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멈추게 한 순간
어느 날 저녁 산책을 하다가 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날이 있었다.
그날도 별다른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하루를 정리하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익숙한 산책로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선이 저절로 위로 끌려 올라갔다.
하늘이 온통 깊은 보랏빛으로 번져 있었다.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섞여 만들어낸 색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몽환적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저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이 장면이 금방 사라질까 봐 눈을 떼기가 아까웠다.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고 셔터를 연달아 눌렀다.
찰칵, 찰칵, 찰칵.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이 풍경을 놓치면 안 된다.’
하지만 사진으로 담아도 그 순간의 감동이 전부 담기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다가도 다시 고개를 들어 맨눈으로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눈으로, 마음으로, 기억으로 그 풍경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늘 그렇다. 설명하려 하면 설명이 부족하고, 표현하려 하면 표현이 모자란다.
그날의 노을도 그랬다.
경이롭고 신비로웠고, 어딘가 몽환적인 느낌이 감돌았다. 마치 현실과 다른 세계가 잠시 겹쳐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늘은 어떤 보석보다 빛나고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색이 이렇게까지 사람의 마음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 새삼 놀라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혼자 보기 아까웠다.
나는 사진 몇 장을 골라 신랑에게 톡으로 보냈다.
“하늘 봐. 너무 예쁘지?”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와, 진짜 보라색이네.”
그 짧은 메시지를 보며 괜히 웃음이 났다. 같은 하늘을 직접 함께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 아름다움을 누군가와 나눴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다른 생각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머릿속이 조용히 비워졌다. 마음도 차분해졌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풍경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마치 그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도 살아내느라 애썼어.”
말로 들은 것은 아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런 느낌이 올라왔다.
보랏빛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묘하게 편안해진다. 몸 어딘가에 굳어 있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고, 마음속에 엉켜 있던 생각들도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좋은 기운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마치 보랏빛 보호막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세상 한가운데 서 있지만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잠시 보호받고 있는 듯한 기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조용한 공간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보랏빛 하늘이 천천히 어두워지고 색이 조금씩 옅어질 때까지 그대로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장면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하루는 늘 비슷하게 흘러간다.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작은 일들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지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세상이 갑자기 아름다워지는 순간.
그 짧은 장면 하나가 하루를 환하게 바꿔 놓는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거창한 행복을 찾느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작은 아름다움을 자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날의 보랏빛 노을은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순간이 내 마음속에는 오래 머물렀다.
지금도 가끔 저녁 산책을 하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혹시 또 다른 색의 노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다시 그 보랏빛 하늘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아마 또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을 것이다.
세상이 잠시 나를 위해 열어 준 그 조용하고 아름다운 순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