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아들은 어른이 읽는 책도 거리낌없이 집어들고 읽는다. 엄마가 읽는 책이 궁금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둘째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책 자체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제는 12월생이 큰 의미가 없지만 나이가 더 어릴 때는 아이의 책 읽기가 제법 화두에 올랐다.
한국 나이로 5살이었던 아들은 나의 복직에 맞추어 집 앞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콩기계'라는 책을 좋아해서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 지금 그 책을 다시 보니 초등학교 1학년도 지루할 수 있는 길고 긴 그림책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니, 00이는 글밥이 많은 그림책을 읽어줘도 끝까지 집중해서 듣고, 책 읽기를 참 좋아해요!"
속으로 환호를 했다. 겉으로 잔잔하게 미소 지으려 애쓰며 감사 인사를 전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에게 글밥의 한계를 두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책을 읽어주려 애썼다. 영어책이건 한글책이건 잡히는대로 읽어주었다. 아이가 놀이를 하고 있을 때 흘려듣기 DVD 음원을 틀어주라고들 하던데 나는 그냥 내 생.목.으로 옆에 누워서 읽어주었다.
아이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으면 와서 듣다가 또 자기 일을 하다가 내가 읽어줬던 책을 찾아 넘겨보길 반복했다. 그렇게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 기간에도 정말 이 때다! 하며 책을 닥치는대로 읽어주었다. <푸른사자 와니니> 시리즈 등 두께나 권 수 상관없이 아이가 흥미로워할 만한 책이 나올 때마다 전부 읽어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들은 <의사어벤져스> 시리즈를 초1부터 혼자 읽기 시작했다. 엊그제 학원에서 받아온 문화상품권으로 최근에 나온 18권을 샀고 이전 책도 몇 번이나 읽은건지 전체 내용을 줄줄 꾀고 있었다. 이 쯤에서 나는 늘 의문이 든다. 20개월 차이 나는 둘째! 지금 초2 아들에게...
'똑같이 해 준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일까?!'
때마침 <변호사어벤져스>가 나와서 나쁜 사람 혼내주는 직업을 하고 싶다는 둘째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의기양양하게 책을 집어든 초2 둘째가 심각하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옆에 있던 남편이 서둘러 말했다.
"법률 용어가 좀 어렵지~? 괜찮아~"
"그래~ 그건 나중에 엄마랑 읽고 다른 거 읽어~"
원고 작업 중이던 나도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문득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 둘째라고 책 읽어주기에 소홀했구나...'
소홀했다고 하긴 그렇고, 그냥 좀... 봐주고 있다느 느낌이랄까?! 첫째에게는 더 두꺼운 책, 더 어려운 책도 끈질기게 붙어서 읽어주고 읽어주었다. 그런데 둘째는 조금만 지루해하는 기색이 느껴지면 먼저 마음을 접고 책을 덮어버렸다. 이상하게 둘째는 아기처럼 느껴졌다. 분명 첫째가 읽은 의사어벤져스도 의학용어가 꽤 많이 나오기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끝까지 읽어냈다. 그런데 둘째는 달랐다. 한 장도 읽지 못하고 포기했다.
갑자기 첫째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강요했을까? 책읽기도 막중한 책임감으로 읽고 있는 건 아닐까?!
"어머!! 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 시간이 몇 신데?!"
어제밤 두 아들이 잠자리에 들고 마저 할 일을 하고 거실에 다시 나왔는데 첫째가 깨어 있었다. 시계는 자정을 가르키고 있는데......
"엄마~ 이 책 진짜 재밌어요!!"
"뭔데?!"
"도깨비 오지랑이요~~"
벌써 1권을 다 읽고 2권을 읽고 있는데 두 장만 더 읽으면 된다며 끝까지 다 보고 잔단다... 세상에... 내 걱정은 기우였다. 아들은 그냥 책을 좋아해서 읽는 거였다. 둘째에 대해서도 더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둘째에겐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게 많은 것 뿐이라고...
"푸쉬~~ 푸쉬~~~ 내 공격을 받아라~~~ 얍얍얍"
"으으으윽... 으아아아아"
혼자 로봇과 공룡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1인 2역을 실감나게 연기 중인 둘째...
결국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되는 일이 아닌 모양이다. 스스로 즐기는 사람이 잘 읽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우리 둘째는 책보다 연기에 더 소질이 있는 걸까? 뭐가 됐든... 행복하면 됐지... 차노을 랩을 읊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