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chpapa Mar 18. 2019

교육을 ‘문제’삼지 않기

죄책감 없이 ‘취미’라는 우주를 유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며칠 전 점심, ‘엄마’인 동료들과 수다 타임을 가졌다. 둘째‘들’이 총총이와 비슷한 또래인 이 육아 선배님들의 화두는 주된 관심은 역시 교육이었다.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둔 첫째‘들’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어린이집, 유치원의 목표는 ‘보육’이자 ‘놀이’였다면, 초등학교부터는 ‘교육’이자 ‘학습’이라는 인식 + 부담을 갖고 계셨다. 그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선행학습’ 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이 수다에 참여했던 나는 평소 내가 품고 있던 (그러나 체계를 갖추어 정리하지는 않았던) 아이 교육에 관한 나의 생각을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들 중 절대 다수는 아이가 만 7세가 되는 해에 우리나라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킨다.

대뜸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문제’!”라고 하기에는 진짜 ‘문제’가 뭔지 아직도 모르고, 그래서 제대로 된 ‘해법’도 알지 못하므로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여건이 허락한다면 홈 스쿨링을 하거나 또는 좀 더 나은 교육을 하고 있다는 몇몇 다른 나라의 학교로 아이를 보내고 싶지만, 현실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어떤 행운 덕분에, 학창시절 교사/시스템의 인정 자원을 충분히 누렸던 나는 개인적으로는 학교 경험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아이가 나와 같은 행운을 누린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 교사/시스템의 인정 자원을 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학교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것’이고, 사실 이 방법이 거의 유일하다.

솔직히 말해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건 ‘교육’ 때문만은 아니다. 집(가정) 이외의 사회/시스템을 경험하고 이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는 목적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다 그런 것 아닌가.

외려 ‘교육’만 떼놓고 보면,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게 될 내용이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꼭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학교/교사 탓은 아니다. 어떤 미래가 닥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행학습’은 철저히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작 선행학습 정도로 나라 교육이 흔들리고, 아이가 망쳐질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학습’은 아무 죄가 없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의 ‘바보된 느낌’을 부모는 모른다. 그걸 직접 겪는 사람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다짜고짜 삼각형의 넓이 구하는 공식을 알려주고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는 선생님 때문에 식은 땀을 줄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당황해서 양 옆을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 내 짝꿍은 이런 건 학원에서 다 배워서 오는 것이라며 우쭐거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적분을 배우고 나서야 그 공식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학생에게 ‘이해’를 시킬 마음이 전혀 없던 그 선생님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결론이 없는 이야기다.


나는 부모로서 아이의 성적 경쟁에 좀 무심해지고 싶다. 성적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헛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분명 아이 자신이 가장 힘들텐데, 부모까지 나서서 스트레스를 더하고 싶지는 않을 뿐이다.


다만, 나는 내 아이가 언젠가 갖게 될 취미, 그 우주와 같은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라고, 아이가 취미에 흠뻑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한다. 언제든 그 취미 속에서 쉴 수 있고, 그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도록.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혹한 환경의 워킹맘입니다. 매일 매일이 치열하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