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약 성분 호르몬제
갱년기 진단 후 호르몬제 처방을 받았지만 호르몬 부작용으로 결국 호르몬을 중단해야 했다. 내 몸에 맞는 호르몬제를 찾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사이 내 몸은 끊임없이 비상 신호를 보냈다. 다리가 코끼리 다리만큼 부어오르고, 심지어는 이석증까지 앓고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최악의 경우 내 몸에 맞는 호르몬제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을 해야 했다. 마치 출구가 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어떻게 오셨어요?”
여의사 샘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게요. 저도 선생님 안 보고 싶은데, 이렇게 또 오게 됐네요.’
나는 진짜 하고 싶은 말대신 어색하게 웃으며 병원을 찾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호르몬 약 없이 버티려고 했거든요. 그런데요, 다리가 엄청 붓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두 달째 생리 중이에요.”
“안젤릭을 끊으면 출혈이 있다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그보다 제가 궁금한 건 다리에 압박 통증이 있나요?”
“아뇨. 압박 통증은 없었는데 그때보다 더 부어요. 발목이랑 발까지 엄청 붓더라고요. 엄마랑 동생도 하지정맥에 문제가 있어 가족력이다 싶어서 하지정맥 전문 병원에 갔었어요. 결과만 말씀드리면 혈관 초음과 검사 결과 하지정맥은 아니래요. 의사 샘이 40대에서 50대 여성들 30프로가 많이 찾아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갱년기 증상이라고 짐작했죠. 그런데 의사 샘이 혈류 순환 개선 주사를 맞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주사를 맞았어요? 개선이 좀 되었어요?”
“아뇨. 주사는 맞지 않았어요. 갱년기 증상 때문이라면 혈류 순환 개선 주사를 맞는다고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직도 다리가 많이 부어요.”
여의사 샘이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 속엔 ‘나 역시 더 이상 해줄 게 없는데’와 같은 체념이 묻어 있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다리 부종만 있었으면 그냥 버텼을 거예요. 그런데 며칠 후 갑자기 하늘이 핑글핑글 돌고, 땅이 꺼지고, 다시 땅이 솟구치며 미친 듯이 돌더라고요.”
“에? 갑자기 왜요? 무슨 일이에요?”
산부인과 여의사 샘은 환자의 말에 진짜 공감을 잘 해주고 리액션이 좋다. 그래서 샘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저절로 치유가 되는 것 같아 편했다.
“병원에 갔더니 이석증이래요. 그래서 치료를 받았는데, 갑자기 이석증 원인이 소장에 균이 있다는 거예요.”
“에? 소장의 균이요? 갑자기요? 그래서요?”
“소장의 균 때문에 자율신경실조증이 생겼고, 그 결과로 이석증을 앓는 거래요.”
여의사 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며칠 전 의사 후배에게 들은 병원 의사들의 각박한 현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비싼 등록금 내고 꿈에 그리던 의사가 되어, 빚내서 개원을 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는 이야기. 이석증 치료만으로는 병원을 운영하기 어려워 소장의 균을 이용해 종합 비타민이라도 팔아야 빚을 갚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차마 내 입으로 하기 싫었다. 왜냐하면 난 갱년기 환자고, 저승 문턱까지 다녀온 터라 의사들 형편까지 배려해 줄 형편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선생님. 제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일들에 대해 의사 선생님들 말도 다 달라서 뭘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한 가지는 알 것 같아요. 호르몬제를 다시 먹어야겠어요.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요.”
잠시 생각하던 여의사 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생약 성분으로 나온 약이 있는데, 비급여예요. 먹어볼래요?”
무조건 오케이.
“네. 일단 먹어봐야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까, 일단 먹어볼게요.”
여의사 샘이 무슨 약을 이야기 하는 지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유튜브 활동을 하는 유명 산부인과 의사도 스스로 처방해 먹고 있다는 약, 클리마토플란였다. 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갔다. 약사샘이 처방전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
“어? 지난번 약이랑 또 다르네요? 부작용이 있었어요?”
“그걸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괜찮으시면 말씀해 주실래요? 제약회사에서 임상 결과에 대해 물어보거든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에요.”
망설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말에 안젤릭을 먹고 일주일간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제가요, 원래 꿈을 잘 꾸지 않아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꿈은 꾸지만 기억을 잘 못 하는 걸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 약을 먹고부터는 매일 밤 사람이 죽는 꿈을 꿨어요. 첫날엔 남편이 죽고, 둘째 날에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죽고, 셋째 날에는 몇 년 전에 죽은 댕댕이 들이 나타나 사라지고, 마지막 날엔 죽는 꿈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사람이 떨어저 죽었어요. 그 과정이 너무나 이상해서 아직도 생생해요.”
“어머.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요.”
“저도 처음이에요. 그런 꿈은. 안젤릭 복용하면 우울하거나 불안해진다고 하던데. 아마도 평소엔 제가 의식적으로 우울함과 불안을 누르고 있다가 잠들면 무의식 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꿈을 꾸고 나면 감정이 요동쳐서 너무 힘들었어요. 이번 약은 부작용이 적었으면 좋겠어요.”
“클리마토플란은 생약 성분이라 부작용이 적을 거예요. 혹시 몇 알 드시라고 하셨어요?”
“어? 말씀은 못 들었는데, 다른 호르몬처럼 하루 한 알 먹는 거 아니에요?”
“그럼 일단 하루 한 알부터 드셔요. 이 약은 하루 최대 네 알까지 드실 수 있어요.”
그때는 몰랐다. 약사가 복용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뒤 나에게 어떤 후폭풍이 몰아치는 지 그때는 전혀 몰랐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100프로 이해하는 환자가 얼마나 될까? 나 역시 여의사 샘이 비급여라고 했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 했다. 그래서 계산을 하려고 약사샘이 건넨 약봉투를 보다 깜짝 놀랐다. 2025년 7월 기준으로 약값이 5만 원이었다.
비급여라는 게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리비알과 안젤릭이 3천원인 걸 감안하면 크리마토플란의 약 값은 비싸도 너무 비쌌다. 다행히 난 실손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어서 병원비와 약값의 90%를 돌려받기는 했다. 하지만 실손보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호르몬 복용도 어려운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