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극복기 3

제 다리가 코끼리 다리가 되었어요! 젠장.

by 홍작

호르몬제 안젤릭을 끊은 지 닷새째 되던 날, 자궁에서 피가 비쳤다. 생리라고 보기엔 네 달 만이었다. 공교롭게도 전날 남편과 관계를 가진 터라 혹시 자궁 내막이 찢어진 건 아닐까 불안했다. 갱년기 이후 질건조증이 있는 상태에서 관계를 가지면 자궁 내막이 손상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떠올라, 바로 산부인과로 향했다.


“자궁 내막이 얇아지긴 했지만 찢어진 건 아니고요. 생리 맞아요.”


“아, 다행이에요. 전날 남편과 관계를 가져서 혹시나 싶었어요.”


“갱년기 증상은 어때요?”


“잠을 잘 못 자긴 하는데, 예전만큼은 아니라서 일단 지켜보고 있어요.”


“힘들면 다시 와요.”


“네.”


입으로는 네,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 다른 다짐을 했다. 갱년기 호르몬 문제로 산부인과엔 다시 오지 말자. 갱년기란 게 누구에게나 오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나만 특별하다고, 유별하다고 느끼지 말자. 천천히 받아들이자. 천천히. 그러나 나의 다짐보다 내 몸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며칠 뒤, 평소처럼 운동을 하러 갔다. 가볍게 몸을 풀고 맨몸 스쿼트 100개, 맨몸 데드리프트 100개, 복근에 힘을 주며 원레그 데드리프트 왼쪽 오른쪽 각 30개씩, 어깨운동 15개씩 세 세트를 마쳤다.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신발이 작아진 것처럼 발이 꽉 끼었다. 종아리와 발이 터질 듯이 부어올랐다. 다리가 부어오를 때마다 겁이 났다. ‘쉬면 낫겠지’ 싶어 집에 돌아왔지만, 다음 날도 붓기는 그대로였다.


이번 붓기는 지난번 리비알을 먹을 때와 달랐다. 그때는 다리를 꽉 조이는 통증이 함께했지만 이번엔 단지 붓기만 했다. 그런데도 붓기가 눈에 띄게 심해졌다. 보통 자고 나면 붓기가 빠지곤 했는데, 이번엔 아침에 일어나도 그대로였다. 혹시나 물이 부족한가 싶어 더 마셔보기도 했고, 그 반대로 물을 안 마셔보기도 하고, 근육 운동을 더 열심히 해보기도 하고, 덜 해보기도 했는데 다리가 붓기엔 큰 영향이 없었다. 무엇을 하든 지속적으로 다리가 부었다.


내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탱탱하게 부어오르자, 함께 일하는 분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압박스타킹을 권했다. 그래서 압박스타킹을 사서 신었다. 그러나 압박스타킹을 신으면 잠깐은 나았지만, 벗으면 다시 부었다. 뿐만 아니라 압박스타킹을 신지 않은 부위는 여전히 부어 있어서 압박스타킹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검색창에 ‘다리 붓기’를 입력하자 가장 먼저 하지정맥류가 떴다. 하지정맥류란 정맥 안의 판막이 손상되어 심장 쪽으로 올라가야 할 혈액이 역류하면서 정맥이 늘어나고, 피부 밑으로 혈관이 도드라지는 질환이었다. 원인은 다양했다. 가족력, 과체중, 운동 부족, 오랜 시간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생활습관, 그리고 흡연.


난 하나씩 대입해봤다.


가족력

— 있다. 엄마가 시술을 받았고, 동생도 하지정맥류 증상이 있었다.


체중

— 정상.


운동

— 하루 1시간 반은 꾸준히 하니 부족하지 않다.


생활습관

— 장시간 서 있지도, 앉아 있지도 않는다.


흡연

— 하지 않는다.


결국 남은 건 가족력뿐이었다.


나는 하지정맥이라고 확신했고, 그 길로 가장 유명하다는 흉부외과를 찾았다. 그곳은 TV에도 자주 나오던 의사샘의 병원이었다. 강남 중심부, 새로 지은 유리 빌딩 안, 대기실에는 최신 장비와 고급 의자. 비싼 땅에 병원을 냈다는 건, 환자가 많고 치료 실적이 있다는 뜻이라 믿었다. 치료의 시작은 믿음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치료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믿음 하나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검사실로 들어가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초음파 검사 후 의사 샘이 컴퓨터 화면을 보며 말했다.


“다행히 아직 하지정맥류라고 진단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다리는 왜 이렇게 붓는 걸까요? 너무 심하게 부어요.”


“확률적으로 40~50대 여성의 30% 정도는 이런 증상을 겪습니다. 정맥류로 진단하기엔 이르지만, 더 붓지 않도록 혈류 순환 개선 주사를 권합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 오기 전부터 결심했었다. 하지정맥류가 아니면, 그 어떤 시술도 받지 않겠다. 다리 붓기가 갱년기와 관련되어 있다면 갱년기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흉부외과샘도 40~50대 여성의 30%가 이런 증상을 겪는다고 했고, 정형외과에서도 오십견의 원인을 설명하며 똑같은 말을 했다. 40~50대 여성의 30%가 걸리는 거라고. 그럼 갱년기 증상의 일부라는 이야기 하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흉부외과 샘도 정형외과 샘들도 누구 하나 갱년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남자라서 갱년기 증상이라고 말하지 않은 걸까? 혹은 자신의 전문 영역 밖이라서? 아니면 갱년기라고 진단하면 자신들에겐 돈이 안 되기 때문일까? 암튼 그들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난 시술을 준비하던 간호사에게 말을 했다.


“죄송한데, 시술은 안 받을게요.”


"저기요! 잠깐만요."


간호사가 다급하게 불렀지만 난 당당히 걸어나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갱년기에 대해 공부했다. 만약 다리 붓기가 갱년기 때문이 아니라면, 그때 다시 병원에 가면 된다. 1년 가까이 병원을 전전하며 진료를 받다 보니, 의사 선생의 한마디만 들어 봐도 나를 치료해 줄 명의인지 아니면 이름만 유명한 사람인지 가늠할 정도로 감이 생겼다.


내 자신이 웃겼다. 의사가 다 된 기분이랄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의사의 판단이 틀려도 내가 아프고, 내 판단이 틀려도 내가 아팠다. 결국 아픔의 주체는 나였다. 그렇다면 이번엔 내 판단을 믿어보기로 했다. 비록 내 판단이 틀린다 해도, 그 결과를 견디는 것도 나의 몫이니까. 이번만큼은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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