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너무 붓다 못 해 너무 아파요.”
인간이란 참 신기한 존재다.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일은 언제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머나먼 나라의 동화처럼 들린다. 누군가의 고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해 줄 수는 있지만, 그 주인공이 나일 거라곤 상상하지 않는다.
나에게 갱년기가 그랬다. 갱년기란 저 먼 나라의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 같아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갱년기로 힘들다고 호소할 때도 나는 조용히 위로를 건네긴 했지만 마음 깊이 공감하지 못 했다. 내가 아프지 않았으니까. 그 고통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난 갱년기 환자였다. 그것도 모질게 고생하고 있는 갱년기 환자였다. 호르몬 복용 후, 친구 모임에 나가 호르몬제를 먹고 있다고 말했더니 다들 입을 모아 말렸다.
“호르몬 부작용 있다던데.”
“호르몬 먹기 시작하면 못 끊는데. 약에 의지하는 거 안 좋은 거잖아.”
친구들이 겁을 주는 바람에 호르몬을 끊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1여년가 병원을 돌며 고생한 나날들을 생각하면,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이란 뜬구름과 같아서 내 주위를 맴돌다 사라질 것들이라 무시하기로 했다. 암에 걸린다면 그건 그때 생각해 보겠다.
호르몬 복용으로 불면증 뿐만 아니라 오십견 치료 후 남아 있던 미세한 통증마저 완화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호르몬을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었다. 처방해 준 4주치 호르몬을 완전히 소진하고, 병원을 다시 방문해 호르몬을 3개월치나 받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새 삶을 얻은 사람처럼 행복했었다.
그러나 호르몬 복용 5주 차에 접어들면서 유독 다리가 부어올랐다. 특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리가 붓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아팠다. 틀에 박힌 듯 일정한 나의 일상에서 변화라고는 하나뿐이었다. 호르몬 복용. 다리 붓기가 호르몬의 부작용인가 싶어서 복용 중인 호르몬제인 ‘리비알(Livial)’에 대해 찾아보았다.
리비알은 1988년부터 2025년까지 37년 동안 사용된 비교적 안전한 호르몬제였다. 주성분은 티볼론인데, 이 성분은 체내에서 바로 작용하지 않고, 체내에서 분해된 뒤 각 조직의 특성에 따라 다른 형태로 작용하는 게 특이했다. 즉 유방과 자궁내막에서는 에스트로겐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면서, 뼈나 생식기에서는 에스트로겐의 긍정적 효과를 내는 독특한 작용을 했다. 이를 두고 리비알을 ‘선택적 조직 에스트로겐 활성 조절제’라 불렀다. 하나의 약이 몸 안에 흡수된 후 조직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더욱이 기존의 호르몬 대체요법보다 유방이 아프거나 질 출혈이 적고, 안드로겐 작용 덕분에 성욕과 활력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혈압 상승이나 혈전 생성 같은 부작용도 적다고 하니, 정말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부작용은 존재했다. 유방 통증이나 질 분비물, 하복부 통증, 체중 증가 등의 부작용이 1% ~ 10% 사이로 경험할 수 있고, 여드름이나 질 진균증 같은 부작용은 드물지만 보고된 바가 있었다.
리비알의 대표적인 부작용 목록 어디에도 ‘다리 붓기’는 없었다. 하지만 내 다리는 점점 더 붓기 시작했고 붓기 정도에 따라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작은 이상이라도 생기면 다시 오라던 여의사 샘의 말이 떠올라 병원을 다시 찾았다.
“선생님, 다리가 붓다 못 해 너무 아파요.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아파요.”
“리비알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아니지만 간혹 다리 붓기를 호소하는 분들이 있어요. 일단 리비알 끊고 경과를 보시죠.”
호르몬을 끊는다니, 그건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미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날들을 생각해 보니 불안이 밀려왔다.
“근데 선생님, 저 호르몬제 없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부작용 생기면 어떡하죠? 저 잠 못 자는 건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 제가 좀비 같더라고요. 말도 못 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나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걱정마세요. 자신에게 맞는 호르몬제를 찾을 때까지 계속 시도해 봐야죠.”
‘자신에게 맞는 호르몬제’라는 말이 너무 낯설었다. 지금까지 다녔던 병원에서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감기 걸렸다고 “당신에게 맞는 감기약을 찾아봅시다”라고 말하는 의사를 본 적도 들어 본적도 없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더 강한 항생제나 더 강한 진통제를 처방해 줄 뿐이었다. 그러나 호르몬은 나에게 맞는 것을 찾을 때까지 맞지 않는 걸 걸러낸다는 말이 내 안에서 이상하게 오래 맴돌았다.
오십 평생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써왔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매번 바뀌기도 하고 새롭게 발견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을 호르몬은 무엇인가로 바꿔 놓으면 새로운 길이 보였다. 나를 아는 길은 어쩌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제거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나를 찾기 위해 나와 맞지 않는 것을 제거하는 것.”
그 말이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여의사 샘이 말했다.
“기존 호르몬 약이 몸에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약 끊고 2주 후에 봐요.”
“네.”
여의사 샘이 시키는 대로 호르몬제를 끊자마자 하루 종일 괴롭히던 종아리의 압박통이 사라졌다. 물론 다리 붓기도 많이 줄었다. 약 한 알에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니. 호르몬이라는 존재가 새삼 크게 느껴졌다. 나를 여자로 만든 것도 호르몬, 아이를 낳아 키우게 도와주는 것도 호르몬, 출산과 육아가 끝나기가 무섭게 여자로서 폐기처분하는 것도 호르몬이라는 생각을 하니, 어쩌면 내 몸의 주인은 나의 의식이 아니라 호르몬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에게 잘 맞는 호르몬을 찾을 수 있을지.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이주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2주 후 난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