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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chpapa Oct 31. 2018

봄, 후쿠오카, 19개월 아이와 함께 ② 아사쿠라편

여행은 ‘여’유가 주는 ‘행’복. 언제 어디든 가족과 함께라면.

몇 개월 전 다녀온 여행 기록을 어떻게 한다지? 걱정없다. 아내와 내가 열심히 찍었던 사진을 모아서 보고 기억을 되살리면 된다. (땡큐, 구글 포토!) 그리고 여행 도중 페이스북에 남겼던 토막 감상글 같은 것이 있다. 큰 도움은 안 되지만 그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땡큐, 나의 SNS 중독!)


유후인(由布院) 쯤에서는 아래와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쓰기도 했다. 분명 아이와 함께 했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선명한 경험들이 있었다. 고생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 맛에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할 만큼.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확실히 고되지만 분명 아주 특별한 구석이 있다. ‘아이의 기뻐하는 모습이 부모에게 행복을 준다’ 정도의 흐리멍텅한 얘기가 아니고, 아이가 함께 하기에 겪게 되는 구체적이고 선명한 행복한 경험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총총이가 아니었다면, 유후인 유노츠보거리 뒷편에 커다란 공원과 놀이터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생각 외로 쌀쌀한 날에 총총이 입힐 옷을 사러 깡시골 동네 마트 구경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거기서 유카타를 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숙소 곳곳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그렇게 오래 멈춰서서 인사를 나누는 일도 드물었을 것이고, 우리의 식사를 차려주신 분의 주황색 물고기 양말은 끝내 못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들이 우리가 떠날 때까지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던 장면도 금새 잊었을 것이다.

총총이가 또래 아이들과 아무런 언어적 표현을 하지 않고도 금새 스스럼 없이 친해지는 모습을 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수족관 안의 푸드코트가 의외의 맛집인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돌고래 모양 밥과 카레 같은 어린이 메뉴는 시킬 일도 없었을 것이다. 거리에, 바닥에, 사방천지에 개미가 기어다니고 있는 줄은 정말 영영 몰랐을 것이다.

(2018년 5월 어느 날 작성)


다시 여행기로 돌아와서,


가는 날 저녁.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 근처 렌터카 영업소로 향했다. 예약서류와 국제운전면허증을 내고 서류 작업을 기다리며, 나의 어설픈 일본어로 이 근처에 아이 먹일 도시락이나 간식 같은 것을 구입할 가게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륙. 한참을 보더라. 신기했겠지?


대화를 주고받다 직원 분이 나더러 “혹시 한국 분이세요?” 하고 묻는다. 아, 한국 분이시구나. (여러분, 후쿠오카 공항 도요타 렌터카 영업소에 한국어 가능한 직원 분이 계시네요!) 덕분에 확실히 알았다. 없다. “근처에 그런 걸 살 수 있는 가게는 없습니다. 편의점 정도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나 편의점도 가깝지 않았다. 오늘 묵을 숙소가 있는 아사쿠라(朝倉市)까지 가려면 공항에서 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부지런히 가야했다.


아내와 상의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를 살피느니, 그냥 가는 게 어때요. 그래, 일단 가요. 그래서 바로 출발했다. 총총아, 배고파도 조금만 참으렴. 참고로, 일본 렌터카는 쟈란넷(https://www.jalan.net/)에서 할인 쿠폰을 구하면 (1,000~2,000엔 정도)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 한글 지원이 되지 않지만, 요즘 웹브라우져 번역 기능 쓸만하단데쓰.


고속도로에서 내리자마자 만난 교차로. 이런 한적한 동네였다.


후쿠오카 공항 근처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약 50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후미진 동네, 아담한 건물이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숙소 가까이 마련된 작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니, 직원분이 뛰어나와서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셨다. 신속하고 친절했다.


우리 또 이런 친절에 약하잖아.


여정상 체크인이 늦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렸고, 도착할 시간에 맞춰 저녁식사를 준비해달라는 부탁을 해놓은 덕분에 짐을 풀자마자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주변 식당도 다 문을 닫았을 늦은 시각이었기에 거의 유일한 선택이기도 했다. 자리와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음식은,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저것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느낌이 들었고, 배도 고프고 해서 열심히 먹었다.


첫날 숙소에서 먹은 저녁식사. 대강 이런 느낌.
둘째날 아침 숙소에서 먹은 아침식사. 이건 입에 맞았다.


방은 다다미방이었다. 총총이와 함께 자려면 침대가 있는 것보다 그게 나았다. 잠옷 대용이자 온천욕 할 때 입은 유카타가 비치되어 있었다. 어른 것은 물론 아동용 유카타도 있어 총총이를 입혀보았다(아래 사진). 역시 컸다. 그래도 신기하고 재밌는지 유카타를 입고 방을 술래잡기를 하는 듯 뛰어다녔다. 낯선 곳에 엄마 아빠와 함게 놀러온 신난 기분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 움직임을 보고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의 피로(비행, 운전…)가 모두 풀리는 듯 했다.


후행~ 나 잡아보세요~


숙소 옥상에 노천탕이 있었고, 1층에는 대욕탕이 있었다. 아내와 각자 목욕을 다녀와서 생각보다 물이 좋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총총이는 아침에 내가 대욕탕에 데려가서 씻겼다. 이른 시각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동용 욕조가 구비되어 있어서 그걸 씻어서 사용했다.


날이 밝고 보니, 숙소 바로 옆으로 아소산(阿蘇山)을 원류로 하는 지쿠고강(筑後川)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물이 좋았나? 강변에서 놀이를 하는지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차들도 많았다. 여기 나름 지역 명소였구나, 싶었다.


숙소에서 보이는 풍경. 숙소 뒷 계단을 통해 바로 강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역시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아침식사는 의외로 괜찮았다. 아이를 위한 메뉴도 준비되어 있었다. 덕분에 총총이도 배부르게 먹었다.), 서둘러 체크아웃을 했다. 유후인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건물 밖에 나와보니 5월, 큐슈, 덥지 않았다. 쌀쌀하다 싶을 정도의 날씨였다. 우리는 5월의 큐슈지방이 한국의 여름 날시와 비슷할 줄 알았고, 그래서 가져온 옷은 죄다 얇았다. 어른들이야 이렇게 저렇게 버틴다고 해도 아직 어린 총총이가 추울까봐 걱정이 되었다.


프론트 직원에게 물어 가장 가까운 마트로 갔다. 거기서 ‘잠깐’ 쇼핑을 하고 유후인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분명, ‘잠깐’이었는데…, 아내의 취미가 마트 구경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아내는 마트에 가면 눈빛이 반짝이는 사람입니다. 키라키라.)



우리가 갔던 곳은 그 동네에서 꽤 규모가 큰 마트였고, 가격은 저렴했고,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쇼핑하기 딱 좋은 그런 마트였다. 이것이 로컬이로구나, 하며 총총이 입힐 옷도 사고, 총총이 유카타도 사고(왜?), 총총이 모자도 사고, 엄마 모자도 사고, 총총이 장난감도 사고, 이동하며 차에서 먹을 간식도 사고, 음료도 사고…. 나는 그날 몹시 흡족한 얼굴의 아내를 보았다. (실은 서울에서도 이렇게 여유롭게 장 볼 기회는 흔치 않았거든요.)


총총이는 붕붕카 모양의 카트를 타고 다녔다.


‘잠깐’(?)의 쇼핑 겸 일본 현지 생활 체험을 마치고, 다시 차에 올라 1시간 15분 정도를 달려 유후인에 도착했다.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도로가 잘 닦여 있고 속도를 낼 수 있어서 운전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 사이 총총이는 차에서 곤히 잠들었다. 한 번 잘 때 푹 자게 두는 것이 좋으니, 일단 점심 먹을 장소를 찾으면서 차로 갈 수 있다는 경치 좋은 전망대에 오르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다음 편에서 계속.


https://brunch.co.kr/@chchpapa/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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