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르몬성 생약제 적응기

복용법 반드시 확인하기

by 홍작

01


리비알이나 안젤릭을 먹을 땐 약효가 금세 나타났다. 몸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물론 부작용도 심했지만, 약을 복용하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클리마토플란은 달랐다. 먹어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생약 성분이라 효과가 느리게 나타나나 싶어 기다렸지만,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고, 잠들지 못하는 밤이 길어졌다.


잠을 못 자니 건망증이 심해졌고,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온 집안을 뒤지는 날이 많았다. 문장을 잇지 못 할 정도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말 한마디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입 안에서 단어가 미끄러지고 사라지는 순간마다 작가로서의 자존감이 무너졌다. 큰 충격을 받아 산산이 깨진 유리처럼, 나는 조각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명치 끝, 가슴 중앙 어딘가에 묵직한 돌덩이가 매달린 듯했다. 밥을 먹는 족족 체했다. 끼니때마다 소화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갱년기 때문인가 싶어 인터넷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체기’가 갱년기 증상이라는 말은 없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기운이 없었고, 기운이 없는 날 보던 주위 사람들은 보약을 먹어 보라고 권했다.


나는 위장을 잘 고친다는 한의원을 찾아 나섰다. 요즘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참 영리해, ‘체기’ 하나만 검색해도 관련 병원이 줄줄이 뜬다. 일단 조회수가 높고 댓글이 많은 영상을 중심으로 살폈다. 그 중 위장과 심장의 관계를 설명하는 한의사 샘의 동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위장이 약한 이유는 심장이 약하기 때문이며, 심장을 강화하면 위장도 함께 회복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정작 심장을 강화하는 방법에 대한 영상은 없었다. 그래서 한의사 샘을 직접 만나러 한의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일반 한의원과 달랐다. 진맥 전에 키와 몸무게를 재고, 자율신경 관련 검사를 하고, 혀를 길게 내밀어 사진까지 찍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찍는 혀 사진이라 궁금했다.


“혀는 왜 촬영하는 거예요?”


“선생님 진료 보실 때 필요해서요.”


간호사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나는 잠시 혀와 위가 어떤 관계일까?를 고민하다 간호사가 이끄는 대로 자율신경계 검사를 받았다. 얼마 전 이빈후과에서 받은 자율신경계 검사 결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었지만 유튜브에서 명확하게 이야기를 하던 한의사 샘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쁜 기억을 털어냈다.


잠시 후, 진료실에서 본 한의사 샘은 생각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반듯하고 똑똑하고 단정했지만 뭐랄까 경력에서 품겨지는 아우라가 없어보였다. 한의사 샘이 검사 결과지를 보며 말했다.


“혓바닥이 두껍고 자율신경실조증이 있네요.”


“네. 혓바닥이 두껍고 입 안이 좁아서 수면무호흡으로 죽을 뻔했어요. 지금은 수면치료를 받는 중이고 양압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율신경실조증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소장의 균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곤란하니까.


“많이 힘드셨겠네요. 우선 위장을 튼튼하게 하는 한약을 복용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죠.”


“잠깐만요, 선생님. 저 선생님 영상 보고 왔거든요. 영상에서는 위장이 약한 건 심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셔서 심장 쪽부터 튼튼하게 하고 위장을 치료 받고 싶어요.”


내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를 정확히 이야기 하고 싶었다.


“위장이 튼튼해지면 심장도 튼튼해집니다. 간호사에게 약 설명 들으시고 결정하세요.”


순간 망설였다. 동영상에서는 심장을 먼저 강화해야 위장이 회복된다고 했는데, 막상 진료에서는 위장부터 치료하자니 어딘가 모순처럼 느껴졌다. 치료는 믿음에서 시작된다고 배웠다. 그의 말이 흔들리는 순간, 내 마음의 믿음도 흔들렸다. 이빈후과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소장의 균이 있네요.”


그 한마디가 나를 멈추게 했다. 결국 나는 한의원을 나왔다. 병원이라는 곳이 때로는 병에 대한 설명보다 치료를 위한 설득이 앞설 때가 있다. 그들도 생계를 이어가야 할 테니 영업이 필요하겠지만, 환자가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환자 역시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물어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적절하지 않으면 망설이지 말고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이 말하는 소리를 잘 들어야 하며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 나만큼 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02


여전히 불면증과 기억력 감퇴, 소화 불량으로 고통을 받던 어느 날. 갑자기 약사 샘의 말이 떠올랐다.


“하루 네 알까지는 드셔도 돼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난 약사 샘의 말을 따라 보기로 했다. 이리 해도 힘들고, 저리 해도 힘들다면 여러 방법을 찾아 볼 수밖에 없었다. 하루 네 알을 먹기 위해 24시간을 네 등분했다. 아침 9시, 오후 3시, 밤 9시, 새벽 3시. 그리고 정확히 여섯 시간마다 한 알씩 먹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난 호르몬의 노예이며 이것은 인류의 역사다.


호르몬이 적절하게 들어가니 거짓말처럼 몸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가장 괴로웠던 다리 붓기가 줄었고, 잠도 잘 오고,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머리가 맑아지고, 말이 또렷해졌고, 몸이 다시 내 편이 되어주는 느낌이었다. 물론 새벽 3시에 알람을 맞춰 약을 먹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견딜 수 있었다. 하루에 네 번씩 약을 먹다 보니 약이 금세 떨어졌고, 다시 산부인과를 찾았다. 여의사 샘이 나를 보고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어? 벌써 왔어요? 이번 약 어때요?”


“지난번에 약 복용법을 알려주지 않으셔서요. 이전 호르몬제 먹을 때처럼 하루 한 알만 먹었는데 효과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네 알로 늘려 먹었더니 다리 붓던 것도 좋아지고, 건망증도 덜해진 것 같아요.”


“네 알이나 먹었어요?”


“네. 약사샘이 하루 네 알까지 괜찮다고 해서, 아침 9시부터 여섯 시간마다 한 알씩 먹었어요.”


“아이고, 그렇게 많이 먹을 필요 없어요. 하루 세 번, 식사 후 한 알씩만 드세요.”


“생약 성분이라 네 알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약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호르몬에는 욕심을 내게 되었다. 짧은 평온이라도 붙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약 성분이라도 간에 무리가 될 수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하루 세 번. 식후 한 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약사 샘이 복용법에 대해 물어봤을 때 산부인과에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기존에 먹던 호르몬제와 동일할 거라 미리 짐작하고 확인을 하지 않았다. 그 점이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그러나 갱년기 증상으로 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터라 아마도 똑같은 일을 일어난다면 난 똑같은 실수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 갱년기로 고생하는 엄마, 아내, 동생, 언니가 주변에 있다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도와주길 바란다. 그리고 가능한 한 남편과 함께 병원에 다니길 바란다.


여의사 샘 말을 따라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후 한 알씩 먹었다. 네 개씩 먹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새벽 3시에 일어나 약을 챙겨 먹지 않아도 되니 비로소 일상을 되찾은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또 어떻게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날 밤, 조용히 눈을 감으며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는 조금 숨을 돌려도 되겠다고.



03


글을 정리하며 클리마토플란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서 글을 덧붙인다.


클리마토플란은 여성의 갱년기 증상 완화에 사용되는 비호르몬성 생약제 전문의약품으로, 승마·생귀나리아·이그나시아·세피아 등 4가지 복합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 클리마토플란은 호르몬제가 아니다. 승마(안면홍조, 불안, 발한 등 갱년기 증상 완화), 생귀나리아(홍조와 어지럼증 완화), 이그나시아(근육 이완과 정서적 안정에 도움), 세피아(두통, 과민반응, 우울감 개선) 같은 식물이나 동물성 생약으로 만든 약이다. 독일에서 만들었다고 하니 왠지 더 신뢰가 갔다.


주요 효능 및 특징
갱년기 증상 개선: 안면홍조, 발한, 불안, 불면, 우울, 흥분 등 다양한 심리적·혈관 운동성 증상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호르몬 미함유: 에스트로겐 등 호르몬이 포함되지 않아, 호르몬 요법이 적합하지 않은 여성이나 장기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사용됩니다.
복용법: 초기에는 1일 3회, 1회 1정 복용하며, 증상 개선 시 복용 횟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식전 30분 또는 식후 30분 복용이 권장됩니다.


-> 의사 샘이 병이나 약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줄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때문에 병에 대한 진단을 받고 약 처방을 받으면, 반드시 그 날(그 날 확인하지 않으면 또 잊고만다) 관련 자료를 확인해 보길 바란다. 인터넷에 클리마토플란이라고만 검색을 해도 많은 자료를 볼 수 있다. 그 당시 분명 검색을 했는데도 약 복용법이 눈에 안 들어 온 것은 아마도 갱년기 탓이리라. 안타깝게도 인간은 자신이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며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그러니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가장 현명한 길이다.


작용 및 주의사항
일반적 부작용: 두통, 복통, 소화불량, 가슴 통증 등이 드물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 반응: 심각한 알레르기 증상이 발생하면 즉시 의사와 상담해야 합니다.
전문의 처방 필요: 반드시 의사의 진료 후 처방받아야 하며, 비급여 의약품입니다.


-> 앞서 클리마토플란을 한 알 먹었을 때 소화가 안 되어 한의원을 다녀온 이야기를 했었다. 오늘 이 글을 정리하면서 부작용에 소화불량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러니까 갱년기로 소화불량이 생긴 것도 아니라 클리마토플란의 부작용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에서야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갱년기 증상이 완화되고 내가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암튼 그 사이 나는 위를 튼튼하게 치료해 준다는 또 다른 한의사 샘을 알게 되었다. 워낙 바쁘신 분이라 진료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유튜브 강의를 먼저 들었다. 이 분은 자신이 알려주는 운동법을 해보고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으면 병원으로 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이 차 있었다. 하여 다른 한의사 샘이 알려준 심장 단련 운동을 따라 했더니, 놀랍게도 밥맛이 돌고 소화가 잘 되었다. 또한 혀의 백태가 사라지고, 입술이 촉촉해 지며 검붉었던 입술색이 붉은색을 되찾았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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