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바다>
나의 첫 바다는
할머니의 품 안에서였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여름날.
할머니와 동네 할머니 서너 분이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식히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할머니는 나를 업고
집 뒤편 작은 해수욕장으로 향하셨다.
본격적인 해수욕철을 앞둔, 아직 개장 전인 바닷가.
할머니는 등에 업혀 있어 땀에 끈적해진 날 옆구리에 끼고
아무렇지 않게 바닷속으로 첨벙 들어가셨다.
할머니들은 입고 있던 몸빼 바지 그대로
바다에 몸을 맡기셨고, 난 수영복이니 튜브니
그런 거 없이 할머니 팔에 의지해 대롱대롱 매달렸다.
꽃무늬, 나염무늬,
화려한 몸빼 바지와 치마바지를 입은 할머니들이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속에서
너울너울, 해파리처럼 춤을 추었다.
처음 해보는 물놀이라 나는 그저 신이 났고,
할머니들과 나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해수욕장은
오롯이 우리만의 차지였다.
햇볕에 달궈져 적당히 따뜻한 바닷물.
그리고 처음 느껴보는 무중력.
영원히 떠있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첫 바다이자,
할머니와의 제대로 된 첫 추억이다.
할아버지는 오후에 물에 젖어 집에 들어온 나와 할머니를 보고 웃으시며,
다음날은 할아버지랑 같이 배 타고
고기 잡으러 가자고 하셨다.
“나 과자 사주려고 고기 잡는 건데
내가 할머니랑만 노니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다음 날은 할아버지의 작은 배도 잠깐 같이 타고과자를 평소보다 더 많이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며칠 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화장품 방판 일을 마치고 퇴근해 온 어린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울컥했다고 한다.
내가 백사장과 해수욕에 맛이 들려 매일매일 바다로 가자고 할머니를 졸랐던 덕에, 원래의 피부색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말에만 만나는 엄마가 못 알아볼만했다.
할머니 앞에서는 차마 울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나를 안고 속상해서 펑펑 울었다고.
“우리 딸 아닌 줄 알았어. 너무 까매서. “
스물셋, 스물다섯의 부부가 아이도 못 보고 맞벌이를 하면서, 그 속이 어땠을까.
며칠 만에 그리운 딸을 보러 왔는데, 왠 시커먼 추장 딸 같은 애가 ‘엄마!’하며 뛰어 왔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 여름이 너무나도 찬란했다.
살이 타는 것도,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그 감촉도, 모든 게 근사하고 신이 났다.
그날 이후, 나는 진정한 바닷가 아이로 거듭난 것이다.
엄마는 가끔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며 말한다.
“그때 네 얼굴이 타서 아직도 회복이 안 된 것 같아.
딸 셋 중에 네 피부가 젤 좋긴 한데, 또 젤 까맣잖아. “
나는 그럴 리 없다며 웃으면서도, 속으로 ‘혹시?’한다.
엄마는 그날 울었지만,
나는 그날, 바다를 사랑하게 되었다.
후에 멀리 도시로 이사를 오고 나서도,
삶의 에너지와 멘탈이 방전될 때면
꼭 고향의 바다가 아니더라도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서 충전을 가득하고 돌아온다.
바다는 내게, 슈퍼맨의 태양과 비슷한 존재랄까?
고향의 바다는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 서글프다.
물빛은 여전히 맑지만, 반짝이던 백사장은 해마다 조금씩 쓸려가 이젠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곧 바닥을 드러낼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나의 바다는
할머니에겐 손녀와의 첫 물놀이였고,
엄마에겐 아린 눈물의 기억이었고,
또 할아버지에겐 손녀의 과자가 되어주었다.
오늘 이 바다는
조개를 주우며 걷고 있는 내 아이에게
어떤 이름의 바다로 기억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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