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극복기 2

“꿈에서 자꾸 죽어요.”

by 홍작

“솔직히 처음 듣는 이야기에요. 호르몬 부작용으로 죽는 꿈을 꾼다는 내용은 없었어요.”

“제가 이상할 걸까요?”

“아뇨.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조금은 남다른 것 같아요. 암튼 꿈 때문에 감정이 동요되어 불안하다고 느낀다면 호르몬 부작용일 수 있어요. 안젤릭이 기분을 우울하게 한다는 부작용이 있거든요. 일단 호르몬을 끊어 보죠.”

“네.”

호르몬을 끊은 다음 날, 신기하게도 난 누군가 죽는 꿈을 꾸지 않았다. 안젤릭 부작용 항목을 다시 확인하니 ‘기분변화(불안·우울)’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깨어 있을 때는 의식적으로 눌러두었던 불안과 우울이, 잠이 들자 무의식의 형태로 우울한 꿈이 되어 치고 올라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날 이후 여의사샘은 호르몬제를 더 권하지 않았고, 나도 더는 호르몬의 힘에 기대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나에게 맞는 호르몬’ 따윈 없다며 나 스스로 한동안 포기했었다.

내 생애 첫 번째 호르몬제는 리비알이었다. 리비알을 5주째 복용하다 다리 붓기에 압통을 느끼고 복용을 중단했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호르몬제를 찾기 위해 2주간 휴식기를 보냈다. 몸속에 남아 있던 호르몬 때문인지, 지난 2주 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 난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다. 여의사 샘이 육각형의 각진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난 2주 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 큰 불편함은 없었는데, 잠을 잘 못 잤어요. 중간에 자주 깨요. 예전처럼 잠을 못 잘까 봐 몹시 불안해요. 호르몬을 처방해 주세요.”


“리비알이 가장 안정적인 약이었어요. 이번 약은 부작용이 심할 수도 있어요.”


“일단 먹어보고 결정할게요. 저랑 잘 맞을 수도 있잖아요.”


잠시 고민하던 여의사샘은 한국 여성들이 두 번째로 많이 먹는다는 안젤릭을 처방해주었다. 복용법 하루 한 알. 반드시 시간 맞춰서 먹을 것. 그렇지 않으면 부정출혈이 나타날 수 있음. 안젤릭은 리비알에 비해 경고문 자체가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모두에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까, 약을 받자마자 한 알을 삼켰다. 그리고 곧바로 약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요즘은 검색만 해도 정보가 쏟아지니, 처방을 받으면 꼭 확인하는 것이 좋다.


리비알이 선택적 조직 에스트로겐 활성 조절제(티볼론)였다면, 안젤릭은 에스트로겐 + 프로게스틴 복합제였다. 에스트로겐은 폐경 후 결핍 증상을, 프로게스틴은 자궁내막 증식을 억제한다. 다만 심혈관계 질환, 유방암, 정맥성 혈전색전증 위험과 연관이 있을 수 있어 최단기간 사용과 정기검사가 권고된다고 적혀 있었다. 대표적 부작용은 부정출혈, 유방 압통. 그 밖에 편두통, 복부 팽만, 기분변화, 체중변화가 있을 수 있고, 드물지만 혈전증· 뇌졸중 등 심각한 이상반응도 열거돼 있었다.


부작용 목록이 길었지만, 일단 나에게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첫날은 멀쩡했다. 호르몬이 보충되니 기분이 안정되고, 무엇보다 잠을 잘 잤다. 그날 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이상한 일은 둘째 날부터 생겼다. 잠을 자다 꿈을 꾸었다. 평소 잠을 깊이 자는 편이라 꿈을 꾸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꿈은 꾸겠지만 꿈을 기억하지 못 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날 꿈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평소에 나타나지도 않던 남편이 꿈에 나타나 죽은 것이다. 남편이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죽은 남편을 끌어안은 내가 서럽게 울다 깨어났다. 잠이 깬 뒤에도 서러움이 가시지 않아 곤히 자고 있던 남편을 흔들어 깨워 껴안으며 말했다.


“죽지 말라고, 나 두고 가지 말라고. 엉엉.”


그날 하루 종일 우울했다. 꿈이 예시몽이라면 남편이 죽을지도 모르니 남편을 예의주시하며 관리 감독하며 통제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셋째 날에도 꿈을 꾸었다. 누군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심장이 먹먹해지며 아렸던 것으로 봐서는 친밀한 사이였던 것 같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서글프고 먹먹했던 감정이 이어져 하루 종일 힘들었다.


넷째 날에는 무지개 다리를 먼저 건넌 샤샤와 나나가 꿈에 나타났다. 샤샤와 나나는 내가 키우던 댕댕이들인데 꿈속에서도 언제나 처럼 공원에서 놀았다. 그러다 갑자기 샤샤와 나나가 사라졌고, 누군가 외쳤다. “저쪽에 강아지들이 죽어 있다”고.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다 꿈에서 깼다. 그날도 하루 종일 먼저 간 댕댕이들이 그리워 우울했다. 참 유별나게도 누군가 자꾸 죽는 꿈을 꾸네,하며 애써 잊으려고 했다. 그러나 다섯째 날에도 비슷한 꿈을 꾸고는 날이 밝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네 번째 날, 죽은 댕댕이들이 꿈에 나타나 죽은 것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섯째 날 밤 꿈을 꾸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또 죽는 꿈?”


여의사 샘이 믿기 어려운 듯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네. 친구 아파트에 방문해서 차를 마시고 있었어요. 친구 아파트에 넓은 창이 있어 바깥 경치가 잘 보였어요. 꽤 높은 층이었던 것 같아요. 시야가 탁 트여 하늘이 보였고 맞은편 아파트가 보였거든요.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맞은편 아파트에 파란색 커튼이 나부끼더라고요. 바람이 많이 부나보다, 커튼이 엄청 나부끼네, 생각하며 있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뭔가 불안했어요. 그래서 친구의 말에 집중을 못 하고 계속 커튼만 보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저 스스로에게 아무 일도 없잖아. 괜찮아 그냥 커튼이 나부끼는 거라며 위로를 했다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돌풍이 불면서 파란색 커튼이 휙 하고 뒤집히는 거예요. 그리고 뒤집혔던 파란색 커튼 사이로 목재 침대가 떨어지더라고요. 순간 놀라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 쪽으로 다가갔어요. 그러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사람이 ‘아악!!’ 하며 떨어지는 거 보였어요.”


여의사 샘이 놀라 눈을 깜빡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또 사람이 죽은 거죠. 안젤릭은 먹은 다음날부터 연속적으로 사람이 죽는 꿈을 꾸고 있어요. 십분 이해해서 사람이 죽는 꿈을 연속해서 우연히 꿀 수 있다고 치죠. 그런데 꿈에서 깨어난 뒤 감정이 심하게 동요돼요. 불안하고, 우울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 혹시 이게 호르몬 부작용일 수 있나요?”


“솔직히 처음 듣는 이야기에요. 호르몬 부작용으로 죽는 꿈을 꾼다는 내용은 없었어요.”


“제가 이상할 걸까요?”


“아뇨.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조금은 남다른 것 같아요. 암튼 꿈 때문에 감정이 동요되어 불안하다고 느낀다면 호르몬 부작용일 수 있어요. 안젤릭이 기분을 우울하게 한다는 부작용이 있거든요. 일단 호르몬을 끊어 보죠.”


“네.”


호르몬을 끊은 다음 날, 신기하게도 난 누군가 죽는 꿈을 꾸지 않았다. 안젤릭 부작용 항목을 다시 확인하니 ‘기분변화(불안·우울)’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깨어 있을 때는 의식적으로 눌러두었던 불안과 우울이, 잠이 들자 무의식의 형태로 우울한 꿈이 되어 치고 올라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날 이후 여의사샘은 호르몬제를 더 권하지 않았고, 나도 더는 호르몬의 힘에 기대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나에게 맞는 호르몬’ 따윈 없다며 나 스스로 한동안 포기했었다. 적어도 갱년기의 다른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전 06화갱년기 극복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