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존버'는 가능한가?
우리 공장에서는 비정기적으로 고철이 나온다. 이걸 1년에 한두 번씩 모아서 파는데.. 페이스북을 뒤져보니 2015년에는 1kg당 80원. 2020년에는 200원을 웃돌았다. 2021년에는 고철값이 급속도로 오르더니 현재는 동네마다 좀 다르겠지만 550~600원 사이인 듯하다. 그래프를 그려보면 6년간 엄청난 가격상승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면 생각하겠지.
'우와... 80원일 때 고철을 쌓아놓고 지금 팔았으면 7배 넘게 먹었겠네?'
그렇다면 고물상들은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벌었을까? 고물상은 지금 유래없는 호황을 누리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을까? 정답은 '아니요'다. 80원일 때나 600원일 때나 그들이 버는 돈 자체는 그다지 차이가 없고, 오히려 가격이 비싸지니까 매출만 커져서 세금부담만 더 늘었다고 하소연이다. 엥? 번만큼 내는 게 세금인데 뭐 부담이 따로 더 커져? 이 양반들 탈세하니까 그런 거 아냐? 아니다. 요즘 고철을 매매하려면 고철을 매매하는 통장이 따로 있어야 된다. 비철계열은 훨씬 더 깐깐하고. 그럼 뭐야. 왜 세금부담이 더 크다는 거야? 왜냐니, 고철은 주식처럼 존버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니까 이걸 회전시켜야 된단 말이지. 덩치가 크고 녹이 슬면 상품성이 떨어지니까 적재적소 온타임에 팔아야 된다 이 말이야. 그러니 고물상은 늘 재고가 있어야 하고, 늘 물건을 큰 업체에 팔아야만 장사가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늘 현금이 필요하고... 매출이 커서 세금을 많이 내야 하면 갑자기 발생하는 물건매집에 힘들고.. 근데 고철값은 계속 오르니까 현금은 보유해 놔야 되고.. 그런 거다.
고물상은 얼핏 보면 중고차 시장같이 중간에서 수수료만 먹는 업체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재가공 업체'에 가깝다. 온갖 종류의 고철을 받아와서 각종 소재별로 나누고 필요 없는 부분은 폐기물로 처리하고 스뎅, 전선같이 비철이 나오면 맞는 소재끼리 구분해서 판매하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고철을 매집하는 업체의 입맛에 맞게 크기를 재단한다. 즉, 몇 톤짜리 고철덩어리 가져가면 고물상에서 싱글벙글도 하지만 '어휴... 저거 다 언제 자르고 앉아있어'라는 고민에 쌓이게 되는 것.
즉, 고물상은 고철값이 얼마냐 보다는 지금 동네에 깔린 고철이 얼마나 있고, 그 고철을 얼마나 잦은 기간 동안 사줄 사람이 있느냐에 달려있다. 지금 고철값이 오르는 건 원자재 이슈, 전 세계물류 이슈, 그에 따른 중국 내 철강 생산성이슈 등이 겹쳐서 고철이 필요한 큰 업체들이 닥치는 대로 매집하고 있기 때문이니, 고물상 입장에서는 빨리 재고를 확보해서 제공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우리 공장에서 만약에 꾸준히 고철이 발생하고 남는 공간이 있다면 나라도 고철 안 팔고 구석에 쌓아놓지 내일이면 더 오를 건데 뭣하러 힘들게 싣고 가서 팔고 앉았냐고.
근데 이걸 조금 돌려서 유가에 넣어보면 어떨까? 정유회사는 원유값이 엄청 올랐으니 돈 많이 벌었을까? 정유회사는 현재 가지고 있는 재고를 언제 확보했을까? 2020년 WTI원유 선물급락 이슈 때 확보해 놓은걸 지금껏 가지고 있다가 정제해서 팔고 있으면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겠지. 그런데, 과연? 정유회사는 치솟는 원유가격을 감당하면서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고 있나? 중동에서는 그렇게 팔아주나? 기름값이 올라서 점점 부담을 느끼는 사용자들의 반발을 쌩까고 '우리 원재료값이 올라서요~' 할 수 있나? 고철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보는 눈이 많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