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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Mar 03. 2019

일생 고단하셨던 아버지에게 휴가를 선물하고 싶다

나의 아버지 이야기

나도 나이를 먹고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겪게 되니 부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인지, 예전 같으면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의 내용에만 귀가 쓰였을 텐데, 이제는 그 말씀을 맥락적으로 이해하려 애쓰게 된다.


만약 내가 영민했더라면,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에 이런 상황을 더 일찍 알아채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근면’의 표상이다. 대학 진학으로 서울로 오기 전까지, 대구에서 당신의 아들로 사는 건 전혀 쉽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엄격하고 가족에게도 엄격한 — 그러나 가족을 제외한 타인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머니, 누나 그리고 나를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지금껏 가장 힘든 사람은 아버지 자신이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아버지 자신을 제외한 세 명의 게으름 — 설령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 을 두 눈으로 목도하며 ‘근면’의 길로 ‘계도’하셔야 했으니까.


그리고 보시다시피 그 과업은 성공하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이 아버지의 기준에 맞추어 살았어야 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특히 나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었거니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근면’은 정도가 지나쳐 ‘휴식을 죄악시’하는 지경이었으니까 말이다.


한 예로 아버지의 인생에 ‘휴가’는 없었다. 슬프게도 어머니 역시 그렇게 사셔야 했다. 외관상 ‘휴가’처럼 보이는 것들도 아버지에게는 ‘다른 종류의 일’에 불과했다. 어머니 역시 그런 기조를 유지하셔야 했다.


두 해 전, 아버지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떠났던 가족여행. 여수로 떠나 나주를 들러 대구로 돌아왔던 그 여행도 아버지에게는 ‘손주들에게 가족추모공원을 보여주고, 격조한 증조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기 위한 여행’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쉬는 건 아버지에게는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런 아버지를 쉬게 하는 것은 오로지 약간의 취기를 빌려 자신을 잠시나마 풀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잦지 않았고 충분치 않았으니, 일종의 ‘소진’ 상태가 찾아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걸 편하게 드러내는 성격도 아니니,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구구절절한 아버지께서 모처럼 누나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올여름 휴가를, 그것도 여권까지 만들어 해외로 떠나시겠다고 한다. 그 ‘회심’을 듣는 내 마음은 ‘왜 이제야…’ 싶은 서운함도 서운함이지만, 얼마나 반갑던지.


물론 아버지는 그 계획을 말씀하시며 여전히 이런저런 구실을 덧붙이신다. 이번 휴가를 계기로 아버지께서 순수한 휴식의 가치를 알게 되면 좋겠다. 삶에 변화를 시도하기에 너무 늦은 때라는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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