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동생 딸래미 돌잔치가 있었다. 공주 드레스를 입고 생글 생글 웃으며 나타난 예쁜 조카! 시조카가 2명 있지만 아들이라 딸 조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쩜 이렇게 몰랑하고 홀랑하고 귀여운 존재가 다 있나! 자꾸만 이름을 부르게 되고 둥가둥가 안고 흔들게 된다.
돌잔치의 꽃은 돌잡이라고 했던가! 우리 모두 이거 잡아라 저거 잡아라 훈수를 두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사실 전 날부터 나와 두 아들은 돌잡이 내기를 한 터였다. 나는 현금, 첫째는 청진기, 둘째는 판사봉을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모 치고 싼가? 며칠 전 <부자의 마지막 가르침>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라는 데에 큰 깨달음을 얻은터라 지금에와 그 내기가 부끄럽긴 하다.
어쨌거나 내기는 내기였으니 각자 자기가 말했던 것을 잡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요 귀요미가 5만원을 잠시 만졌다 놓고 한참을 두리번 거리는 거다! 양 쪽에서 첫째가 청진기를 둘째가 판사봉을 슬쩍 가까이 놓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탐색하더니 마패를 들어!!!!! 올리려다 무거워서 놓쳤다. 또 한 차례 탐색전 이후 다시 마패에 손이 갔다. 너무 무거워서 못 들어올려 엄마 아빠의 도움으로 성공~!!
자연스레 내가 어릴 적 기억이 소환되었다. 물론 내 기억은 아니고 엄마의 기억이지만...
"예슬아 잡아 봐~~"
돌잡이 타임에 나는 눈 앞에 놓인 돌잡이 용품 중 어느 것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덥석! 팔을 쭈욱 뻗어 사과를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고... 돌잡이에 사과 잡은 사람, 나야 나 나야나!!!!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일인가! 사과라니... 요즘 사과가 금값이긴 하지만서도... 우리 둘째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사과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이걸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엄마는 "'먹는 것'을 잡았으니 앞으로 먹는 걱정 없이 잘 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요즘 내 삶을 보니 정말 잘 먹고 산다. 살이 쪄서 문제? 하하. 그리고 또 한 가지 해석을 추가하자면... 눈 앞에 놓인 안정적인 길이 아닌 새로운 길에 도전하길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평범하고 안정적인 교사 생활도 분명 만족도가 컸는데, 우왕좌왕 널을 뛰는 프래린서의 삶도 꽤 좋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대로 시간을 운용할 수 있는 기쁨이 가장 크다. 요 근래 매주 수요일마다 3주 연속으로 동네 엄마들을 만나고 있다. 4명에서 시작해 7명까지 늘었다. 예전에는 엄마들과의 만남이 불편했는데 요즘은 정말 이렇게 웃어도 되나 싶게 떠들고 온다. 그 안에 나름의 배움도 있다. 이건 다음 글에서 :)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아침 시간이 여유로운 것이다. 학교에 출근을 할 때면 정말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남편은 지금보다 40분이나 빨리 새벽 6시 30분도 되지 않아 집을 나섰다. 신생아 때부터 지금까지 아침에 남편이 있는 날이라곤 주말 혹은 휴가를 쓴 날 뿐이었다. 두 아들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후루룩 아침을 먹고 어린이집과 학교 돌봄 교실에 아이들을 욱여넣은 후 학교로 향했다. 징징거림이나 울음 따위를 신경 쓸 겨를 없이 뒤돌아서기 바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심지어 두 아들이 계란 후라이를 해서 계란밥을 만들어 먹기까지 한다. 오늘 아침엔 둘째가 '구강검진표'를 깜빡하고 학교에 놔두고 왔다며 걱정을 표했다.
"괜찮아~ 학교종이에 들어가면 인쇄할 수 있게 올려주셨을 거야. 엄마가 프린트해서 적어줄게! 걱정하지 마~"
예전이었다면 그런 걸 왜 잘 못 챙겨 오냐고 짜증 섞인 말을 내뱉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런 변화는 남편에게도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난데없이 어제 저녁 남편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하다고 칭찬을 다 한다?! 이건 좀 너무 뜬금 없는데... 아무튼... 불안함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가족과 일상을 돌보며 제법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