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년의 대장정
한길사에서 2012년 6월에 1·2권이 함께 출판한 <중국현대사>는 당시 화제의 신간이었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부터 등소평 시기까지 중국 현대사의 각종 이야기 거리들이, 저자가 수집한 귀한 사진과 함께 실려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시대별로 쓰인 것도, 주제별로 구분된 것도 아니다. 저자의 일필휘지에 맞춰, 인물과 사건이 재미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진다. 복잡하기 짝이 없던 현대 중국의 모습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해당 책이 2007년부터 16년간 중앙선데이에 <김명호의 사진으로 보는 중국 근현대>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나의 이야기 분량이 타블로이드판 신문의 지면 한 면의 양과 꼭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중국판 아라비아나이트라 불리는 이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가 지난, 2024년 9월 10권으로 완간되었다. 첫 권이 출간되었을 때 군 복무 중에 있었는데, 어느덧 12년이 지나 8년차 직장인이 되었다.
나는 매년 출간될 때마다 서점에 가서 신권을 구입했고, 출간이 늦어지던 2018년에는 한길사에 전화까지 해서 출간 계획을 물어볼 정도로 열성 독자였다. 책이 출간되는 12년 동안 내 인생도 중국 현대사만큼이나 복잡다단했는데, 책은 완결되었다 하니, 시원섭섭한 기분도 들고, 한편으로 처량한 마음도 든다.
2. 중국현대사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역사 초보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중국 현대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이 책에서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정치가, 군인, 예술인, 지식인, 과학자 등 중국의 현대사를 수놓은 사람들과 만주 사변, 동북 전쟁, 미·중 수교, 미·일 수교 등의 주요 사건이 이야기 형식으로 쉽게 쓰여 있지만, 중국 현대사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어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부 2학년 때, 조병한 교수님의 중국 현대사 수업은, 김한규 교수님의 동아시아 국제질서 수업과 함께, 중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초석이 되었던 수업이다. 역사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의 향연’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역사 해석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게 해준 수업들이다.
마지막 10권을 읽다, 다시 한 번 15년 전 수업이 생각이 났다. 자유주의 사상가 후스(胡適)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교수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랑 똑같았다. 34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장개석 총통이 적당한 비판 창구로 놔두었다는 내용도 내용이만, 책의 서사 구조가 강의 때와 똑같은 것이다.
‘저자와 교수님이 아는 사이인 것일까, 아님 같은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생각만으로도 흥미롭다.
3. 마지막 건곤일척
대륙을 두고 여러 세력이 이합집산을 거듭해, 마지막 천하통일을 하는 과정은 일종의 숭고미까지 느끼게 한다. 나는 이‘천하 통일’ 서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삼국지’가 그렇고, ‘초한지’가 그러하다. 이 서사의 마지막 주인공은 중국공산당과 모택동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천안문광장에서 공표하면서, 국·공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투쟁기는 소련·쿠바·북한 등의 혁명기하고도 차별화된다. 소련 공산당은 혁명으로 일거에 정권을 잡았고, 적백 내전을 거치긴 하였으나, 단일 상대와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치르진 않았다. 조선노동당은 소련의 도움으로 정권을 얻었고, 이후 북한의 역사는 김일성의 숙청을 통한 권력 장악기에 불과하다.
중국 공산당의 대륙정벌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극소수에 불과한 공산당 조직이 자생적 소비에트를 설치하였고, 궤멸 직전에 이르러서는 대장정을 펼친다. 항일 전쟁을 거쳐 수십 배 군사력의 장개석·국민당군을 만주에서부터 격파하여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은 유방·한나라의 건국 과정보다도 극적이다.
※ 상대였던 장개석·국민당군 역시 북벌을 통해 한차례 천하 통일을 성공시킨 터였다. 이들이 북벌 20여년 만에 패배해 대만 섬으로 들어간 과정은 비극적이다 못해 신화적이다.
중국현대사는 천하통일이라는 수천 년간 성공적이었던 이야기 서사에 공산주의·모택동사상이라는 신화적 이념(※실현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까지 더해진 최고의 이야깃거리인 것이다. 심지어 이 이야기는 수천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닌, 한·두 세대 전의 이야기이다. 사진과 심지어 동영상까지 남아있다. 1차 사료가 넘쳐흐르고, 직접 경험한 사람 중 생존해있는 사람도 상당하다.
4. 역사서로서의 한계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역사서라기보다는 이야기책이다. 현대 중국의 아라비아 나이트라는 평가가 정확하다.
국민당·공산당 사이의 동북전쟁은 민심이반·소련의 지원 등으로 국민당이 패배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나, 저자는 린뱌오(林豹)의 존재와 국민당將의 병환에 초점을 맞춘다. 린뱌오의 전략적 성취도 동북전쟁 향방에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야기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책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며, 알 수 없던 공식 역사 이면의 이야기들과 귀한 사진들은 너무도 흥미로워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한다. 김명호 교수의 중국 현대사와 함께했던 12년의 세월도 이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