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50살 - 3

잠이 안 와요. 어제도... 오늘도... ㅠㅠ

by 홍작

01


오십견이 완치된 건 아니었지만, 팔을 들어 올리고 돌릴 수 있어서 한결 숨통이 트였다. 무엇보다 야간통이 사라져 밤에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 삶을 불어 넣어 준 듯했다. 수면무호흡 역시 양압기로 관리를 하면서 한 시간당 무호흡 횟수가 37회나 되던 것이 0.5회 내외로 줄어들어 기적에 가까운 효과를 보았다. 자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평안해졌다. 오랜만에 평온한 일상이 찾아온 듯했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은 오래가지 못 했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밤. 나는 잠을 자다 말고 눈을 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야겠다. 내가 눈을 떴다기 보다는 눈이 떠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알람을 맞추고 잔 것처럼 밤 2시가 되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처음에는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잠을 자다가 화장실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오줌이 적당히 마려운 정도가 아니라 금방이라도 쌀 것처럼 급박한 상황이었다. 하여 팬티에 오줌을 지릴까 두려워 온 몸을 비비꼬며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어릴 적 수박 한통을 저녁밥 대신 먹을 때나 있었던 일이었다.


첫날은 어쩌다 한번이겠지 싶어 지나갔다. 둘째 날은 내가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시는 건가? 싶어 물 양을 체크했다. 특히 저녁에는 거의 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밤 2시에 벌떡 일어나 몸을 비비꼬며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셋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일이 반복되자 나는 자기 전에 화장실을 대여섯 번을 다녀왔다. 그러나 넷째 날도 다섯째 날도 밤 2시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하지만 이 문제는 자기 전 물을 안 마신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고, 자기 전 화장실 자주 가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었다. 내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떤 병원에 가야 하는지 알고 싶어 내 증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먼저 검색 창에 ‘자다 깨서 화장실 가는 이유’를 찾았더니 원인이 너무나 다양했다(함께 체크해 보세요).






“1. 일차적 원인으로는 식습관 때문인데, 음식을 짜게 먹어서 낮에 수분을 가둬뒀다가 밤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깰 수도 있다.”

-> 나는 짜게 먹지 않으니 패스.


“2. 음주나 카페인 섭취로 인해 야간뇨가 발생할 수도 있으며”

-> 오십견 이후 술과 카페인을 끊었으니 이것도 패스.


“3. 비뇨의학과적으로는 남성에게서는 전립선염이나 전립선 비대증, 여성에게서는 방광염이나 과민성 방광이 원인이 될 수 있다.”

-> 방광염은 아픈데, 지금은 아프지 않으니 패스. 과민성 방광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일단 세모.


“3. 내과적으로는 고혈압이 있는 경우, 고혈압 약으로 인해 야간뇨가 발생할 수 있다.”

-> 나는 고혈압도 아니고 약도 안 먹으니 역시 패스.


“4. 갱년기 여성에게서는 호르몬적인 변화로 인해 야간뇨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 당시만 해도 생리를 할 때라 이것 역시 패스.


“5. 그 외에도 수면 장애가 있을 때 야간뇨가 심해지기도 한다.”

-> 수면장애는 치료 중이니 패스.




적어도 위의 질문으로는 내 야뇨증에 딱 맞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다만 과민성 방광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비뇨기과에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그러다 우연히 비타민 박사님의 동영상을 보았다. "야간뇨가 있는 사람은 자기 전에 비타민C를 꼭 먹어라"라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처음 비타민 박사님의 영상을 접했을 때만해도 뭔가 사짜 같은 느낌이었다. 비타민 박사님 말대로라면 비타민C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암도 고친다고 했다.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 했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비타민C처럼 신 것을 먹거나 마시면 위가 아팠던 터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일년 전즘 지인의 추천으로 비타민C 메가도스를 시작했는데 효과가 좋아 지금은 빈속에 비타민C를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고 편했다. 무엇보다 오래된 피로가 사라진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그때부터 난 비타민 박사님을 믿는 열렬한 신자가 되어 비타민C를 꾸준히 복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기 전 비타민C를 한 번 더 먹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자기 전에 비타민C를 복용한 첫날. 나는 2시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심지어 두 번이나 화장실에 다녀왔다. 비타민 박사님! 자다가 화장실 안 간다면서요! ㅠ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으니 일주일만 지켜보자고 생각했다. 두 번째 날도 비타민C에 대한 효과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미했다. 두 번까지는 아니었지만 자다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흘째 되던 날, 나는 더 이상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다 깨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그 다음날도, 그그그 다음날도. 적어도 나는 과민성 방광은 아니었다.






02.


비타민C의 효능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비타민C 복용으로 건강해진 내 몸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다루기로 하겠다. 다만 짧게 이야기하자면 어려서부터 최근 일 년 전까지, 그러니까 비타민C 메가도스를 하기 전까지 난 사과 하나를 온전히 먹어 본 적이 없다. 특히 사과를 빈속에 먹게 되는 날이면 위장을 사포로 긁어내는 것처럼 아파서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생고생을 했었다. 사과뿐만이 아니었다. 레몬으로 만든 레몬주스, 레몬즙, 사과식초 등 신 것은 절대! 절대! 절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비타민C를 복용하면서 빈속에 사과를 먹어도 멀쩡하고, 일 년에 한 번씩 고생시키던 위장 장애도 없어졌으며, 무엇보다 간절기마다 걸렸던 감기에 걸리지 않았고, 군장처럼 어깨에 지고 다니던 피곤도 사라졌다. 게다가 자기 전 비타민C를 복용했더니 야뇨증도 사라졌다. 비타민C 만세! 비타민C 박사님만세!! 나도 모르게 비타민 박사님에게 비며들어 비타민C 신봉자가 되었다.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던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무엇이든 일단 직접 듣고, 직접 해보고 판단하자,로 바뀌었다.


야뇨증을 치료하면 다시 꿀잠을 자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야뇨증이 사라지고 나서 나는 더 큰 고통을 얻었다. 평소 같으면 베게에 머리가 닿기 무섭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왜 잠이 오지 않는 거지?부터 시작해 머릿속에서 하루 일과를 다시 정리하고 하고도 잠에 들지 못 해서, 머릿속으로 내일 일과를 체크하고도 한참을 뒤척인 후에야 얼핏 잠에 들었다. 다음날 하루 종일 피곤했다. 일과가 끝나면 빨리 들어가서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았다. 습관처럼 하루 일과를 정리하던 나는 생각을 멈추고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스무마리를 세기 시작했다. 양 백마리를 세고 다시 양 백마리를 셌는데도 불구하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잘 수 없다면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글을 썼다. 컴퓨터 뒤로 깜깜했던 창에 여명이 밝아오는 걸 보고서야 더럭 겁이 나 부랴부랴 일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을 온전히 자지 못 했다. 그 날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첫째 날은 하루 종일 무쇠 솥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처럼 머리가 무겁고 멍했다. 지난 8년간 반복적으로 해왔던 가게 일이라 눈 감고도 하던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카드 결제를 제대로 하지 못 해 돈을 받지도 못 하고, 금고가 잠겨 하루 종일 열쇠를 찾아 헤맸는데, 나중에 보니 금고 안에 열쇠를 넣고 잠구어서 열쇠를 찾지도 못 하고 금고를 열지 못 했던 것이다.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실수가 이어지자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리에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았다. 무겁고 멍한 머리로 집 나간 양까지 수백 아니 수천을 세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깐 자다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면 10분이 겨우 지났을 뿐이었다. 다시 잠들었다 시간을 확인하면 10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을 온전히 자지 못 한 채 다시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밤을 하얗게 새운 둘째 날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남편이 옆에서 뭔가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분명 소리를 듣고 있는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벌떼 소리처럼 웅웅 거렸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의 주어도 동사도 생각나지 않아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반복적인 일상생활조차 어려웠다. 그저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 날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자려고 하면 할수록 머릿속에선 오늘 하지 못 했던 일, 실수 했던 일, 그리고 앞으로 실수할 일들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그만! 그만! 자야 해! 정말 자야 한다고!를 외쳤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며 나를 괴롭혔다. 생각을 그만 하고 싶다고 생각할수록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머리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 같더니 그대로 펑하고 터질 것 같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심장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머리가 터지든 심장이 터지든 둘 중 하나가 고장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를 향해 소리도 쳐보고, 외면도 해보고 다 해보았다. 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없었다.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에게 매달렸다. 제발 잠을 잘 수 있게 도와달라고. 잠만 재워 주신다면 당신 뜻대로 살겠다고. 그런 다짐으로도 통하지 않았다. 나는 신에게 증명이라도 해보이듯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평소 같으면 줄줄 외던 기도문도 기억나지 않았다. 고장 난 축음기처럼 같은 구절을 계속 반복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순간 난 정말 절박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제발 잠 좀 잘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것도 안 된다면 이 기도문만이라도 온전히 외울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이요.


정말이지 내 평생 처음으로 신에게 간절하게 애원했다. 잠을 자게 도와달라고, 만약 잠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기도문을 다 외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얼마나 간청을 했을까. 나의 기도가 닿았는지 기도를 시작하면서 뜨겁게 달구어졌던 머리가 식기 시작하면서 고요가 찾아왔다. 다행히 기도문이 온전히 생각났고, 기도문을 다 외고 나서야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03.


며칠 후 지인에게 그간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잠을 못 자는 것만큼 괴로운 것이 없다며 하소연을 했다. 내 이야기를 물끄러미 듣고 있던 지인이 나에게 느닷없이 산부인과를 가보라고 권했다.

“엥? 갑자기. 산부인과요?”


잠과 산부인과라니.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도무지 찾을 수 없어 의아했다.


“나도 네 나이 때 뼈마다 쑤시고 아프고, 열 오르고, 잠도 못 자고 온몸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친구 권유로 산부인과 갔는데, 호르몬 먹으니 하나도 안 아파. 고생하지 말고 얼른 가 봐.”


나는 네,하며 건성으로 답하고 산부인과에 가지 않았다. 산부인과와 잠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 했고, 무엇보다 호르몬을 먹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 불면증 패턴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다시 신께 기도를 드렸다. 신은 나의 기도에 응답을 하실 때도 있고, 응답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응답하신 날에는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 있었지만 응답하지 않는 날에는 잠을 자지 못 했다.


사흘 밤을 꼬박 새우고 출근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던 어느 날.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었지?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버스도, 버스 밖 풍경도 너무 생경스러웠다. 처음 보는 풍경이라 몹시 당혹스러웠다. 낯선 세상에 나만 혼자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이었다. 한 순간에 공포가 덮쳤다. 다시 신께 기도를 드렸다. 기도문을 다 외울 수 있게 도와달라고. 무엇보다 이곳이 어딘지 기억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한참을 공포 속에 떨다가 겨우 한 조각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은 출근 하는 길 중에 하나이고, 우리 가게는 00동이라는 기억. 그 길로 바로 지인이 추천한 산부인과에 예약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면증이 갱년기 중상의 하나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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