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짓다

하루를 함께 나누는 시간

by 책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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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밥 한 끼 먹는 일이 예전보다 점점 어려워졌다.

각자 시간이 다르다.

누군가는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고 누군가는 회사 일로 늦고 또 누군가는 약속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밥을 따로 먹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다행히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가끔 시간이 맞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나의 주방은 갑자기 바빠진다.

냉장고 문을 열어 미리 장을 봐 두었던 채소와 야채를 꺼낸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하나씩 썰기 시작하면 어느새 싱크대 위에는 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인다.

프라이팬에서는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냄비에서는 국이 보글보글 끓는다.

마늘을 다지는 소리, 국자를 젓는 소리,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가 주방을 채운다.


마치 손에 작은 모터라도 달린 듯 내 움직임은 분주하다.

도마에서 냄비로 다시 프라이팬과 접시로 손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오랜 시간 몸에 밴 리듬처럼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밥상을 차리다 보면 늘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가짓수가 늘어난다.


국 하나에 반찬 몇 개면 충분할 텐데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맛있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내 손끝을 붙잡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둘 정성을 더하다 보면 어느새 식탁 위는 생각보다 풍성해져 있다.


갓 지은 밥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고소한 냄새가 부엌을 채울 때쯤

그 냄새에 이끌리듯 가족들이 하나둘 식탁으로 모여든다.

그제야 나는 분주했던 손을 잠시 멈춘다.


식탁에 앉는 순간 학교와 회사에서의 일상, 친구 이야기

그리고 그날의 소소한 사건들이 보따리 풀리듯 하나둘 흘러나온다.

누군가는 연신 싱글벙글 이야기를 이어가고 또 누군가는 밥을 먹다 말고 문득 떠오른 기억을 보탠다.

서로 자기 말을 하기 바쁜 소란스러움 속에도 묘하게 따스한 공기가 감돈다.

한바탕 웃음꽃이 피어나면 식탁의 분위기는 한층 더 밝아진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새 밥그릇은 비워지고 반찬 접시도 바닥을 드러낸다.

즐거운 식사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고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방으로 들어가거나 저마다의 할 일을 찾아 흩어지는 뒷모습 위로 기분 좋은 포만감이 남는다.


식탁을 정리하며 문득 생각한다.

참 평범한 풍경인데 이 평범함을 지켜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 채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는 날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식탁에 둘러앉아 얼굴을 마주하고 하루의 조각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대단한 사건이 있는 것도 특별한 날도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의 안부를 묻고 같은 밥을 먹으며 함께 웃었을 뿐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가족의 기억이라는 것은 결국 이런 사소한 장면들로 채워지는 게 아닐까.


거창한 기념일보다 아무 일 없던 날의 식탁이

별것 아닌 이야기로 소란스럽게 웃던 그 찰나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서로를 마주 보며 온기를 나누던 이 평범한 한 끼는 언젠가 내 마음속에서 가장 따뜻한 풍경으로 기억될 것이다.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같은 온도의 시간을 나누고 그렇게 평범한 하루를 함께 살아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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