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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Dec 30. 2020

미드나이트 스카이 — 무의미의 우주를 살아가는 이유

“우리가... 지구를 잘 돌보지 못했다.”

미드나이트 스카이.

MIDNIGHT SKY.


칠흑 같이 어둠이 깊은 밤. 지구는 잠들었지만 밤하늘의 별빛은 더욱 반짝입니다. 어둠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지만, 오히려 빛이 사라진 자리에 변치 않는 진실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춥고, 어둡고, 외롭고, 쓸쓸한 영화인데 다 보고 나면 가슴이 뜨겁게 차오릅니다. 우주적 관점에서는 좁쌀 같은 존재인 우리 인간들이 이 광활하고 차갑고 무의미한 우주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일까요.


이 좋은 영화를 혼자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급히 감상평을 씁니다.


조지 클루니가 북극 천문대에 홀로 남은 노인 과학자를 연기합니다. 평소 조지 클루니의 이미지(멋지게 빼 입은 수트차림에 느끼한 미소)를 생각하면 매우 낯설지만, 영화의 메세지와 그의 평소 행동은 일관적으로 보입니다.


http://www.ttimes.co.kr/view.html?no=2018121414007762905


※ 이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고 봐도 재미가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수위 조절을 했지만, 내용을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보기를 원하는 분들은 여기서 읽기를 멈추고 작품 감상을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조지 클루니가 북극 천문대에 홀로 남은 노인 과학자를 연기한다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 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429쪽.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기본 설정은 아주 새롭지는 않습니다. 태양계 멀리까지 유인 우주선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과학기술을 가진 가까운 미래이고요. 인류는 임계에 달한 지구를 떠나 새로운 터전이 될 행성을 찾고자 합니다. 꽤 많은 수의 우주 SF 작품이 이런 설정을 공유하고 있지요.


2040년대 후반, 지구는 모종의 이유로 위기를 맞습니다. 대기오염이 심해진 것 같아요. 지하로 대피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 거기서도 생존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오거스틴’(조지 클루니) 박사는 모두가 대피하는 중에 극지방에 남기로 합니다.


말기암 환자인 ‘오거스틴’은 세상의 이치를 달관한 노인처럼 보입니다. 그런 그가 극지방에 남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차피 살날이 많지 않으니 여기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려는 것일까요. 홀로 남은 그는 현재 활동 중인 우주선을 찾고, 유일하게 활동 중인 에테르호와 직접 교신을 시도합니다.


이 에테르호는 목성의 위성 중 하나인 K-23(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위성)이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탐사 업무를 완수하고 지구로 귀환하는 중입니다. 지구와의 교신이 끊긴 상황을 답답해 합니다. 지구가 너무 조용합니다.


에테르호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대원들


이제 이야기의 축은 분명해졌습니다.


북극에 홀로 남은 ‘오거스틴’은 귀환 중인 에테르호의 대원들과의 직접 교신에 성공해야 합니다. 대원들에게 지구가 망했다는 걸 알려줘야죠. 여기가 더는 너희들의 집(home)이 될 수 없음을 얘기해줘야 합니다. ‘오거스틴’은 직접 교신이 가능하려면 더 강력한 안테나를 가진 하젠 호수 기상 관측소로 거점을 옮겨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에테르호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목성까지 갔다가 지구로 돌아오는 여정이 아무런 사고 없이 순탄하기만 한다면 말이 안 되죠. 자동 경로 설정이 고장납니다. 아직 매핑이 되지 않은 영역까지 통과하려다 보니 결국 우주선의 통신 장비가 파손되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지구가 망했다는 걸 알게 된 대원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에테르호 대원들은 지구에서의 홀로그램 시뮬레이션을 보며 기나긴 시간 동안의 우주 탐사의 압박감을 견뎌내왔는데, 그 홀로그램이 다시는 재현될 수 없다는 걸 쉽게 받아들일 수있을까요.


다시 영화 초반으로 돌아가서, 극지방을 떠나 다른 장소로 대피를 주도하는 이가 오거스틴 박사에게 어서 함께 떠나자고 합니다. 오거스틴 박사는 그에게 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묻습니다. 그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는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오거스틴 박사를 보며 이렇게 말하죠: “당신에겐 여기가 집이군요.”


평생을 우주를 관측하고 행성을 연구해 온 ‘오거스틴’ 박사에게 천문대는 자신의 집과 같은 공간이겠죠. 동시에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에테르호의 대원들은 지구가 자신의 집이기 때문에 귀환하는 중입니다. 그저 지구가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현생 인류의 유일한 집(home), 우리의 지구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 지구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미드나이트 스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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