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이야기
엄마와 나는 거의 매일 통화를 한다.
딱히 대단한 용건이 있어서라기보다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쯤이면
습관처럼 손이 먼저 전화기로 향한다.
홀로 지내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엄마가 마음에 밟히는 탓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식으로 서로의 안부를 챙겨 왔다.
전화기 너머로 오가는 말들은 거창할 것 없는 평범한 안부들이다.
"밥은 먹었니?", "오늘 날씨가 꽤 춥더라", "비 온다는데 우산은 챙겼어?" 같은 다정한 물음들
그러다 길에서 마주친 귀여운 강아지 이야기나 누군가의 농담에 한바탕 웃었던 일처럼
우리는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조각들로 통화의 대부분을 채우곤 한다.
나는 일부러 엄마에게 무거운 고민이나 심각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내 말 한마디에 엄마의 마음이 덜컥 무거워질까 봐
전화를 끊고 난 뒤 고요한 방 안에서 혼자 생각이 많아지실까 봐 자꾸만 말을 고르게 된다.
그저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웃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적당히 편들어주며 우울하다는 말에는
"괜찮아" 한마디로 온기를 보탤 뿐이다.
언젠가 TV에서 한 어르신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내는 날도 있다"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고요함이 얼마나 시리고 적막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 마음이 한참이나 먹먹했다.
어쩌면 어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거창한 소식이 아니라
주머니 속에서 가끔 울리는 그 작은 진동인지도 모른다.
"어, 그래."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속에 반가움이 옅게 배어 있는 걸 느낄 때면
그 짧은 통화가 메마른 일상을 적시는 단비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건 세상과 연결된 끈들이 하나둘 느슨해지는 과정 같다.
북적였던 주변은 비워지고 뜨겁던 마음은 잔잔한 미련으로 남을 때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조용한 온기를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수화기 너머의 안부는 결국 서로의 세계에 여전히 머물러주어 고맙다는 다정한 고백이다.
그 작은 연결이 남겨진 하루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 되고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준다.
화려한 사건이나 특별한 선물보다
“잘 지내?”라는 한마디가 마음 깊은 곳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할 말이 많지 않아도 괜찮다.
사실 우리는 매번 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몇 가지 안부를 묻고 웃고 그러고는 전화를 끊는다.
통화 시간이 10초가 될 때도 있고 1분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연결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흐른다.
애틋함과 걱정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책임 같은 마음이 섞여 있다.
어른이 되어 부모의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그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내가 아직 엄마의 나이가 되어 살아보지는 않았기에 그 나이의 삶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이제는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식의 전화 한 통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그것이 하루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 역시 자식을 키워보면서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가 잘 지내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학교에서는 괜찮은지, 마음에 상처는 없는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계속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감정.
그게 부모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무게일지도 모른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잘 지내니'라는 짧은 한마디.
그 속에는 수만 가지의 걱정과 사랑이 녹아 있어
우리의 하루를 고요한 기다림으로 견디게 하고 다정한 안부로 꽃피우게 한다.
용건 없는 안부가 오가는 그 찰나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어느덧 우리의 일상은 낡고 해지는 대신 투명한 온기로 가득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