하니 시술을 권한 것이었다. 브리즈망 시술 후 재활운동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자신을 찾아온 환자 예를 들어 주었다.


당혹스러웠다. 처음부터 난 오십견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오십견 진단이 맞는 것 같다니, 트한샘에게 속은 건가 싶어 속상했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효과도 없는 체외충격파를 계속 받으라고 했던 다른 의사들 보다는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 트한샘이 고마웠다. 트한샘 입장에서 돈만 생각했다면 재활운동을 계속 하라고 고집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서 나의 고통을 줄여주고 시간과 돈을 아끼게 해주었다.


어쨌건.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브리즈망 시술 병원을 검색했고, 리뷰가 가장 많은 A정형외과로 진료 예약을 신청했다. 트한샘 말대로 브리즈망 시술은 간단했고, 무엇보다 야간통이 사라져 살 것 같았다. 이후 꾸준히 도수치료를 받는 동시에 트한샘에게 전수 받은 재활운동을 병행하면서 마침내 오십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오십견이 갱년기 증상 중 하나라는 사실을.



P.S

사실 A정형외과에서 난 내 몸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다. 엄마 아빠도 모르는 놀라운 비밀을 오십이년만에 알게되었다. 난 척추측만증 환자였다. 그것도 선천성 척추측만증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선천성 척추측만증이란 엄마 뱃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질때부터 척추가 휘어져 있다는 이야기였다. 충격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내가? 선천성 척추측만증 환자였다고? 그것을 오십이년이나 모를 수 있다고? 어떻게 내 부모도 모를 수 있는 거지? 아니 나를 진단했었던 과거와 현재의 다른 의사들은 어떻게 모를 수 있는 거지? 처음에는 이해도 안 되고 납득이 안 되던 진단이었는데, 진단을 곱씹어 생각할수록 내 과거의 병력이나, 나의 기이한 행동들이 선천성 척추측만증이라는 단어 하나로 이해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재활 운동을 함께하는 챕터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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