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00

F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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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예랑

간밤에 꾼 꿈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어지는 악몽, 그리고 악몽. 반복되는 꿈. 꿈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실패뿐이었다. 꿈에서는 매번 모든 것이 신기루와 같이 사라진다.


한밤에 벽을 더듬어 켠 전등 아래, 화장실 거울 속 낡은 욕심의 거죽을 두른 초라한 돼지 한 마리가 서 있다. 거울 속에 선 사람은 마른 손으로 푸석한 얼굴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완전한 패배. 고개를 가로젓는다. 다시금 방으로 돌아온 나는 돌처럼 굳은 몸을 누이며 생각한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 모두 끝났다. 그것을 깨닫자 잊고 있던 지독한 고독이 몰려왔다.


그간 독방에 갇힌 죄인처럼 글만 마주하고 살았다. 그사이 날 찾는 이는 서서히 줄어 가고 어느덧 눈을 뜨면 밀려오는 것은 인이 박인 고독뿐이다. 홀로 울타리를 두르고 글의 진창에서 뒹굴고 또 뒹굴었다. 내게 남은 것은 복잡하고, 뒤엉키고, 미처 비우지 못한 채 방치된 폐기물통 혹은 찐득한 오일통과 같은 사념뿐이다. 무참히 쑤셔 넣은 종이로 가득 메워져 더는 닫히지 않는 서랍처럼 나는 덩그러니 누워 있다. 도무지 안정되지 않는 삶. 평화 없는 삶. 글은 내게 무엇을 주었나. 그 무엇도 주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모두 포기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 없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리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진창에 빠진 수레바퀴처럼, 속절없이 굴러가 얽히고설켜 버린 실타래처럼 모든 것이 엉망이다. 처참한 패배. 결국 그것을 인정해야 했다. 앙상하게 변한 몸은 진작에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한밤중, 목석처럼 누워 두 눈을 껌뻑인다.

글은 내게 무엇을 주었나. 잠깐의 불같은 분노가 인다. 골수의 무덤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 까만 속을 뒤적이자 저 깊이 숨어 있던 작은 불씨가 순간 거세게 타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나간 분노가 되어 금세 식어 버린다. 뒤통수가 시큰하고 욱신거린다. 나는 가만히 누워 두 눈만 껌뻑일 뿐이다. 글이 원망스럽다.




그러나 어둠 속 껌뻑이던 틈에 어느 한 문장이 떠오른다.

어느새 마음에 문장이 떠오른다. 다시 탐욕이 인다. 황금보다 영예보다 귀한 그것. 그것을 놓칠까, 그것이 잊힐까 캄캄한 밤중 머리맡 불빛을 급하게 켜고 손가락 한 마디의 불빛 아래 떠오르는 모든 것을 빠르게 적어 내려간다. 이 모든 것은 결국은 실패할 이상理想. 그러나 욕심에 가득 찬 초라한 돼지 한 마리, 결국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서야 잠에 든다.







ebonie_0o0 / 꾼 꿈. 2024.01






* 안녕하세요. 저는 차예랑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이곳에 '100'이라는 제목 아래 백 편의 글을 올리려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글입니다. 차예랑의 '100'은 일러스트레이터 ebonie_0o0와 함께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 ebonie_0o0의 그림은 앞으로 열 편의 글마다 한 작품씩 실릴 예정입니다.


_ 글

차예랑


_ 그림

ebonie_0o0 / 일러스트레이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찬찬히 그림 그립니다.

인스타그램 : ebonie_0o0

이메일 : solbokch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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