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작품을 보지 못하는 엄마를 보았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엄마가 되기 전 미술 전시를 좋아해 자주 미술관을 다녔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걸 즐길 여유가 줄어들어 전시장에도 선뜻 발길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둘째가 돌이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밖을 데리고 나갈 용기가 생긴 주말.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 전시가 문득 보고 싶어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론 뮤익]의 전시가 있었다.
론 뮤익
극사실주의 조각가.
나의 첫째 아들은 처음 마주한 작품
/MASK 2,2002,mixed media/
을 보고 “오 신기해!” 하면서
빠르게 지나친다.
그렇게 휘리릭 쇼츠를 보는 것마냥 여러 작품을 지나치다 해골이 쌓여있는
/MASS,2016-2017,synthetic polymer paint on fiberglass/
를 보며 “오 스켈레톤! 엄마 이거 진짜야? “
나는 황당해서 “아니 넌 이렇게 머리 큰 사람 봤어?”
다시 아들은 “아니 큭큭”
또다시 휘리릭 인파들 사이로 지나가 버린다.
“사진 좀 찍어줄게!”
“아니”
휘리릭.
“이거 만져도 돼?”
“아니, 작품은 만지는 거 아니야”
‘아니야, 안돼’ 지옥에 빠진 지금.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이 두 개의 부정어는 나에게도 독이 되어 엄마로서의 자존감도 낮아진다.
나는 과연 좋은 엄마인가.
‘아니 왜 만지만 안돼? 만지게 하면 어디 덧나나’
‘안돼’라고 말하던 나도 작품은 만지면 안 된다는 말을 해체해 버린다.
(그러다 나중에 같은 미술관 다른 전시에서 [작품을 만져보세요] 안내판이 있어 작품을 만질 수 있게 했다. 만져도 되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걸 보여주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후다닥 전시를 보고서는 론 뮤익이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은 영화를 보러 들어간다. 우리 네 가족 다 들어갔지만 둘째를 안고 있던 나는 둘째의 나가자는 몸부림에 할 수 없이 남편과 첫째 아이를 두고 영상관 밖을 나와버렸다.
첫 돌이 되어 밖으로 데리고 갈 용기가 두려움으로 또다시 바뀌어 버렸다.
돌 전에는 순딩이라고 사람들이 놀라 했는데 돌이 되니 돌변하는 둘째.
차라리 돌 전에 더 돌아다닐걸.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옛말이 생각나는 전시였다.
두 어린아이들이 내 옆에 있으니 온전히 전시를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엄마인 나를 보았다.
엄마로서 좋은 작품, 좋은 것들을 보여주면서 같이 음미하고 싶은데 그만큼 따라오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실망하다가도 애어른 같았던 나를 닮지 않은 내 첫째 아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에 부럽기도 했다.
그래, 그냥 자유롭게 키우자.
너무 일찍 사회화되는 것도 좋지만은 않아.
나는 나 대로, 너는 너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