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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언니 정예슬 Sep 12. 2022

어떻게 그런 색 바지를 입어?

 그런 색이란 표현에 고개를 들었다. 이틀 연속 무심코 지나친 바지였는데. 음 무슨 색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회색이라고 하기엔 우유를 한 방울 떨어트린 것 같고 연회색이라 하기에는 애매하다.


 이 알 수 없는 색상의 바지가 매장에 사이즈별로 걸려있었을 테다. 좌르륵 걸린 바지를 떠올리자 새 한 마리가 떠올랐다. 아, 비둘기 색이구나. 그렇게 이름 짓고 나니 꽤 괜찮아 보였다. 내 옷도 아니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갑작스러운 소란에 자연히 귀 기울이게 되었다.


A:  어머나!! 둘이 바지가 똑같잖아?!

A의 남편: 어!!!!

B: 이것도 유xxx??

B의 남편: 역시 아시아 핏이야!!


 어제였다. 남편의 큰댁 식구분들이 시댁에 모였다. 코로나로 몇 년간 왕래가 없었는데 그 사이 8명의 아기가 제법 자랐다. 엄마 아빠를 아예 찾지 않는 가장 큰 형, 바로 우리 집 첫째를 필두로 집안 곳곳에 흔적이 남았다. 앞으로도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사이. 그 틈바구니에서 똑같은 바지를 입고 마주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뜻밖의 광경에 "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서로 엉켜 있는 사람인가 봐~"라는 노랫말이 떠올랐다. 족보를 따져가며 매제, 아주버님, 형님, 아가씨라는 호칭이 오갔지만 가만히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우린 하나 아닌가.


 토마호크 밑간을 하는 남편의 손놀림에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갔다. 내가 너고 너가 나라면 세상만사 아옹다옹할 일이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색 바지 하나로 꽤 흡족한 결론에 이르렀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빨간 날이 하루 더 남아 있어서 너그러워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마지막 밤이 되었지만 어제와 내일을 번갈아 떠올리며 조금 설렌다. 내일은 내일의 색을 발견하겠지. 아예 처음 보는 것일지 조금은 알만할 것일지 궁금하다. 이 마음 그대로 안고 굿나잇 스윗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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