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네 정체가 뭐니?

여성 호르몬에 대한 오해와 이해

by 홍작

01.


갱년기를 겪으면서 처음 느낀 건 ‘예전 같지 않다’였다. 하루는 멀쩡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이유도 없이 온몸이 아파 내 몸이 낯설었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늘 피로했으며, 머리는 멍하고, 심장은 두근거리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마치 오래된 건물의 기둥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간 것처럼, 몸속 어딘가에서 균열이 나는 것 같았다. 한동안 나는 그 균열을 나이 탓으로만 돌렸다. 하지만 몸은 정직했다. 그 균열의 이름은 호르몬의 변화였다. 이번 장에서는 도대체 호르몬이 뭐길래 여성의 생애를 지배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호르몬은 새 깃털의 1천만 분의 1 무게에 해당하는 나노그램 단위로 일한다.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지만, 그 한 방울의 신호가 하루의 리듬을 바꾸고, 한 사람의 생을 지탱한다. 특히 여성호르몬은 월경·임신·수유·골밀도·심혈관 건강을 관통해 전 생애에 걸쳐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많이”가 아니라 정교한 조절과 균형이다.


호르몬 분비의 총괄 책임자는 뇌라고 한다. 뇌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중요한 조절 중추인 뇌하수체에서는 난표자극호르몬(FSH)과 황체형성호르몬(LH)을 내보내 난포의 성장과 배란을 지휘한다. 뿐만 아니라 프로락틴(유즙분비호르몬)을 분비해 임신과 출산 시 모유 분비와 월경주기 조절에 영향을 준다(아래 그림 참조).


뇌하수체에서 분비된 호르몬들의 신호를 받은 난소는 여성호르몬의 대표주자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분비되도록 한다. 에스트로겐은 자궁내막을 증식시켜 임신을 준비할 뿐 아니라 심혈관 건강과 골밀도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프로게스테론은 자궁내막의 증식을 억제하고 자궁근육의 과도한 수축을 방지함으로써 임신이 유지되도록 돕는다.


또한 갑상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신진대사의 균형을 위해 중요하고 특히 여성의 안정적인 임신과 출산을 위해 꼭 필요하다. 갑상선기능이 떨어져 저하증이나 항진증으로 호르몬 균형이 무너지면 월경이 불규칙해질 수 있다.


이렇듯 나노그램의 아주 소량의 호르몬이 우리의 몸, 특히 여성의 몸과 생애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얼굴만큼 내 안의 여성 호르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내 노후가 편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여성 호르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만 정리해 보았다.



호르몬 표.jpg



02. 여성호르몬 삼총사


에스트로겐 ― 혈관의 수호자


에스트로겐은 단지 ‘여성다움’을 만드는 호르몬이 아니다. 내 몸의 혈관을 지탱하는 기둥에 가깝다. 혈관 안쪽의 내피세포를 매끄럽게 유지해 피가 부드럽게 흐르게 하고, 산소와 영양이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돕는다. 그 결과는 세부적인 곳에서 드러난다. 피부에 탄력이 생기고, 머리카락에 윤기가 생기며, 집중력과 기억력이 높아지며, 기분이 항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또한 에스트로겐은 뼈를 만드는 조골세포와 파골세포의 균형을 맞추고, 혈중 지질에서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추며 좋은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데 관여한다. 운동으로 인한 염증과 근손상을 줄여 회복을 돕는 것도 이 호르몬의 역할이다.


문제는 감소다. 갱년기에 접어들면 에스트로겐이 먼저 줄고, 혈관의 탄성이 떨어지며 미세한 염증이 잦아진다. 이유 없는 열감, 부종, 두근거림, 수면장애 같은 증상은 그 결과일 수 있다. 더 나아가 고지혈증·고혈압 등 심혈관 위험이 높아지기도 한다. 60대 여성들이 60대 남성들보다 심혈관 질환이 높아진다는 것이 그 예였다(12장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진실 참고).


뇌의 혈류를 증가시키고 신경세포를 보호하던 에스트로겐이 줄어들면 기억력이 약해진다. 폐경 이후에 치매의 위험이 높아지며, 실제로 60대 여성들이 치매 환자가 더 많다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에스트로겐이 단순히 생리 주기를 넘어 전신의 순환과 회복을 지탱해왔다는 사실을, 나는 갱년기를 지나면서 몸으로 배웠다.


프로게스테론 ― 균형의 또 다른 이름


에스트로겐이 구조를 세운다면, 프로게스테론은 그 구조 사이의 공기를 채운다. 과하게 두꺼워진 자궁내막의 속도를 늦추고, 자궁근육의 과도한 수축을 막아 안정성을 높인다. 뇌에서는 GABA 신경전달계를 도와 긴장을 풀고 수면을 붙잡는다. 그래서 프로게스테론이 줄면 변화가 정직하게 찾아온다. 잠이 얕아지고, 사소한 일에도 불안이 밀려오며, 생각은 밤새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피곤한데 잠들지 못하는 밤들, 이유 없이 솟구치는 눈물. 나는 그 감정의 파도를 성격의 문제로 오해했지만, 실제 원인은 프로게스테론의 소멸이었다. 더 이상 나의 못난 성격 탓이 아닌 호르몬의 변화 중에 생기는 한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책에서 하루 바삐 벗어나 호르몬 부족을 체크해야 한다.


안드로겐 ― 하루를 밀어주는 동력


‘남성호르몬’으로 알려졌지만, 안드로겐은 여성에게도 중요하다. 집중력, 추진력, 일상의 동력을 보태 준다. 갱년기 이후 이 호르몬까지 낮아지면, 하루가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에는 가볍게 밀던 일들이 어제의 체력으로는 밀리지 않는다. 나는 그 체감이 단지 근력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탄력과도 닮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옥시토신 ― 사랑의 연결선


여성호르몬은 아니지만 여성의 노화와 관련해 중요한 호르몬인 옥시토신도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옥시토신은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린다. 사람을 보거나 포옹할 때, 감정적 교류가 있을 때 분비되어 유대감과 신뢰를 깊게 만든다. 특히 에스트로겐은 시상하부에서 옥시토신의 분비를 높이고 수용체의 결합을 촉진한다. 그래서 여성은 사랑받을 때 옥시토신이 폭발적으로 분비되어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을 느낀다.


반면 남성호르몬은 이 결합을 억제해 그 작용이 여성보다 약하게 나타난다. 에스트로겐이 떨어지면 옥시토신의 리듬도 깨진다. 그때부터 관계는 삐걱거리고, 사랑이 아닌 불안이 관계를 대신한다. 황혼이혼이 많은 것도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때문이라. 인간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면 호르몬을 체크해 보길 바란다.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길이 호르몬을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03. 오해를 걷어내면 보이는 것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믿는다. “에스트로겐은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정답은 적정 범위와 균형이다. 부족해도, 과해도 몸은 신호를 보낸다. “여성호르몬은 생리만 좌우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심장과 혈관, 뼈와 근육, 피부와 머리카락, 기분과 수면까지 온몸의 언어를 바꾼다. 실제로 여성은 호르몬이 전부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임약이나 치료용 호르몬이 자연 호르몬과 완전히 같다"고 여기는 것도 오해다. 성분과 작용이 다를 수 있기에, 치료가 필요하다면 의료진과 개인 상태에 맞춘 상담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갑상선은 별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잘못이다. 갑상선 기능의 흔들림은 월경과 임신 안정성, 일상의 에너지에 직결된다.


04. 나의 이해, 우리의 이해


예전의 나는 설명되지 않는 피로와 예민함을 ‘나의 성격’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호르몬의 작동 방식을 이해한 뒤로는 그 감정들은 내가 고칠 수 있는 생활의 신호가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몸이 보내는 말에 귀 기울이며 오늘의 루틴을 쌓는 것, 그것이 내가 택한 회복의 방식이다. 뇌에서부터 시작되어 난소와 간, 그리고 장으로 이어지는 몸의 대화가 호르몬의 길이 되며 생명줄이 된다는 걸 오늘에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호르몬을 ‘적’으로 돌리기보다 내 편으로 데려오는 연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에게 적어둔 메모를 공유한다.


“많이”가 아니라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이 맞춰지는 날, 나는 어제보다 분명히 젊어진다.


이전 12화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