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는 질병 코드가 있는 질병이다
Q :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사춘기 아들이 이길까? 갱년기 엄마가 이길까? 아니면 막상막하일까?
A : 정답은, 갱년기 엄마가 이긴다.
왜일까? 엄마라서 이기는 걸까? 아니면 갱년기라서 이기는 걸까?
둘 다 정답은 아니다.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갱년기 엄마가 ‘환자’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환자와 싸우지 않는다. 그래서 갱년기 엄마가 이기는 셈이 된다.
갱년기 엄마가 환자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물을 것이다. 갱년기 치료를 받는 나도 몰랐다. 갱년기가 병이라는 걸. 산부인과에서 갱년기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도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처방전을 정리하다가 질병 코드를 보고 놀랐다.
샤넬 넘버5도 아니고, ‘N95.1’이 여성 갱년기 질병 코드이다. 갱년기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남성에게도 ‘N50.80’이라는 갱년기 질병 코드가 있었다. 즉, 갱년기는 의학적으로 질병 코드가 부여된 ‘질병’이다.
반면, 사춘기는 성장 호르몬이 폭발적으로 분비되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어가는 질풍노도의 시기다. 즉, 생리적 성장 과정이지 병이 아니다.
자, 그럼 다시 묻겠다.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정답은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에 있었다.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는 맞서 싸울 상대가 아니다. 서로의 변화를 지켜봐 주고, 이해해 줘야 하는 관계다. 보호자와 환자의 관계. 그러니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맞서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대화로 서로의 감정을 풀어내야 한다. 싸움의 끝에는 승패가 아니라, 이해가 있어야 한다.
Q : 갱년기는 노화의 과정 중 한 시기를 말한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갱년기가 질병 코드가 있는 질병이라면, 노화도 질병이어야 한다. 그런데 나 스스로도 언뜻 노화가 질병이라는 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왜 일까?
A : 1974년생, 93학번인 나는 학교에서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죽음으로 향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라고 배웠다. 그리고 그 말을 진리처럼 믿었다. 때문에 호르몬 약을 먹는 것 자체가 죽음을 거부하는 반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다 때가 되면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머리 속의 현실과 실제 경험하는 현실은 다르다. 노화가 자연을 따르는 과정이라지만,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숨을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고통은 치료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지켜만 봐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죽으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갱년기를 지나면서 죽음까지 맛 본 나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다 때가 되면 가야지”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노화의 고통은 치료해야 한다로. 때문에 ‘노화를 하나의 질병’으로 보는 최근 연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노화를 막기 위한 근본 치료법은 영원히 사는 삶이 목적이 아니다. 노화를 질병으로 보고 치료하는 이유는 조용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인간의 고귀한 선택을 위해서이다.
위에 제시된 성별 연령별 남녀 심혈관질환 환자 수 추이 그래프를 보면 남성은 40~50대에 심혈관 질환 즉 고지혈증, 고혈압이 많다. 하지만 60대가 되면 여성의 심혈관질환 비율이 남성을 앞지른다. 70대에 이르면 여성이 앞도적으로 높다. 갱년기를 거친 여성의 몸이 노년의 질병에 훨씬 더 취약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의학계는 말한다. “여성은 초기에 갱년기 치료를 하면 노년의 병을 예방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우리가 갱년기를 치료해야 하는 이유다.
갱년기는 단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 아니라 ‘치료 가능한 질병’이며, 갱년기의 고통을 방치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남은 삶이 조금 덜 두렵고, 조금 더 단단해지는 이유이다.
갱년기 증상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안면홍조, 두통, 불면, 우울, 현기증, 피부 건조, 손발 저림, 감정 기복, 무기력, 심혈관 질환, 골다공증, 질 건조, 피로, 배변통 외에도 의학적으로 확인된 갱년기 관련 질환이 무려 100가지나 된다고 한다. 산부인과 여의사샘이 “갱년기 때는 온몸이 다 아파요.”라고 말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나 역시 위에서 나열한 갱년기 증상을 대부분을 겪었다. 피로, 불면, 감정 기복, 우울, 현기증, 자면서 땀을 많이 흘리는 야간 발한, 질 건조, 피부 건조, 현기증 등. 뿐만 아니라 오십견, 수면무호흡, 불면증, 다리 붓기, 어지럼증, 소화불량 등으로 정형외과, 한의원, 수면클리닉, 산부인과, 흉부외과, 이빈후과 등을 다녀왔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증상들이 갱년기 때 호르몬 변화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의사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호르몬 복용을 해서 증상이 사라지면 갱년기라고 진단한다는 한 의사의 고백은 새겨들을만 하다. 하여 나는 호르몬 복용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호르몬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고 있다. 그런 나를 보고 많은 분들이 호르몬 복용에 대해 걱정을 하신다. 하지만 나는 고통스럽게 늙어가는 것 보다 호르몬 복용으로 조금은 덜 아프게 늙어가고 싶다.
물론 호르몬 부작용이 두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이 더 두렵기 때문에 감내할 것이다. 대신 정기적으로 검사도 받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식습관도 바꾸면서 최대한 호르몬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갱년기를 지나가며 우리 몸 성분 중 아주 극소량의 호르몬이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도대체 호르몬이 뭐길래 한 인간을 성장시키기도 하고 또 아프게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다음 장에서는 여성 호르몬 전반에 대해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