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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Apr 22. 2020

아이 둘 아빠의 아침운동 예찬론

고작 14일 연속 아침운동 하고 이런 글 쓰는 나도 참

오늘로 14일 연속 아침운동을 했다. 14일 중 13일은 달렸고, 1일은 비를 피해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14일 연속 아침운동? 효과를 보았는가. 몸짱이 되었는가. 미남이 되었는가. 부자가 되고, 인생이 달라졌는가.


그런 극적인 변화는 없다. 아마 그런 ‘기적’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고작 14일이다. 14일 연속 아침운동이 무어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글을 적는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적어도 내 인생에서 운동을 이렇게 오래 자발적으로 지속한 적은 없었다.


그런 내 인생에 어쩌다 아침운동이 끼어들었는지 모르겠다. 14일.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14일 간 아침운동을 지속하면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 ‘습관’을 유지하고픈 내가 습관 만들기의 관점에서 느낀 점을 기록해둔다.


글이 좀 길 수도 있지만, 맨 아래 [요약]을 해뒀으니 그것만 읽으셔도 된다.




시작에 앞서, 이 글은 엘리트 운동선수나 소위 ‘몸짱’이 되려는 사람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다. 하긴 그들은 이런 글을 찾아 읽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나처럼 생활인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가면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활력을 찾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썼다.


운동은 좋은 것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 좋은 걸 하지 않을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룰까. 답은 간단하다. 바쁘고, 귀찮고,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미 운동이 습관이 되었거나(=자동화) 운동을 너무 좋아하게 타고난 사람(=아웃라이어)이다. 정규분포의 바깥에 있는 사람이다. 논외로 한다.


나도 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이지만 기회가 되면 운동을 하곤 했으나, 꾸준히 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약 2주 전 오른쪽 늑골이 쑤시듯 아팠다.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시할 수 있는 통증이 아니었다. 병원에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니 괜찮았다. 예전 같았으면 별일 아니겠지 하고 넘겼을텐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무서웠다. 몸 관리를 제대로 안 하면 이런 통증이 잦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 계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작은 불씨지만 잘 살려서 활활 크게 키우고 싶었다. 방법을 몰랐다. 예전처럼 무턱대로 운동을 시작하면 될까. 일단 비싼 돈 들여 gym에 등록부터 하면 될까. PT를 다시 시작할까. 러닝 클럽에 다시 나가볼까. 다 좋은데, 어떻게 하면 ‘꾸준히’ 할 수 있을까.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번에 운동을 시작하면 다른 건 몰라도 정말 꾸준히 하고 싶었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꾸준히 오래 하는 것. 그러다 우연히 ‘습관 과학자’ 웬디 우드 교수가 쓴 ⟪해빗 –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2019)을 읽었다.



이 책에서 달리기가 습관이 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점을 비교한 실험을 알게 되었다. 실험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실험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특정 단어를 들려준 다음 ‘달리기’가 연상되면 버튼을 누르게 하는 것이었다. 달리기가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건강, 체중 감량 등의 ‘목표’와 관련된 단어에서 버튼을 눌렀다. 반면, 달리기가 습관이 된 사람들은 달릴 때 느껴지는 여러 감각과 관련된 단어, 예를 들면 운동장, 나무, 풀, 공원 등의 단어에서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저자는 이 실험을 언급하며 어떤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중요한 건 의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의 의지는 (너나 할 것 없이) 약하다. 우리의 의지는 신뢰할 만한 친구가 아니다. 믿을 건 상황과 조건에 따른 우리의 반응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면 의지로 노력할 게 아니라 그게 강제되는 상황을 만들라는 얘기다. 특정 상황과 조건과 행동을 강하게 연결하라는 얘기다. 마치 풀, 나무, 운동장, 트랙, 신발, 아침 공기, 새소리, 공원 등을 생각(인식)하거나 지각하면(느껴지면) 바로 달리기가 연상되도록, 저절로 몸이 움직여지도록!


Wendy Wod, Good Habits, Bad Habits



과거의 나는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gym에 가서 회원 등록부터 했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자극이 gym 등록으로 이어졌다. 일종의 ‘습관’이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자극이 gym 등록(=지출)로 해소됐다. gym에 등록하면 ‘본전 생각’에 자주 가려고 노력했고(‘의지’), 일단 가는데 성공하면 뭐라도 운동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gym에 가기가 꺼려졌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회사 근처 gym에서 운동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당장에 느껴지는 허기와 여러 점심 약속을 뿌리치고 gym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의지’). gym에 가서도 운동 강도를 약하게 한 날은 ‘본전을 찾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에 개운하지 않았다. 제대로! 빡세게! 하면 지쳐서 오후 업무에 집중이 쉽지 않았다. 부족한 식사 시간으로 점심을 허겁지겁 먹어야 하는 경험도 몹시 나빴다. 이건 운동을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는 조건과 거리가 멀었다.


퇴근 후에 운동을 하면 어떨까. 퇴근하자마자 다시 운동을 간다는 건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아이 둘과 씨름하느라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그게 우리 가족에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정말 양심 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재우고 밤 10시 정도에 밖으로 나가서 1시간 정도 운동 — 주로 달리기 — 를 하기도 했다. 밤에 달리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체중 감량 효과도 봤다. 문제는 밤 11시가 넘어 운동을 마치고 샤워하고 어쩌고 하면 자정이 넘어가기 일쑤였다. 빨라진 심박을 잠재우고 잠에 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아침운동은? 미안하지만, 고려사항조차 아니었다! 출근 준비에 바쁜 아침에 운동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시도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벌써 14일 연속 아침운동을 완료한 지금의 나는 당시의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 대체 왜 이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냥 일어나서 운동을 하면 되는데. (☜ 예전에는 나도 이런 식의 말을 듣는 걸 정말 싫어했다.) 출근 준비에 지장이 간다고? 출근 준비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운동을 하면 되는데(☜ 이런 말 역시.)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처음 아침운동을  . 그러니까 14  그날 아침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날 잠에 들면서 내일 일어나면  운동을 해야지 같은 굳은 다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날따라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평소보다  30 정도 일찍 일어났다. 문득  생각이,  10 정도라도 뛰고 올까 하는 것이었다. 그 작은 계기를 놓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아무 옷을 대충 챙겨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일부러 준비가 없는 채로 나섰다. 이렇게라도 아침운동을 해도 괜찮음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


아침 공기는 상쾌했다. 새벽이라 공원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런 이른 시각에 운동을 하고 있는   명의 사람을 보니 자극이 되기도 했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었으므로 결코 무리하지 않았다. 출근에 지장을 주면 아침운동에 대하여 불쾌한 감정이 생길  같았다. 최대한 유쾌한 감정을 유지하면서 아주 느리게 뛰었고 조금 힘들게 느껴지면 바로 걸었다. 그렇게 20 정도 짧게 그렇지만 충만하게 운동을 했다.


첫 아침운동을 통해 일종의 기준점이 생겼다. 몇 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가든 아침 7시 전에만 집에 돌아오면 씻고 준비하고 출근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여유롭게 출근할 수 있었다. 대신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한다. 일찍 자야한다. 일찍 자야한다. 일찍 자야한다. 그런데 그런 부담을 갖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 있어 습관 만들기의 핵심은 불쾌감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 과정에 부정적인 감정이 씌여지면 다시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기로 했다. (따로 보상을 생각하진 않았다.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보상을 준다는 게 이론적으로는 말이 될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방법이 너무나도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그럼 어떻게 일찍 일어났는가. 역시 일찍 자는 수밖에 없었다. 보통 내가 늦게 자게 되는 이유는 침실에 아이폰과 에어팟을 갖고 들어가서 넷플릭스를 보기 때문이었다. 핑계는 있었다. 다큐를 보며 정보를 얻고 영화를 보며 영감을 얻는다는. 물론 정말 핑계였고 그냥 이렇게 잠들어 하루를 마감하기가 아쉬웠던 것뿐이었다. 이 (나쁜) 습관을 그냥 없애기는 쉽지 않았다. 다른 습관으로 덮어씌우는 방법을 택했다. 바로 e-book reader로 책을 읽는 거였다. 영상을 보는 것보다 피로가 덜했고 잠도 더 빨리 들었다. 때마침 읽다보면 절로 잠이 오는 아주 지루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침에 운동을 한 덕분인지 잠이 들기가 쉽기도 했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을 맞았고, 아무런 저항감 없이 첫날과 같은 방식으로 가벼운 운동을 마쳤다.


가만히 멈춰있던 공을 굴렸다.
이제 관성으로 공이 계속 굴러가게 하자.
관성을 방해하는 마찰력을 0으로 만들자.
아침운동 습관을 막는 마찰적 요소를 없애자.


2일 연속 아침운동을 했을 뿐인데 몸에서 활력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아내도 기분 좋은 말을 해줬다. 그런데 아내는 이게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말만 내뱉고 지키지 않았던 약속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도 사실 2일 정도 하고 (예전과 비슷하게) 중단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3일째가 되니 또 아침에 눈이 떠졌고 (마치 기계처럼)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엉겁결에 3일 연속 아침운동을 마쳤다. 역시 기분이 좋았다. 3일 만에 엄청난 운동효과를 본 건 아니었다. 그런 효과가 있을 정도로 강도 높은 운동을 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정신적으로는 매우 유익했다. 내 삶에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운)과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실력)이 있다면, 후자에 더 집중하는 삶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맞다. 내 몸을 내가 관리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어쩌면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였다. 다른 의존성(dependency) 없이 내가 나 하나만 어찌하면 되는 문제였다. 유부남은 홀몸이 아니다? 이해한다. 나도 누군가의 배우자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루에 30분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다. 배우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고도 당당하게 운동할 수 있는 시간대가 분명히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게 아내와 아이들이 아직 자고 있는 이른 아침이었다.




3일째 아침운동은 사실 조금 문제였다. 토요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여유롭게 시간을 쓰면서 무려 10km를 달린 것이다. 운동을 오래 즐긴 건 좋았지만, 잘한 일은 절대 아니었다. 하루 달리고 말 게 아니다. 매일 꾸준히 하는 게 목표였다. 주말에 하루 정도는 이렇게 달려도 좋겠지만, 당시의 내 몸 상태를 고려하면 명백한 오버트레이닝이었다. 후폭풍이 있었다. 발목과 다리가 아팠다. 이러다 내일 아침운동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어, 잠깐. 나는 운동을 귀찮아 하지 않았던가? 아니다. 운동이 귀찮았던 게 아니다. 나는 운동할 기회가 있으면 선뜻 운동을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고 호의적이었다. 아, 그렇구나. 나는 나에게 운동을 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상황에서 운동을 할 기회를 만들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았다. 방법은 있었다. 그 최적의 방법을 찾기가 오래 걸렸을 뿐이었다.


발목과 다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4일째 아침운동도 기어이 했다. 페이스를 확 늦췄다. 의도적인 것이었다. 어제 너무 몸에 무리를 줬으니 혹시라고 생겼을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내고 싶었다. 거의 걷다시피 했다. 그리고 새로운 코스를 개발했다. 일요일이니 이리저리 헤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과정이 재밌었다. 마치 일상 속 작은 모험(micro adventure) 같았다. 덕분에 아침운동 자체에 대한 내 스스로의 평가도 더 좋아졌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우연한 발견에서 오는 즐거움’은 우리 뇌가 아주 좋아하는 ‘예상치 못했으나 즉각적인 보상’의 일종이라고 한다.


습관 만들기 관점에서는 “주 몇 회 이상 운동”과 같은 목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된다. 일단 지키기가 어렵다. 주 몇 회? 정확히 몇 회를 말하는 것인가. 1회? 2회? 3회? 그럼 그 1/2/3회의 운동을 언제/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여기에 의사결정(마찰적 요소)가 개입한다. 작지만 습관화에는 방해가 된다. 물론 클래스가 있는 경우에는 아예 횟수/시간/장소/방법이 정해져있으므로 매우 편하게 습관화를 할 수 있지만, 클래스/강사에 대한 의존성이 커서 상황 제어가 어렵다.


반면, 특정 주기로 반복을 한다면? 예를 들어,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운동을 한다.”와 같은. 이런 힘든 목표가 오히려 습관화는 더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1) 매일(24시간)이라는 짧은 주기로 반복하고, 2) 기상이라는 사건(상황)이 조건이 되어 행동을 강제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몇 회 이상 운동” 같은 목표는 내가 결정해야 하는 변수가 많고, 그 결정에 에너지를 소진하느라 정작 운동을 시작하기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습관 만들기에 성공하려면 의지력이 쓰일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 행동에 이르는 데 드는 의사결정의 가지수를 줄여야 한다. 의지력과 그 의지력을 쓰는 의사결정 상황은 습관화를 막는 마찰적 요소이다. 의사결정 상황을 최소화하고 의지력을 보존하려면 특정 행동에 필요한 걸 미리 다 정해두거나(대표적인 예가 매일 같은 옷을 입는 마크 주커버그), 아니면 결정할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위기도 있었다. 8일째 운동한 날 저녁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빨리 잠들고 싶은데 그게 안 되었다. 오전 1시가 되었는데도 잠을 들 수가 없었다. 결국 오전 3시에 잠이 들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운동을 할 시간이 빠듯해보였다. 그래도 몸은 이미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주 짧게 운동을 마쳤다.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습관 만들기 과정에서 중요한 건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Do or Do not)이지 얼마나 충실히/훌륭히 했느냐가 아닌 것 같다. 그런 Quality Check는 습관이 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마스터...!



좋은 행동을 습관화 하면서 느끼는 가장 좋은 점은 행동 그 자체로 보상을 얻게 된는 점이다. 아침운동이라는 행동을 강화하기 위하여 이 행동에 대한 다른 보상(=“수고한 나 자신을 위한 깜짝 선물” 따위)를 정해두지 않아도 된다. 아침 공기의 상쾌함, 가벼운 운동 후에 몸에서 느껴지는 후끈한 열감 그리고 약간 차가운 물로 하는 샤워를 할 때 느껴지는 짜릿함, 밤 10시 정도가 되면 찾아오는 나른함과 졸음... 이 모든 게 아침운동이 주는 보상 같았고, 나는 이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운동은 무조건 빡세게 해야 한다. 자고로 운동을 빡세야 제 맛이다. 이런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나는 운동은 적당히 해야한다고 쓰고 싶다. 물론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이 없이 근육은 성장하지 않는다. 근육을 키우려면 임계점을 넘는 고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제대로 된 운동이 맞다. 그런데 운동 습관을 기르려는 사람에게는 그런 방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청난 강도로 운동을 하면서 심지어 꾸준히 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면, 그는 정말 정말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혹시 또 모르겠다. 운동 습관을 차곡히 쌓은 사람은 나중에는 그런 큰 고통에도 불구하고 다시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고작 14일 연속 아침운동을 마친 나로서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한다. 적당히 해야 오래 할 수 있다. 딱 하루만 하고 말 거라면 강도 높은 운동도 괜찮다. 그걸 몸이 버텨줄 수 있고 큰 스트레스, 불쾌감을 받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기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운동의 강도를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현명하게 결정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한 과정에서 약간의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습관 만들기에 몇 번 실패하고,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일이 계속 어려웠던 나 역시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모아보면 괜히 뿌듯하고 그렇다



First Things First.


중요한 일을 가장 먼저 하라. 나는 이 말을 “중요한 일에 가장 가중치를 두어서(=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해했던 내가 참 우습다. 중요한 일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한다니?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중요한 일이라고 여긴 것이 아닌가.


정말로 중요한 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라면 시간적으로도 가장 우선(먼저) 하는 것이 맞다. 일어나자마자. 하루의 가장 처음에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게 운동이든 글쓰기든 무엇이든. 중요한 일을 가장 먼저 하라는 말은 그런 뜻이었다.


이제 대망의 [요약]이다:


1/ 이 글은 엘리트 운동선수나 소위 ‘몸짱’이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다.

2/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특정한 때에 반복하는 것이다.

3/ 습관 만들기에서 중요한 건 의지력을 쓸 일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상황 & 조건에 통제 받는 것이다.

4/ 그래서 ‘아침’이 좋다. 대신 무리하지 않는 선이 좋다. 걷기도 운동이다. 적당함은 곧 미덕이다.

5/ 중요한 일을 가장 먼저 하라는 말은 말그대로 시간적으로 먼저 하라는 말일 수도 있다.

6/ 아침운동은 그 자체로 보상이라서 좋다. 굳이 다른 보상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7/ 이론이 많으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냥 적당하고 단순한 게 가장 좋다. 그게 습관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나는 내 하루치 행복에만 신경을 쓰며 살고 싶다. 그런데 하루가 행복하려면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 그 하루가 방향적으로 내용적으로 좋다는 평가를 받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하루치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체 인생적 관점이 어쩔 수 없이 끼어든다. 전체 인생의 행복과 하루치 행복, 이 둘의 교집합에는 항상 ‘꾸준한 운동’이 있다.


세상사 바쁘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하루치 행복을 놓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아침에 운동을 마쳐두면, 하루 중 어떤 일이 생겨도 그건 원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하루 중 좋은 일이 생기면 그건 덤이었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그건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괜찮다, 나는 이미 아침운동을 했으니까. 이 즐거움과 기쁨, 보람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지 않다. 최대한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그래서 글을 썼다. 이 글이 멈춰 있는 당신의 공을 굴리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침운동, 나도 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아침에 운동하는 것을 아예 옵션이라 생각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정말 꾸준히 운동을 해보고 싶다면 아침운동이야말로 유일한 옵션이다. 대신 기대치를 확 낮춰자. 선명한 복근, 올림픽 출전? 그런 건 (당장은) 포기하자. 어차피 꾸준한 운동 습관 없이는 소위 ‘몸짱’의 길도 멀고 멀다.


매일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보여줄 수 있으면, 그건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아침운동에 초대한다. 특히 한국의 4월, 5월 아침은 달리기에 정말 최고의 날씨이다. 부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스마트 기기와 소셜 미디어는 달리기에 잔재미를 더해주는 좋은 친구들이다. 특히 나이키에서 만든 NRC 앱은  달리기 활동을 기록하고 공유하는데 도움이 된다: https://brunch.co.kr/@chchpapa/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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