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총이가 ‘건강’을 바탕으로 살되 ‘재미’를 잊지/잃지 않기를...
몇 주 전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참석했던 자녀권리존중 부모교육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여기 계신 학부모님들께서는
어떤 교육 철학을 갖고 계시나요?
‘교육 철학이라…, 조금 거창한 걸?’ 늦게 도착한 탓에 맨 앞줄에 앉아있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나를 본 강사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여러분의 아이가
어떤 아이로, 어떤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시나요?
강사님은 요즘 부모들은 다들 ‘행복한 아이’로 키우겠다고 말을 하는데, 그건 말뿐인 것 같고 실제로 하는 걸 보면 다들 자기 아이들이 ‘똑똑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를 콕 찍어 “아버님은 어떠세요?” 하고 물어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린 탓이었을까.)
나는, “요즘은 ‘똑똑한 아이’는 인기가 사그라든 것 같고 ‘창의적인 아이’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강사님은 웃으시며 “그렇다면, 아버님은 아이가 창의적으로 자랄 수 있게 어떤 것들을 하고 계시는가요?”하고 물어보았다. 나 역시 웃으면서, “글쎄요. 아직 어려서 뭘 할 나이는 아니고요. 그리고 그냥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이날 강사님과 나누었던 대화는 나에게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나는 총총이의 아버지로서
총총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고
무엇을 어떻게 하지 않을 것인가?
당연히 바라는 것이 없다. 아직 대소변도 못 가리는 꼬맹이한테 바라기는 무엇을 바란다는 말인가. 그러나 내가 무엇을 바라건 바라지 않건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총총이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건 내가 총총이와 함께 살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이 주제로 깊이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행복한 아이로 키우겠다’? 어떤 마음인지는 알 것 같지만, 나는 부모가 자녀를 행복한 아이로 키우겠다고 하는 말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이다. ‘행복’? 우리 중에 행복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달성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키우겠다’? 우리는 과연 자신 이외의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인 걸까?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부모가 행복해도 아이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부모가 행복하다고 꼭 아이도 행복한 것일까. 또, 부모의 행복을 꼭 아이의 행복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할까. 이런 의문이 든다.
보통의 육아서가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 하는 반면, 아이가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 «부모로 산다는 것»(제니퍼 시니어)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이것은 정말 아름다운 목적이다. 그러나 행복한 아이로 키운다는 것은, (…) 쉽게 실체를 파악할 수도 없고, 쉽게 달성할 수도 없는 목표다. (…) 부모들이 아무리 지극정성의 노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는 총총이가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잠정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총총이가 신체(body)는 물론 정신(mind)과 영혼(soul)이 건강하기를 바란다. 신체가 건강하다는 것은 무언가에 도전할 때 체력이 발목을 잡지 않을 정도로 제 기능을 원활히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이성과 감성이 고루 발달한 상태를 의미한다. 영혼이 건강하다는 것은 삶의 중심에 선함을 두고 주어진 자유를 최대한 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다. 나는 총총이가 성인이 되어 자신이 도전하고 싶은 과제를 찾았을 때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는 건강한 신체를 가지기를 바란다. 타인에게 무엇이 피해가 되는지 또 무엇이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분별적 이성과 타인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살기를 바란다. 타인에게 피해나 상처를 주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미명(美名)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허울을 좇지 아니하고 뭣이 중한지를 깨닫고 주어진 인생을 즐기기를 바란다.
너무 곰곰이 생각했나? 적고 보니 거창해졌다. 이건 사실 아버지인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이기도 하다. 내 삶의 가치관이고, 지향하는 바이다. 그래서 안다. 이렇게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총총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을.
그래도 한 가지, 내가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은 습관’, 즉 규칙적이고 위생적이고 건전한 생활습관을 갖고 살아가는 수범을 보이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마저도 결과 — 총총이가 좋은 습관을 갖고 건강하게 살아간다 — 를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휴. 하마터면 나부터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돌아갈 뻔했다. 다시 한 번, 나는 아버지로서 내가 총총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이다. 그걸 잊지 않으려 한다.
내 인생의 시간 일부를 떼어 총총이와 함께 하는 것. 그걸 뺀 나머지는 모두 총총이의 몫이다. 그리고 그 몫을 누리는 것이 결국 인생의 재미이다. 실수와 실패와 시련. 이게 바로 인생의 진짜 재미라는 것을 언젠가 총총이도 이해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총총이가 ‘건강’을 바탕으로 살되 ‘재미’를 잊지 않았으면,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재미’를 포기하지 않기를, 총총아!
재미! 그래, 역시 ‘재미’인 것 같다. ‘건강해야 재밌게 살 수 있다’도 맞지만 ‘재밌게 살아야 건강하다’도 맞다. 재미가 있어야 살맛이 나고 건강도 하지. 하다못해 블로그 포스트도 재미가 없으면 끝까지 안 읽지 않는가. 그러니까 총총아, 너 알아서 살되 재미있게 살려므나. 아빠랑 엄마도 우리가 알아서 재밌게 살도록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