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나는 한남 세상
영화 <연애의 목적>처럼 관객의 평가가 양극단으로 나뉘는 영화는 드물다. 혹자는 ‘강간 미화 영화’로 폄훼하지만, 다른 한쪽은 희극과 비극이 잘 버무려진 수작으로 평가한다.
관객의 평가와는 별개로,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사실을 다룬다. 특히 2005년 한국사회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지독히 사실적인 ‘문제작’이다.
영화가 개봉했던 2005년은 가히 ‘신나는 한남 세상’으로 불릴 만 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최고 학번 선배 양 옆에는 가장 인물 좋은 여자 후배가 술을 따라야 했다. 외모 평가는 일상적이었고, 남성의 강압적인 섹스 요구도 큰 문제로 지적되지 않았다.
영화는 그 시절의 사회상을 충실히 반영한다. 고등학교 영어교사 ‘유림’(박해일 분)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지만, 지리 교생 ‘홍’(강혜정 분)이 나타나자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다.
‘홍’또한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다. 유림의 추파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나, 유림의 성희롱·성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 교생으로 정교사의 평가를 받아야하는 ‘을’의 입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2. 범죄에 대한 미화
영화에서 표현되는 유림의 모습은 적극적인 플러팅의 수준을 넘어선다. 저속한 성희롱을 반복하고, 심지어 수학여행에서 성폭행까지 저지른다. 홍의 집 앞에서 대기하다가, 방범창을 뜯어내고, 홍의 자택에 무단으로 침입하기까지 한다.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엄연한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홍은 점점 유림에게 마음을 연다. 둘은 잠자리를 하고, 각자 연인이 있음에도 연인처럼 행동한다.
이 지점은 2020년 이후 관객들에 의해 가장 비판받는 지점이다. 관객들에게 ‘강간과 스토킹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보인다면 여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낸다는 것이다.
가능한 비판이다. 영화의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다. 영화 말미에 유림은 결국 체포되고, 학교에서 쫓겨나 학원 강사로 연명하게 된다. 정황상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에게서도 버림받은 것으로 보인다.
유림이 홍의 마음을 얻는 과정에서 행한 범죄의 대가를 치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홍의 마음을 얻는 서사 자체가 ‘강간 범죄에 대한’ 미화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비판이다.
사실, 영화는 00년대 한국의 연애 방식의 한 단면을 극화해서 표현했을 뿐이다. 스토킹도 플러팅으로 받아들여졌고, 좋아한다는 이유로 위험한 행동 조차 상당 부분 용인되었던 00년대. 영화는 그 시절을 보냈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를 ‘강간 문화의 미화’라는 이유로 영화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과거 잘못된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성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3. 연애의 목적
영화에서 유림의 연애의 목적은 ‘섹스’뿐인 것으로 보인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에게서 성적 흥미를 잃은 것인지, 연인과의 관계는 시큰둥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흥밋거리인 홍에게는 끝없이 ‘섹스하고 싶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각종 범죄를 통해 관철시킨다.
한편, 홍은 사랑 자체가 연애의 목적이었으나, 상대방에 대한 구속·집착이 목적이었던 상대(유부남이었고, 홍을 스토커로 몰아갔다)에게서 큰 트라우마를 갖게 되면서 연애와 사랑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다. 홍은 아마 연애의 목적은 없고, 그 끝은 ‘상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연애의 목적이 달랐던 두 사람이 만나,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유림은 징죄받고, 홍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육체적 목적이든 뭐든, 유림은 범죄라는 리스크를 감수하며 홍에게 직진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에는 자신의 죄를 인정해 처벌까지 받았다.
또, 처음에는 섹스만을 목적으로 접근했지만, 유림은 홍을 실제로 점차 사랑하게 된 터였다. (홍의 트라우마를 알고 나서 진심으로 분노하는 것 등이 그 예시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학교에서 쫓겨나 학원에서 일하는 유림과 다시 재회한 홍은 과거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밝은 모습이다. 유림 역시 겉멋이 든 모습에서 한결 성숙해졌다. 두 사람은 드디어 서로를 사랑할 준비가 된 것 같다.
연애의 목적은 결혼도 아니고, 섹스도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구속이나 집착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사랑 또한 집착과 상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연애에 목적을 두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축복이며, 하나의 경이이다. 그 사람을 알아가고,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하나가 되는 과정 자체가 인생의 선물인 것이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섹스가 주는 쾌락에 눈이 멀기도 하며, 상대를 결혼시장의 상품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좌충우돌 하며 성장한다. 사랑과 연애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연애의 목적은 ‘배려와 존중의 과정’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좌충우돌하며 성장한 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 아름답다.
※ 결코, 영화 과정에서 묘사된 과거 한국 사회의 ‘강간 문화’에 대해 긍정하지 않으며, 강간 문화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음.
2025.01.08(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