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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형아 Dec 13. 2024

계엄령의 부당함으로 살펴보는 우리 아이 저축

‘그게 왜 니 돈이야 ㅋㅋㅋ’

계엄을 옹호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있습니다.


‘권력의 주인이 대통령인데, 그게 무슨 쿠데타고 내란이냐. 성립하지 않는다’ 

라는 거죠. 언뜻 들으면 ‘맞나?’ 싶지만, 아니죠. 권력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니까요. 주권은 국민 모두가 나눠가지고 있는 것이고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대통령이 ‘임시적’으로 ‘행사’ 하는 거죠. 그러니 그게 어떤 행동이든 대통령이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동의 없이는 마음대로 행사하면 안 되는 것이고, 국민들이 하라, 마라를 결정하는 거죠. 


여기까지가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배우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민주주의를 잘 실천하고 계신가요? 가만 생각해 보면 옛날 우리네 부모님들은 독재를 참 좋아들 하셨죠.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는 돈 벌어 온다고 큰소리치며 독재. 그 돈을 단 한 푼도 남김없이 받아서 가계를 운영하는 어머니는 이게 다 집을 위해서 라며 독재. 그렇게 우리는 한 푼 두 푼 세뱃돈을 빼앗겼고, 심지어는 군대에서 모은 돈도 엄마 가게 자금으로, 아버지 병원비로 다 뺏겼죠. 그 마저도 ‘나중에 크면 줄게’ 라든가, ‘삼촌은 아빠 동생이니 이건 아빠 거야’라고 핑계라도 댔다면 아주 양반 가문이십니다. 대부분은 일언반구 말도 없이 그냥 돌아오는 귀성길에 내 손에 꼭 쥐고 있던 만 원짜리 몇 개를 낚아채듯 빼앗아 가셨을 겁니다.


좋습니다. 다 지난 옛이야기고, 나는 그러지 않겠노라. 나의 아들 딸에게 어렸을 때부터 돈을 모으게 해 지난날의 내 피눈물을 너는 겪지 않게 하겠노라며 큰돈 작은 돈을 우리 애기 핏덩이 때부터 청약통장에, 주식통장에 차곡차곡 모으시고들 계실 겁니다. 이게 작은 돈이 아닌 게, 1년에 100만 원씩만 모아도 10살짜리 아이에게 1000만 원이 생깁니다. 어른에게 1년 100만 원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10살짜리 아이에게 1000만 원..? 엄청난 금액이죠. 이걸 투자해서 불릴 수 있다면 더욱더 큰돈이 되겠죠. 1년에 100만 원씩 15세까지 1500만 원을 저금해 줬다고 가정해 봅시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된 당신의 딸이 아빠가 꾸준히 나를 위해 1500만 원을 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번 존잘 콘서트에 가겠다며 굿즈 구매 비용으로 70만 원, 토, 일 콘서트 티켓값으로 35만 원, 그리고 숙박비 15만 원이 필요하다고 그 통장에서 빼겠다고 하는군요. 


‘그 돈 내 거잖아. 나중에 나 쓰라고 넣어 준 돈이잖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제야 우리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사랑의 매였고 나의 일탈을 막고자 하는 서투른 우리네 부모님의 체벌이 생각이 날까요? 아아- 그리우신 아버님 어머님, 바지적삼 다 적신 그 기분 이제야 알겠네요- 하실 겁니까? 못된 것, 내가 지 미래 생각해서, 세금 생각해서 어렸을 때부터 넣어줬더니, 이제 와서 쓸데없는 아이돌 콘서트 간다고 수백을 쓰겠다고? 이 돈 다 빼버려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겠죠. 


이야… 이거 계엄령이네요.


사실 이렇게까지 진행되었다면 당신의 딸에 대한 경제 교육은 이미 완전히 실패해 있습니다. 당신의 딸은 돈이 나무에서 열리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억울하시겠죠. 늘 아껴라고 말하고, 부족한 건 다 해줬는데도 쓸데없는데 돈을 쓰겠다니까요. 어렸을 적부터 부루마불도 같이 하고 우리 아이 용돈기입장 같은 것도 쓰게 하고 최선을 다 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삐뚤어졌을까요. 정말 이게 사춘기라는 것일까요..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경제교육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독재죠. 형태만 다를 뿐, 집에서 돈을 집행하는 건 엄마, 혹은 아빠가 전담해서 결정했을 겁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선택’만 할 뿐 소비를 할 기회는 전혀 없었죠. 가고 싶은 학원, 먹고 싶은 간식, 갖고 싶은 장난감을 이야기하면 엄마와 아빠가 ‘알아서’ 제공했습니다. 그것보다 더 문제는 실제 집안에 대소사가 있어서 돈을 써야 할 때 엄마 혹은 아빠가 일방적으로 결정했을 거라는 겁니다. ‘내가 벌어온 돈’을 왜 내 동창 회비를 못 내게 하느냐, 라던지, ‘이게 다 우리 가정을 위해 쓴 건데 왜 잔소리냐’ 라며 상대방의 입을 틀어막았을 겁니다. 결국, 이 가정은 독재 혹은 잘 봐줘야 과두제 정도입니다. 분명히 가족 구성원인 딸은 그 어느 소비에도 입을 올릴 수 없습니다. 15년간 그렇게 살아온 딸아이가 어느 날 진짜로 갖고 싶은 혹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요? 네. 엄마나 아빠가 그러하듯 ‘내놔’ 혹은 ‘하겠다’라고 통보하겠죠.


그러면 어떻게 했어야 하나요? 어떻게 하긴요. 우리 가족은 경제 공동체이며, 돈을 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우리 모두’가 함께 의논하여 결정한다는 걸 보여줬어야죠. 엄마가 명품백을 사려고 할 때 아빠가 스탑.이라고 말하면 멈추고, 아빠가 주말 술값으로 너무 많은 지출을 할 때 딸이 그만 마셔라고 하면 멈춰야죠. 아빠가 엄마에게 생활비 하라고 수입의 대부분을 줬으니까 시키는 대로 살림이나 잘 살아 같은 소리는 하면 안 되는 거죠. 엄마도 ‘니가 생활비 적게 줘서 나 알바해서 번 돈이니까 이 돈에 입 댈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가족으로서 같이 살게 된 이상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습니다. 역할을 잘 이행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가족 구성원 모두 같은 크기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 돈이 내 주머니에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닙니다. 가정 내에서 내 역할로 얻은 유동성이니, 이것을 함부로 움직이면 가정 내 유동성 위기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딸이 조금 더 어릴 때 ‘아우! 아빠 술 좀 그만 마셔!’라고 할 때, 쪼끄만 게 건방지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때 아이의 말을 들어주세요. 마찬가지로 ‘여보, 그건 좀 많이 사는 것 같아’라고 하면 장바구니에서 물건을 좀 빼세요. 그걸 본 딸은 엄마가 아빠한테 졌네 같은 유치한 생각 안 합니다. ‘아. 우리 엄마아빠는 서로의 의견을 들어주는구나’라고 생각하죠. 그런 작은 생각들이 모이면, 나중에 존잘 콘서트를 못 가게 해도, 딸아이는 아빠의 발언권을 인정하고 이해해 줄 겁니다. 


그게 민주주의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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