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의 영상미적 가치
영화는 2000년대 초반의 한국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은 모습의 노트북과 데스크톱, 지금은 보기 힘든 황토색 장판과, 조악한 플라스틱 수납장과 그것보다는 조금 나은 형편의 잎사귀 문양이 새겨진 장롱.
주인공이 황토색 장판이 깔려 있는 방에서 첨단 전자기기인 노트북을 사용해 논문을 쓰는 모습은 IT화로 빠르게 발전하던 전자 기술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던, 제반 시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 모습은 사회 제반시설이 기술수준에 맞춰진 2025년 현재의 모습으로 봤을 때 너무나 생경해서 이질적이면서도, 아련하다.
영상의 생경함은 제반 시설 뿐만이 아니다. 의식구조 자체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겨우 20년 전임에도, 영화 안의 주인공들의 행동 양태는 60년대의 사람들의 그것과 오히려 비슷하다. 사무실과 집에서 편하게 연초를 태우고, 회사 회식자리에 도우미들을 부른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지만, 사적인 심부름을 편하게도 시킨다.
분명 10대였던 내가 실제로 살아낸 세기 말·신세기초 대한민국의 모습인데도, 더욱 아련하면서도 생경하게, 그러면서도 생생하게 느껴지게 한데에는 <질투는 나의 힘>이 가진 영상미의 힘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박찬옥 감독을 ‘안개같은 감독’이라고 평한 바 있다. 모호하면서도 아련한 영화의 서사, 그리고 담배 연기 같이 뿌옇고, 캡틴큐처럼 진득한 영화의 영상.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영화 내내 펼쳐지는 2000년대 초의 한국의 풍경이 너무나 그리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한편, 해당영화가 2000년대 초의 모습을 완벽하게 담고 있다면, 2007~2010년 즉, 2000년대 중후반의 한국의 모습은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이 완벽하게 담고 있다. 특히 그 시절 대학에 입학해 첫 연애를 했던 ‘나’로서는 영화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질투는 나의 힘>이나 <은하해방전선>이 담고 있는 감성은, 해당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절을 살았던 한국인이 아니라면, 온전히 그 영화의 감성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던 <기생충>의 보편적 주제의식인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영상미를 압도한 반면, 두 영화는 주제의식만큼이나 영상이 담고 있는 시대적 분위기가 영화를 이해하는데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2.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기형도의 시
영화는 프로이드의 학설과 기형도의 동명의 시를 양대 뿌리로 한다. 주인공 원상(박해일 분)은 원숙한 잡지사 편집장인 처자식 딸린 유부남 윤식(문성근 분)에게서 연인을 빼앗기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윤식이 일하는 잡지사로 들어간다.
잡지사에서 일을 하며 알게 되어 연심을 품게 된 사진기자 성연(배종옥 분) 또한 점점 편집장 윤식에게 빠져가는 것을 느낀 원상은, 그녀의 마음을 돌려놓으려 애를 쓰지만, 윤식의 학식과 여유로움 등, 그의 원숙함 앞에서 원상의 젊음과 순수함은 중과부적이다.
강대한 아버지의 힘에 굴복하고 마는 미숙한 아들의 모습처럼, 원상은 윤식과 대립하는 방식이 아닌, ‘작은 윤식’이 되는 길을 택한다. 동경의 대상이 된 윤식을 위해 운전 등 작은 수발부터, 장인어른의 상을 치루는 것까지, 그의 원숙함에 철저히 굴복한다. 윤식 역시 자신과 다른 원상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음에도 윤상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드린다.
박찬옥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을 보고 잡았다고 언급하였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원상은 스스로 ‘주인인 적이 없다.’ 끝없이 공허한 사랑을 갈구하며 도피처를 찾아 헤매었는데, 종국에는 윤상에게 의지하는 것이 가장 아늑한 방법이라 판단한다. 유일하게 주인이 될 수 있는 순간이 있었지만, 책임지지 못하고 도망치는 길을 택한다.
3. ‘혜옥’과 여성의 주체성
모든 영화의 캐릭터가 완벽하게 설정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혜옥’(서영희 분)이다. 영화의 핵심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먹물깨나 먹은 등장 인물들 사이에서 혼자만 이질적이다. 그녀는 유일하게 못 배운 ‘여성’이지만, 가장 주체적인 존재이다.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하는 원상, 윤식, 성연과 달리, 혜옥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원상만을 바라본다. 유일하게 담배를 태우지 않고, 요리를 만들 줄 알며, 가족을 먹이는 존재이다.
부당하게 연인을 빼앗겼지만, 윤식에게 한마디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원상과는 달리, 윤식에게 왜 제대로 집에 보내지 않고 혹사시키냐고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호통을 칠 수도 있는 여성이다.
‘작은 윤식’이 된 원상과, 그를 받아준 윤식의 <남성 연대> 속에서 여성인 혜옥과 성연은 철저히 혼자이다. 혜옥은 혼자 산부인과에 가고, 홀로 잡지사에 쳐들어간다. 성연이 자기 고백을 하는 이부자리에서, (역시 여성인) 친구는 듣지 않고 딸과 함께 잠들어버린다.
영화는 ‘원상의 질투’에서 시작해 하나가 된 원상과 윤식의 모습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화의 진짜 핵심은 <자각하는 여성>으로 보인다. 영화 말미에 성연은 ‘집에 가고 싶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영화는 윤식 딸의 불편한 시선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못 배운 여성 ‘혜옥’의 모습과 자존을 꿈꾸는 여성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질투는 나의 힘’은 남성에 대한 질투가 아닌, 여성 스스로의 ‘자존’을 꿈꾸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페미니즘적인 해석까지 가능하다.
4. 영화와 나
페미니즘적 시선을 거두더라도, 영화의 주제는 역시 ‘주체성’이다. 윤식에게 편입되어 버리는 원상의 질투의 힘은 얼마나 미약하고 왜소한지.
주체적인 원상의 모습을 꿈꾼다. 윤식이 부르는 같잖은 술자리가 아닌, 논문에 온전히 집중하고, 유학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원상. 배신해버린 여성과, 질투심으로 접근한 성연이 아닌, 주체적인 사랑을 하는 원상의 모습을 보고싶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미숙한 존재이다. 질투에 사로잡히고, 혼자서 결정하지 못해 휘둘리고, 타성에 젖은 판단 속에서,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빠진 길에서 자신의 인생 모두를 허비하기도 한다.
완벽히 주체적인 삶이 가능한 것일까. 타성에 젖어 사는 와중에, 15년 만에 장문의 감상문을 써본다.
2025.01.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