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나를 찾는 여정
나의 아름다운 2층 집
by
정예슬
Dec 26. 2021
'계단이 막혀 있네.
아... 이제 2층에 못 올라가는구나.'
살면서 진한 아쉬움을 느꼈던 첫 번째 기억이라면
외가댁 2층에 더 이상 올라가지 못했던 일이다.
여러 차례 도둑이 들고
비까지 새기 시작한 신혼집에
갓난쟁이까지 세 식구가 사는 게 안타까웠던 외할아버지는
본인 집 2층에 들어와 살기를 제안하셨다.
그렇게 아빠의 처가살이는
10년간 이어졌다.
부모님의 속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나는 외할아버지의 2층 집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당뇨가 심하셨던 외할아버지는 1층 정원에 갖가지 채소를 심으셨고 철철이 누에를 사다 고아 드셨다.
정원에서 공벌레와 개미를 잡고 놀다가
누에가 오는 때면 1층 거실 한가득 꾸물거리는 하얀 누에들을 구경했다.
내가 졸라서 샀다는 하얀 강아지 이름은 뽀삐였던가?
어느 날 열린 문 틈으로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던 나의 첫 반려견.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꽃집
점방이라는 곳이 있었다.
매일 문턱이 닳게 드나들었는데 심부름을 하고
남은 돈으로 늘 과자를 샀다.
돌아오는 길은 빨리 먹으려고 뛰는 바람에 꼭 엎어지고 말았다.
하도 무릎을 깨 먹고 와서인지 어느 날엔 아빠가 2층에서
"뛰지 말고 걸어온나~~"라고 하시며 내려다보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좋아했던 곳은 도서관이다!
막내 이모랑 자주 갔었는데
책이 정말 정말 많았다.
책 보다 더 좋았던 건 도서관 앞마당에서 개미를 구경하던 거였지만.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왕 개미들이 많았는데
줄지어 가는 것도 서로 투닥거리는 것도 모두 신기했다.
집에 데려가려다 물리기도 여러 번, 결국 잡아가지는 못했다.
또 걸어서 엎어질거리에 법원이 있었는데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재판하는 모습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 틈에 끼어
웅성이는 소리와 수많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구경하곤 했다.
사촌 동생들이 놀러 오는 주말엔 법원 문이 닫혀 있어서 담벼락을 넘었다.
평일엔 문이 열려 있음에도 꼭 담넘기를 시도했다.
법원을 통과하는 것이 실내수영장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는데
담을 넘느라 시간을 쓰느니 담벼락을 빙 둘러 가는 게 더 빨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꼭 담을 넘으려 했던 건 단순한 재미 때문이다.
이렇게 옛 일을 회고해보니, 우리 아들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이 이해가 될 것 같다.
2층 집에 사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던 이유는,
외가댁 1층에 당시
대학생이었던
막내 이모와 작은 외삼촌이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1층과 2층 사이를 연결하는 내부 계단을 마르고 닳도록
오르내리며
외삼촌 방에 가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막내 이모 방에 가서 노닥거리다가
안방에 가서 만화영화를 실컷 봤다.
외삼촌은 비빔밥을 정말 맛있게 만들었고
막내 이모는 비빔면을 최고로 맛있게 해 주셨다.
그런 별미들을 맛보는 것도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고시공부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외할아버지는
남해 고향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진주로 온 가족이 넘어왔을 무렵에는 그 근처 어디에서 근무를 하셨다.
나에게는 언니, 오빠였던 아이들의 그림과 글쓰기 뭉치를 한가득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은 내게도 무척 신나는 날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참 잘했어요 도장과 빨간 색연필이 어찌나 탐났는지...
그때부터 사촌 동생들을 앉혀놓고 학교 놀이를 했던 것 같다.
받아쓰기 시험도 보고 빨간 크레파스로 채점을 해주었다.
우리 가족은 내가 2학년 겨울 방학을 맞이했을 무렵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한동안 아파트의 매력에 빠져 2층 집을 잊고 살았다.
사촌 동생들도 우리 집으로 놀러 와 함께 놀이터 투어를 하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외가댁에 갔다가 내부 계단에서 2층으로 가는 문이 잠긴 걸 발견했다.
새로 세입자가 들어와 있어서 외부 계단으로도 올라가 볼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2층 집이 내 꿈속 단골 소재가 된 것이다.
한창 키가 크려 했던 건지 나는 수시로 2층에서 뛰어내렸고
1층에 곤두박질치기 직전에 날개가 돋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할머니도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기에
그곳에서 살았던 10년과 그 후 10년도 안 되는 기간은
이미 내 나이로 미루어봤을 때 그리 긴 세월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2층 집은 유년기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어서인지
종종 그립고 지금도 꿈에 나오는 장소이다.
꿈의 장르가 판타지에서 스릴러로 변한 것만 다를 뿐.
나의 아름다운 2층 집은 어떻게 변했을까?
어쩌면 지도뷰에서 사진으로 바뀐 모습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추억의 장소인만큼, 언젠가 꼭 내 오감으로 직접 마주할 날을 고대해본다.
keyword
추억
유아
집
24
댓글
6
댓글
6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정예슬
소속
작가
직업
강사
초등 긍정 확언 일력 365
저자
예스리딩 대표|작가|강사|5.3만 교육 크리에이터 @yeseul_check <열려라역사논술><초등긍정확언일력365><슬기로운독서생활><너의생각을응원해!>등 10권의 책을 썼어요.
팔로워
291
제안하기
팔로우
인생의 파도 앞에서 부르는 이름, 엄마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