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인자를 변호하는 사람입니다.

by 변호사조민우

고향인 청주에서 운 좋게 로펌의 파트너변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의뢰를 받지만 그 중에서도 중고등학생의 진로관련 강의는 흔쾌히 감사하게 다니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사무실을 떠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통해의 즐거움은 가뭄 끝의 단비와 같습니다.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주제를 가리지 않고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다양한 질문도 받게 되는데, 그 중에서 빠지지 않으면서도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은 바로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하시나요?"라는 질문입니다있


그럴 때마다 다시 한 번, 아! 나는 살인자를 변호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틀에 박힌대로, 의무감으로 하면 됩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등 틀에 박힌 대답도 있지만 사실 그 어떤 변론보다 답하기 어렵습니다.


저 또한 변호사이기 이전에 사람인지라 직업윤리앞에 감정을 추스리기 쉽지 않습니다.


변호사가 되고 처음 맞았던 폭행치사[폭행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 사건은 가슴 속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중학생 아이가 상급생에게 폭행을 당해 숨진 사건이었는데, 피해자의 어머니가 법정에서 눈물로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그렇게 죽었다는 피해감정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적인 아픔을 공감할 수 밖에 없었고, 재판이 끝나고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여전히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 대답은 여전합니다. 또 그런 변론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전 단호히 변론을 맡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살인자에 대한 단죄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살인자를 위한 변론'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손가락질 하겠지만, '마녀사냥'을 통해서 인류는 형사법정의 틀을 완성해 왔습니다.


"마녀다!"라는 잘못된 군중심리로 억울한 죄인을 만들고, 그 죄인의 목숨을 빼앗은 아픈 기억 속에


단 한명의 억울한 누명도 없이, 적절한 처벌을 통한 실질적 정의를 이룩하기 위해서 엄격한 형사절차를 만든 것이고, '필요적 변론'을 정립한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검사는 죄인의 죄가 있음을 증명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의 요구를 하는 반면 변호인은 무고한 사람에 대해서는 무죄를 주장하고 양형변론을 통해서 선처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법관은 양측의 얘기를 종합하고 유무죄의 판단 및 유죄일 경우 정의로운 적정형이 무엇인가를 단죄합니다.

그것이 바로 각자 해야 할 정의를 위한 시스템이고, 그러한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 나라를 우리는 사법후진국이라고 부릅니다.


전 검찰은 검사의 역할을, 법원은 법관의 역할을, 변호사는 변호인의 역할을 각자 잘 수행해 나가리라 밉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을 위한 변호인의 역할이 단순히 극악한 범죄를 범한 죄인을 돕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정의를 바로 세우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아니 언제든 피고인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준비하여 공판정에 나가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