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되면 많이 다루는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이혼'사건입니다.
혼인이 많은만큼 이혼도 많지요.
저 또한 미혼이던 변호사활동 초창기 참 많은 이혼사건을 담당했습니다. 부부사이는 부부만 아는 것처럼 참 다사다난한 사연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무거운 가정법정의 분위기, 그 속에서 서로의 대리인들은 각자 맡은바 역할에 걸맞게 열띤 변론을 주고 받고 있는데,
그 속에서 판사님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짓고 굉장히 난감한 모양입니다.
제 사건은 아니지만 무슨일인가 하고 귀를 기울여 봅니다.
짧은 침묵이 끝나고, 판사님은 "그럼 저 핏덩이 같은 아이는 누가 키우나요"라고 얘기를 하십니다.
무슨 일이고 하니, 서로 이제는 도저히 같이 못살겠다고 싸우는 당사자들의 뒷편으로 한 지긋한 노인이 이불에 겹겹이 쌓여 있는 딱봐도 체 100일이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변론의 내용은 '서로 아이를 키울 마음이 없으니 상대방이 친권 및 양육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이혼 사건을 경험한 입장에서도 '서로 자신을 친권 및 양육권자로 지정해 달라.'는 주장은 보았으나, 서로 남이 키워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낯설었습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 빛을 본 너무나 이쁜 신생아라면 말입니다.
저 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변론을 듣고 있던 사람들 또한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습니다.
솔직히 저 아이가 자기의 부모가 낳자마자 서로 안키우겠다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지 도무지 감이 서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 충실한 변론을 할 수 밖에 없는 변호사의 마음도 측은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과연 저들을 부모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헛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아동학대사건을 보면서 그 부모를 욕합니다. 하지만 이혼법정에 보면,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부모의 책임은 뒷전에 둔 체, 애를 키우면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물건도 아닌 아이를 떠넘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 다를까요?
어찌되었든 그 모습은 변호사로 첫 발을 내딛은 저에게 너무나도 보기 싫은 모습이었고, 이후 일종의 이혼소송을 기피하는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는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그들에게는 깊은 박수와 설사 조금 부족하더라도 지나친 자책은 불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아이에게 떳떳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