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 (2007)’

by 서초패왕

1. 윤성호 감독에 대하여


그간 윤성호 감독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특유의 재치와 실험 정신을 뽐내왔다. 2004년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우회적·희극적으로 드러내는 6분짜리 단편 <우익청년 윤성호>로 충무로의 눈도장을 찍더니, 첫 장편 <은하해방전선>으로 2007년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올해의 독립영화감독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이후 각종 플랫폼을 아우르며 활동 반경을 넓혀왔는데, MBC 에브리원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시작으로, 네이버TV <대세는 백합> Wavve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옵니버스 단편 <말이야 바른 말이지> 등 다양한 단편 시리즈물을 내놓으며 지금 대세가 된 웹드라마 분야를 개척해 나갔다.


단편 시리즈로 명성을 얻은 윤 감독이지만, 윤 감독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 그리고 정신없는 산만함 속에 숨겨놓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휴머니즘)은 장편 <은하해방전선>에서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 윤 감독이 31살에 개봉한 작품이기에, 신인 영화 감독의 투박함과 풋풋함을 느껴져 더욱 마음이 따뜻하고 즐겁다.


2. 투박함과 순수함


영화는 ‘사랑을 함에 있어 연인과의 소통’을 주제로 삼는데, 이는 어찌 보면 뻔한 주제이다. 하지만 그 뻔한 주제를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과 표현 방식의 재기발람함은 투박함과 서투름이 더해져, 영화를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주인공 영재(임지규 분)에게는 윤성호 감독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이라는 나이에, 초짜 영화감독으로 장편영화를 준비하는 모습까지. (※심지어, 신도시 아파트에서 플롯을 열심히 부는 영재의 엄마 역할은, 감독의 어머니가 맡아 열연하셨다.)


초짜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주인공 영재는 서투르다 못해 찌질하다. 여자친구 은하(서영주 분)에게 ‘너 아니면 나랑 섹스해줄 사람이 어디 있냐’는 충격적인 ‘말’ 을 할 정도이다. 영재를 품어주던 은하도 참다못해 결국 이별을 선언하는데, 영재는 은하와 헤어지자 영화 준비 과정에서도 난항을 겪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실어증에 걸려, 목구멍에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랑도, 영화도 ‘말’로 소화해가던 영재는 더 이상 말을 할 연인도 없고, 말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말’은 소통(또는 대화)의 반대말이다. 소통이 양방향적이고, 상호 관계성을 보여주는 지향점이라면, 말은 일방향적이고, 혼자 멤돌다 사라지는, 오히려 오해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고독한 무엇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 하려고 하면, 하모니카·트럼펫·색소폰 등 악기의 하모니가 나오는 기이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하는데. (※이는 차라리 말(소음에 가까운)보다 음악소리가 듣기 좋을 것이라는 감독의 재기 넘치는 연출시도로 느껴진다)


‘말’이 가장 필요한 순간 말을 할 수 없어진 영재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혁권(박혁권 분)과 복화술로 외국 연예기획사와 소통하는 등 좌충우돌하게 되지만, 서서히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진짜 소통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성장한 것이다.


3. 200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적 배경


영화의 배경은 2000년대 후반이다. 나 또한 같은 시절 학부를 보냈고, 연애를 했다. 그래서일까, 영재의 부족함이 공감되고, 지나간 추억에 휩싸이게 된다. 아마, 감독과 내가 같은 학부에서 비슷한 시절을 보냈기에 공감의 폭이 컸을 수도 있겠다. (※영화 곳곳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감독의 출신 학교를 유추하게 했다.)


2025년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 2000년대가 그리운 이유는, ‘그 시절 자체가 좋았다’라기보다 그때의 내가, 또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한다. “더 잘할 걸!”


영재와 은하를 보다보니, 그때의 내가 겹쳐 보인다. 서툴고 미숙해서, 그래서 찌질하고, 돌이켜 보니 순수하게 좋아했던.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떨 때 보면, 내가 나이만 먹었지 성장한 게 맞나 싶을 때도 있다.


개구리 군복, 옛날 2호선, 지금은 보기 힘든 크리스피크림 도넛 등 영화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2000년대의 풍경이 서투름과 투박함이라는 영재의 모습을 배경처럼 뒷받침해준다.


4. 진정한 소통을 찾아서


영재는 배우와의 대화에 나선 혁권에게 ‘영화에 대해 물어보면 무조건 인간과 소통에 대해 그렸다고 답하라’라고 말한다. 감독 영재의 주문에 따라 번지르르하게 소통이란 말만 반복하는 혁권의 모습을 보며 영재는 깨닫는다. 자신이 하던 건 말이고, 진짜 소통은 무엇인지.


영재는 상상한다. 은하와 진정한 대화를 하는 장면을. 거기에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 영재에게선 악기 소리밖에 나오지 않지만, 은하는 전부 이해한다. 실어증에 걸리고 나서야 처음으로 ‘대화’라는 것을 하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모순.


악기 소리로 삑삑거리며 자신이 더 잘하겠다며 은하를 잡는 영재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보인다.


※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지금은 해체한 인디밴드 뇌태풍의 노래 ‘첫 사랑이 생각나는 이 밤’도 영화만큼이나 좋다.


2025. 03. 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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