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기적밍기적, 그날의 오후

<바다요정의 요리?>

by 차유진
파도가 부서지는 방파제

방파제는 햇빛을 받아 희끗희끗했다.

빛의 사슬처럼 얽힌 그물뭉치들 위로

해가 반사되어 반짝이고,

그물의 마디마다 시간이 박혀 있었다.


아저씨들은 해를 등지고 앉아 그물을 수선했다.

손만은 빠르게 움직이는 가운데,

그 풍경만은 참 느렸다.

바다는 늘, 조용한 일터였다.




그날도 나는 컴퓨터 학원에 가는 길이었다.

가기 싫었다.


그래서 멀리 도는 길이었지만,

항상 방파제를 지나는 해안길을 택했다.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가는 해안길 옆으론

바닷가 아이들의 오후가 퍼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미역을 줍고,

누군가는 고무장화를 쩔걱거리며 걷고.


그 모습들을 천천히 담으며,

나는 조금씩 땡땡이의 결심을 굳혔다.


이끼 낀 바위들

해안길을 지나면

바위가 많은 바다가 나온다.


이끼 낀 바위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가면,

그 바위엔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아이들 한 무리가 있었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내 친구도.


나는 결국 학원 대신 그 자리를 택했고,

친구 곁에 앉아

작은 따개비를 하나씩 떼어냈다.


손톱 밑으로 스며든 바닷물,

손바닥 위에서 작고 단단하게 말라가던 따개비,

그 오후의 공기와 온도와 냄새.




나는 라면 하나 끓일 줄 몰랐던 아이였는데,

그 친구는 우리 집 부엌에서

따개비를 삶았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냄비 앞에서,

엄마처럼 익숙하게

고추장, 참기름, 마늘을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그리고는 완성된 요리 한 접시를

툭, 내밀고


따개비 요리중


“잘 있어” 같은 말 한마디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날 저녁,

나는 엄마에게 학원 안 간 걸 들켜

꽤 크게 혼이 났지만,

그 기억은… 이상하게 좋았다.


마치 동화처럼,

바다에 살던 요정이

우리 집에 들러

요리를 남기고 떠난 것 같았다.


그 친구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따개비 맛,

그 압도적인 능숙함,

그 순간의 감정은

세월이 이토록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어떤 추억은 풍경을 떠올리면

감정을 불러옴과 동시에 그날의 냄새까지

코끝에 돌게 하는 신비로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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