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여’유가 주는 ‘행’복. 언제 어디든 가족과 함께라면.
유후인에 들어왔지만 어디서 멈출지 정하지 못하고 계속 차를 몰았다. 아직 숙소로 가기에는 일렀다. 차를 멈추면 곤히 잠든 총총이가 왁 하고 깨어날 것 같기도 했다. 도로가 이어진 곳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저 멀리 보였던 유후다케(由布岳)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이 근방에 전망대가 있다고 읽은 기억이 났다.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오르다 어느새 도착했다. 흐르듯 가보는 것도 여행의 방법이다.
안개 자욱한 협곡의 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유후인에서 ‘지옥 온천’ 관광으로 유명한 벳푸(別府)로 넘어가는 자동차길에 자리하고 있다. 대단한 시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망 스팟과 주차장, 고구마,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을 파는 작은 휴게소가 있다. 한쪽으로는 유후다케가, 또 한쪽으로는 유후인 마을이 내려다보는 훌륭한 전망을 자랑한다.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왔다.
때마침 잠에서 깬 총총이와 경치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휴게소에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일본 관광지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소프트아이스크림 광고판. 총총이는 길을 가다 이 광고판이 눈에 보이면 “아쓰꾸!” 하고 외쳤다. 여행하는 동안 거의 1일1아쓰꾸.
(결국 한국에 돌아와서 배탈이 났어요. 생후 19개월 아이는 그렇게 먹으면 안 되는 것이었네요.)
다시 차를 돌려 유후인역 가까이 가기로 했다. 거기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유노츠보거리(湯の坪街道)를 따라 긴린코(金鱗湖)까지 산책을 하기로.
점심으로는 우동을 먹었는데 가게 안에 아마도 “로컬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이라는 블로그 글을 읽고 온 듯한 한국 여행객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재밌었다. 공교롭게도 딱 우리 테이블까지만 주문을 받고 그날 주문이 마감되었다.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던 손님들도 모두 한국 여행객들이었다. (저기, 별로 아쉬워할 필요 없었어요. 맛이 그럭저럭이었거든요.)
여기는 유후인에 왔다면 반드시 들리는 유명한 관광 스팟이므로 다른 설명을 붙이기가 구차하다. 맛있는 디저트 가게,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관광객들이 많다. 인사동 같았다. 아래 사진과 캡션으로 자세한 설명을 대신한다.
거리를 걷다 궁금한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서 구경했다.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가 있으면 사서 먹었다. “여기서 이건 꼭 먹어야 해” 같은 호들갑 리스트에 몇 번 실망하고 난 뒤로부터 그런 종류의 여행정보는 믿지 않게 되었다. 가다가 보이면 먹기도 하지만 일부러 찾아먹지는 않는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경험이 별로 없다.
재밌는 건 어느 여행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놀이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곳에 놀이터가 있지?’ 의아했는데, 우리한테나 관광지죠.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터전이었네요.) 총총이와 함께 오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공간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게 있으면 그냥 같이 그곳에서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행의 한 방법이구나.
마침내 도착. 구경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이 꽤 짧았던 것을 보면 길지 않은 거리였는데 여기저기 둘러보고 구경하며 가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호수를 한 바퀴 휘 둘러봤다. 유별난 곳이 없지만 한눈에 좋은 관광 스팟임을 알 수 있었다. 물멍. 물 보고 멍 때릴 수 있는 곳은 다 좋다. 넓고 고요했다.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여기서 가족사진 많이 찍었다.
오케이. 볼 만큼 봤다. 많이 걸었고, 지쳤다. 이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료칸과 가이세키 요리를 경험하러 숙소로 가자. 이 숙소를 고르느라 졸린 눈을 비비며 얼마나 많은 마우스 질을 했던가. 그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감히 아내의 선택을 의심하다니.) 전통의 유명 료칸들은 여기 유노츠보 거리와 긴린코 근처에 많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리가 예약한 곳은 유후인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체 어떤 곳일지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궁금했다.
과연. 좋았다. 프론트가 위치한 메인 서비스 빌딩은 매우 낮고, 거기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옆에 식당 빌딩이 하나 더 있고, 객실은 각각 별도의 건물(독채)로 떨어져 있는 구조였다. 객실에는 작은 정원과 노천욕을 할 수 있는 탕이 딸려 있었다.
시설과 서비스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게 없었다. 비싼 객실료만큼의 값어치를 했다. 비싸게 받는 건 쉬워도(숫자만 바꾸면 되니), 제 값을 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닌데, 내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예산이 허락하다면 며칠 더 머물고 싶었다.
이날 저녁식사와 다음날 아침식사를 책임진 숙소 내 식당의 요리도 만족스러웠다. ‘가이세키 요리’라고 하면 객실로 가져와서 차려주고 다 먹으면 치워가는 게 정석이라고들 하던데, 여기는 별도의 건물에 있는 식당에 가서 먹는 방식이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우리로서는 그게 더 나았다.
맛도 맛인데, 아이용 메뉴가 따로 준비되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앞가리개, 포크, 접시 같은 것도 귀여웠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이런 의외의 포인트에서 감동을 받고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 따로 먹일 것 걱정할 필요 없이 끼니때마다 든든하게 먹어서 다행이었다. 총총이가 방울토마토를 좋아해서 더 달라는 부탁을 몇 번 했다.
일하는 분들도 다들 친절했다. 특히, 총총이를 이쁘게 봐주셨다. 이것 역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 체크아웃 할 때까지 만나는 모든 분들께서 상냥하게 인사해주셨고, 총총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여행할 때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히 인사하자. 생후 19개월 총총이에게 배운 여행 팁이었다.
5월에 후쿠오카-유후인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날도 더운데 무슨 온천이야, 라고 말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겨울에 유후인에 다녀간 사람이었다. 나도 규슈(九州)는 처음이어서, 남쪽에 있으니 덥겠지, 라고 마냥 생각했다. 물론 한낮의 볕은 강렬했으나, 굳이 반팔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론 꽤 쌀쌀했고, (그래서 마트에 들러 총총이 입힐 긴팔 옷을 사기도 했고,) 유카타 입고 온천욕을 즐기기에 무리가 없는 날씨였다.
참, 여기 메인 서비스 빌딩에 있는 대욕장도 훌륭했다. 다음날 아침, 아직 총총이가 잠에서 깨지 않은 틈을 타 아내와 번갈아 다녀왔다. 프론트에서 보이는 경치를 욕탕에 앉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혼자서 탕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온천욕을 즐겼다. 생수가 잔뜩 든 냉장고도 마련되어 있었다.
짐을 정리하며 아내와, 여긴 꼭 다시 오자, 다짐했다. (다시는 아내의 선택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유후인 료칸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여행지인 후쿠오카(福岡市)로.
글이 길어져서 (글보다 사진이 많죠.) 여기서 잠시 끊고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