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잘 표현하고 기록하기
최근 병원을 다니며 나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고통과 혼란 속에 앉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어디가 아프세요?”라고 물을 때마다 “그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고, 다리가 아파 오래 걷는 것조차 힘들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아니면 최근 변화에 한정해야 할지 늘 난감했다. 내게 고통을 주는 이 병의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삶을 역주행 하듯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은 집에 돌아와서야 진료실에서 말했어야 할 중요한 증상이 떠오를 때였다. 환자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정확하게 표현해 줘야 의사도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데, 나의 잘못으로 진단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자책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장에는 호르몬을 ‘내 편’으로 데려오는 연습 가운데 하나로, ‘고통을 잘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고통을 잘 표현하려면 먼저 잘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막상 환자가 되어보니 표현도, 기억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기록이다. 병의 이름을 몰라도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꾸준히 적다보면 진단이 놀랄 만큼 정확하고 빨라진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나는 이 기록을 증상일지로 부르겠다.
증상일지를 써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 경험을 예로 들면, 갱년기의 신호는 얼굴을 자주 바꾸며 나타났다. 처음에는 오십견 같다가, 수면무호흡으로, 또 불면증으로, 어느 날은 다리가 붓는 식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증상들이 사실은 모두 갱년기에서 비롯됐다. 처음부터 증상일지를 썼다면 이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아차렸을 것이고 지금처럼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갱년기가 진행되며 건망증도 심해졌다. 의사가 증상을 물을 때마다 깜빡 잊기 일쑤였다. 열감처럼 가벼워 보이는 증상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도 많았다. 그때 증상일지가 있었다면 의사와의 소통은 빨라졌을 것이고, 1년이나 병명을 모른 채 방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단 갱년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기록할 수만 있다면 그 기록은 길을 잃은 우리에게 지도가 되어 보여 줄 것이다. 혹시 지금 몸이 보내는 신호로 몹시 혼란스럽다면 일단 기록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당신의 기록이 길이 되어 당신을 무사히 집으로 안내할 것이다.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되었나요?”
의사 선생님이 물을 때마다 난 늘 기억을 더듬었다. 언제부터였더라? 일주일 전인가? 한 달 전인가? 기억은 늘 가물가물했고 정확하지 않았다.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기대어 받은 진단이 과연 정확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시엔 증상일지에 대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늘 바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지’, ‘일기’라는 말에 거부감도 있었다.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 같았고 누군가에게 보여야 한다면 솔직하기 어렵다는 선입견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일기는 나의 기록이자 전기이며 삶의 궤적 그 자체다. 그래서 나는 짧게라도 일기를 쓰려 하고, 그 아래 증상 일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증상일지는 어렵지 않게 그러나 구체적으로 쓰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그래야 내 몸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증상일지 쓰는 것이 어렵다면 아래 예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인생에서 가장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오늘의 나’를 관찰하고 기록해 보길.
<증상일지>
① 언제: 증상 시작 시각, 하루 중 때(새벽/오전/오후/밤), 처음·다음
② 어디: 위치(왼쪽/오른쪽, 표면/속), 퍼지는 방향(턱→귀, 허리→엉치 등)
③ 어떤 느낌: 화끈/쑤심/찌름/당김/먹먹/울렁/어지럼/두근거림(단어로)
④ 얼마나: 강도 0–10, 지속 시간(분/시간), 횟수
⑤ 무엇이 바꿨나: 악화 요인(카페인·스트레스·식사·체위), 완화 요인(휴식·찜질·물·약)
⑥ 오늘의 잠: 잠든/깬 시각, 깬 횟수, 다시 잠들기까지 걸린 시간
⑦ 오늘의 마음: 불안/우울 0–10, 낮 졸림 0–10
원칙은 단순하다. 짧게, 같은 단어로, 매일 쓰기.
문학적 비유보다 반복 가능한 단어가 진료에 더 힘이 된다.
‘작심삼일’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주술이다. 아마도 삼일 쓰고 나면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백하나가 생길 것이다. 그럴 때를 위해 루틴을 만들자. 자기 전 5분을 비워두고, 침대 머리맡에 증상일지와 타이머, 필기구를 준비해 둔다. 그리고 쓰자. 아래는 글을 쓸 때 염두에 둘 점들을 정리한 내용이다.
1) 잠들기 전 타이머를 5분에 맞추고 증상일지를 쓴다. 5분이 넘어가면 더 쓰고 싶어도 멈춘다. 여운이 있어야 내일도 쓰게 된다. 길게 쓰지 말고 짧게 쓸 것. 그래야 꾸준히 쓸 수 있다.
2) 고통을 표현하는 단어를 고정한다. (예: 화끈/찌름/먹먹/어지럼/울렁/두근) 다음 주에도 같은 단어로 써야 변화를 알 수 있다.
3) 아픔의 강도를 숫자화 한다. (강도 0–10), 혹은 ‘대충 중간 / 강함’처럼 본인 기준을 유지한다. 기준이 쌓이면 의미가 생긴다.
4) 잘 모름도 기록한다. (예: 유발원인: 잘 모름/추정 카페인) 다음 진료에서 바로 묻기 쉬워진다.
5) 하루 한 줄 요약을 남긴다. “새벽 2·4시 각성, 낮 졸림 7/10, 오후 열감 3회.”
얼마 전 미국 MD앤더슨, 세계적인 암센터의 종신교수인 김의신 박사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는 의사가 한 환자를 대면하고 치료에 쓰는 시간이 평균 1시간이라고 한다. 한국은 평균 3분 남짓이라고.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깨가 아파요’라고 말하면 의사는 X-RAY나 초음파를 권한다. 결과가 나오면 진단과 치료가 이어지고, 의사와 내가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고작 3 ~ 5분이면 끝난다. 가끔은 이 짧은 시간에 의사가 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3분 진료의 책임이 의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아팠는지를 자각하지 못 할 때도 많았다. 무엇보다 아팠던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지 못 할 때가 많았다. 환자인 내가 나를 세심하게 살피지 않았으니 의사에게 제대로 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증상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는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나를 더 꼼꼼하게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증상일기는 효과적인 진료를 위한 도구였지만, 돌아보면 나 자신을 이해하는 작업이 되었고, 그것이 치유의 첫걸음이 되었다. 다음 장에서는 증상일기를 바탕으로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능동적인 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해 해보겠다.
P.S
혹 증상일지가 필요하신 분들은 아래 자료를 이용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