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50살 - 2

심장은 뛰는데, 숨이 안 쉬어져요. ㅠㅠ

by 홍작

1.


오십견만 고치면 운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눈 떠보니 50살 - 악! 팔이 안 올라가요! 참조). 오십견만 고치면 체력도 기를 수 있고, 오십견만 고치면 내가 좋아하는 글도 쓸 수 있고, 오십견만 고치면 좋아하는 식당 일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내 마음과는 다르게 오십견 재활은 더디기만 했고, 재활 운동 중에도 내 몸은 작은 균열이 생긴 그릇처럼 여기저기 금이 가고 아팠다.


그 중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수면무호흡이었다. 아직도 그날 밤을 생각하면 머리가 쭈뼛쭈뼛 선다. 한 번 잠이 들면 누가 업고 나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자는 타입이라 코도 골고, 수면무호흡이 있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한 번도 자각하지는 못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잠자리에 들었고 눈을 감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나 잤을까? 분명 깊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눈이 떠졌다. 무슨 일이지? 벌써 아침인가? 어슴푸레한 주위를 봐서는 아직 해가 뜬 것 같지는 않았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데 어째 몸이 움직여 지지 않았다. 이상했다. 가위에 눌린 건가? 하지만 가위에 눌렸다고 하기엔 눈앞에 보이는 천장과 낮게 들리는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너무나 생생했다. 가위도 아니라면 도대체 이 상태는 뭔가 싶었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니 무척 당혹스러웠다. 그 순간 몸 아래에서 심장 소리가 들렸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굉장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심장이 굉장히 빠르게 뛰고 있네 이상하다라고 느끼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숨을 쉬고 있지 않는다는 걸. 숨을 쉬기 위해 코로 공기를 들이켰지만 들이켜지지 않았다. 입을 벌려 숨을 내쉬려고 했지만 입도 벌어지지 않았다. 마치 솜뭉치를 단단하게 뭉쳐 입과 코를 틀어막은 것처럼 숨을 내쉴 수도 들이쉴 수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뚜끈뚜끈. 뚜끈뚜끈. 뚜끈뚜끈. 고장난 기차처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왜 숨을 쉴 수 없는지는 몰라도 이 상태가 비상상태라는 것은 알았다. 남편을 깨우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남편을 향해 외쳤다.


오빠! 나 좀 봐! 나 좀 깨워죠! 오빠!!


그러나 나의 소리는 남편에게 닿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점점 숨이 막혔다. 이대로 내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며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남편은 아직도 이 비상 상황을 모르고 태연하게 자고 있었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열여섯, 삼십다섯, 오십하나, 오십아홉…


숫자가 육십을 넘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빠르게 뛰던 심장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눈앞이 흐려졌다. 죽음이라는 게 이런 건가. 누군가는 자신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고 하던데 나에겐 슬픔도 억울함도 기쁨도 화남도 없었다.


애썼다. 그동안.


지금까지 달려온 나를 위로하며 죽음을 받아들였다. 죽음은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았고 평온했다. 이 어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순간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정적. 그 순간이 몇 초였는지, 몇 분이였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굳게 닫혔던 입이 벌어졌고 공기가 코로 입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휴…


그제야 깊은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고마웠다. 숨을 쉴 수 있어서 고마웠고,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어서 고마웠다. 살아 움직일 수 있어 고마웠다. 몸을 돌려 남편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고마워. 오빠 고마워. 살아 있어서 고마워.”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꿈 꿨어?”


당황해 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남편의 말대로 꿈이길 바랬다. 꿈이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테니. 하지만 그날 밤 난 정말 죽을 뻔했다. 그런 위험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나는 처음으로 수면무호흡의 위험성을 온 몸으로 인지했고 다음날 수면클리닉에 예약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수면 검사를 통해 수면무호흡 진단을 받았다. 이 후 양압기 처방을 받아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양압기 처방받고 가장 크게 좋아진 건 두 가지였다. 첫째, 함께 자던 남편이 숙면을 취하게 됐다. 내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칠 뿐 아니라 내가 숨을 못 쉬고 컥컥할 때마다 지켜보느라 잠을 못 잤다고 했는데 이제는 편안하게 잠을 잔다. 둘째, 내 몸이 정말 가벼워지고 개운해졌다. 그동안 잠을 많이 자도 개운하지 않았었는데, 양압기를 착용한 이후 놀라울 정도로 몸이 가벼워졌다. 그때만 해도 수면무호흡이 갱년기 증상 중 하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


수면무호흡은 언제나 코골이를 동반하는데, 나의 코골이 역사도 오래되었다. 30대 초반부터 시작된 코골이 때문에 가족들은 나와 함께 자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잠귀 어두운 엄마마저 나와 자다 방을 뛰쳐나간 걸 보면 코골이가 심하긴 심한 모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심한 코골이는 주간 졸음증 등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잠을 충분히 자도 잔 것 같이 않았고, 낮에도 잠이 엄청 쏟아졌다. 심지어 친구에게 말을 하면서 졸 때도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졸면서 말하는 사람 처음 봤다며 깔깔 웃으며 놀리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길을 걷다 졸 때도 있었는데 가끔 다리에 힘이 빠져 넘어지기도 했었다. 상태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처음으로 수면클리닉을 찾아 갔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다.


당시 코골이 치료를 할 수 있다며 수면클리닉이라는 곳이 생겼는데 서울대학병원 유일했다. 지금에야 수면 검사가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많이 저렴해졌지만 그때 만해도 수면검사 비용만 100만원이 넘었다. 벌이가 없던 예비 작가에게는 너무나 큰 액수였지만 가족들에게조차 미운 오리 새끼 취급받으며 받은 상처보다 큰 금액은 아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질렀다.


수면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코골이 보다 수면무호흡이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수면 무호흡이라니. 수면 무호흡 단어만 들어도 사형 선고를 받은 느낌이었다. 상담의 말에 따르면 코골이는 수면 중 호흡 기류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좁아진 기도를 지나면서 이완된 입 천정에서 비교적 연한 뒤쪽 부분인 연구개와 목젖이라 불리는 구개수 등의 주위 구조물에 진동을 일으켜 발생되는 호흡 잡음인데, 나이가 들수록 주위 구조물이 쳐져서 수면 무호흡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수면 중 호흡 정지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면 주간 졸음증 등이 수반되며, 이건 나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특히 수면 무호흡으로 인해 수면 중 저산소증이 유발되어 다양한 심폐혈관계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코골이를 대수롭지 않게 봤는데 굉장히 무서운 병이었다. 할수만 있다면 빨리 치료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상담의가 설명해 주는 코골이 치료 방법은 고대 고문들처럼 무서웠다. 첫 번째 방법은 혀를 잘라내는 수술이었다. 혀를 잘라내어 좁아진 기도를 확보하는 방법인데, 혀를 잘라내면 혀가 또 자라기 때문에 2년마다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헐. 혀를 잘라내는 것도 끔찍한데 주기적으로 잘라내야 한다니.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을 것 같았다. 당연히 패쓰.

두 번째 방법은 좁은 턱이 문제이니 턱을 조금이라도 넓게 해주기 위해 이를 교정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송곳니를 발치하고 돌출된 이를 교정하고 있었는데, 다시 이를 돌출 시키는 교정을 해야 한다고? 아니 이를 교정한다고 좁은 턱이 넓어지냐고 물었더니 상담의 역시 자신 없어 했다. 이것 역시 패쓰.

마지막 방법으로 상담의는 양압기 사용을 권했다. 두 방법보다는 합리적이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양압기 크기가 무척 컸고,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 형태라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양압기 처방을 받지 않은 이유는 양압기 대여비가 비싸도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목숨 값보다는 싼 가격이었지만 수면무호흡이 얼마나 무서운지 피부로 느끼지 못 했기에 치료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난 20년간 자면서 저승에 갈 일은 없었다. 그러나 오십두살이 되던 해 나는 잠을 자다 죽음을 경험했다. 그것은 내 몸에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하나의 경고였다.




P.S

최근 코골이 및 수면무호흡을 포함한 수면 장애에 대한 치료가 본격화 되면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수면 장애를 겪는 분들은 수면클리닉에 가서 꼭 검사하길 바란다. 바른 수면이 바른 몸과 바른 정신을 만든다,고 믿는다.

이전 02화눈 떠보니 50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