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호수가 품은 벚꽃길

< 달이 다섯 개 뜨는 곳>

by 차유진

고향은 조금 쌀쌀한 편이라

3월에도 눈이 자주 내렸고,

벚꽃도 한참 뒤에야 피었다.


그래서 꽃구경을 놓친 이들에겐

그 늦깎이 벚꽃이 여간 반가운 손님이 아니었다.


한낮의 밝은 해 아래서 즐기기보다,

우리 고향의 벚꽃놀이는 저녁이 되어야 제맛이었다.


호수를 중심으로

둘레를 휘감은 벚꽃이 천지를 이루고,

그 뒤로 펼쳐진 바다는 망망히 흐르며,

맑은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떠 있었다.


벚나무마다 달린 조명들이

벚꽃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꽃잎과 빛을 뿌려대며 유혹했다.


호수를 둘러싼 벚꽃길

그 광경은 마치

사진 속 인물들의 눈빛이 포화된 색채로 뒤틀리듯,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였다.


그땐 아이폰도, 자동 HDR도 없었으니까.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동생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벚꽃을 잡으려 했지만,

소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원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나 보다.


한여름 해수욕 시즌이 아님에도

벚꽃 축제 기간엔 동네가 참 활기찼다.

장사하시는 분들도 간만의 대목이었고.




고향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다.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는 곳.”


하늘에 뜨는 달,

바다에 뜨는 달,

호수에 뜨는 달,

술잔에 뜨는 달,

그리고…

임(님) 눈동자에 뜨는 달.


바다에 뜬 달


지금은 바닷가에서 폭죽이나 불꽃놀이를

마구 할 수 없지만,

그땐 그런 규제가 없어

벚꽃 축제 기간이면

바닷가에서 폭죽이 터지는 건 흔한 일이었다.




벚꽃놀이 추억 중,

나는 딱 한 번 마차를 탄 기억이 있다.


축제 기간,

늙은 말이 끄는 마차가 눈에 띄었고

신데렐라처럼 왕자에게 달려가고 싶었던 나는

아빠를 졸라 마차에 올랐다.


하지만 그 늙은 말은

백마처럼 멋지지도 않았고,

마차를 끌던 아저씨는 도마뱀처럼 시종으로

변하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내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던 기억.



그 뒤로 말을 보면,

자꾸 그때 그 늙은 말이 떠오른다.

어딘가 미안했던 기억,

아쉬웠던 환상,

그리고 말발굽소리의 추억까지.




지금도 고향의 벚꽃은 늦게 핀다.

올해도 지금이 한창 축제 중이다.


이제는 늙은 말이 끄는 마차는 없고,

대신 연인들이 나란히 탈 수 있는

이륜 자전거가 조용히 축제를 누빈다.


지붕도 달려 있어서

몰래 애정행각(?)을 나눠도 좋겠다.



폭죽 대신

벚꽃 달고나, 벚꽃 솜사탕, 벚꽃 타로,

목공 체험, 바리스타 체험 같은

작고 아기자기한 즐길 거리들이 늘었다.



바다와 호수가 있는 벚꽃길.

그 길을 부모님, 동생들과 다시 한번 걷고 싶다.

아빠가 매년 봄마다 우리를 데려가 주셨듯이,

이번엔 우리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온가족과 함께 가고싶은 벚꽃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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