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빈 백지를 마주하는 건 엄지 손가락이다. pc 자판에서는 공백을 만드는 게 전부 였건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살아온 건지 끝도 없이 풀어낸다.
제아무리 엄지가 이야기 보따리라지만 긴 글을 쓰는 건 쉽지 않다. 미완의 글들이 브런치에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우리 좀 내보내 줘!"
아우성치는 글들을 본체만체. 오늘도 엄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런 상태가 꽤 불만이지만 썩 흥미롭기도 하다.
'작가의 서랍에 글이 몇 개나 저장되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작가의 서랍을 열었다. 지금 이 글을 시작으로 하나 둘 셋 넷... 100개가 넘더니 37에서 멈췄다.
책 세 권은 나올 분량이네. 하루에 하나씩 완성해보자고 다짐하지만, 엄지는 또 반란을 일으킬 것이 뻔하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거야! 아마도 그런 엄지를 웃으며 바라보겠지.
"하지만 엄지야 오늘은 그냥 두 눈 질끈 감고 내보내자. 이런 글이라도 괜찮아. 어차피 내 사전엔 발행했다고 끝인 글은 없거든. 읽고 또 읽으며 고치겠지. 처음부터 완벽을 추구하지 말자 우리. 기껏해야 그냥 글일 뿐이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행을 누른다.
괜찮다, 이런 글도.
괜찮다, 이런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