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앤 마리 <Perfect To Me>
“넌 세상을 너무 힘들게 살아.”라는 말을 가끔, 아니 종종 듣는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도 ‘이게 정말 최선이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나를 볼 때면, 영 틀린 말도 아니다 싶다.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편이지만, 자신에게 엄격한 것만큼 가혹한 기준도 없다.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가장 큰 존재가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꼭 이런 ‘완벽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종류나 정도가 다를 뿐,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완벽해지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물론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삶의 동력이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 쉽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Anne-Marie)가 부른 <Perfect To Me>는 그런 우리들에게 위로이자 구원이 되는 노래다.
지난 4월 발매한 앤 마리의 데뷔앨범 <Speak Your Mind>에 수록된 곡 <Perfect>를 재편집한 곡으로, 곡 제목을 바꿔 11월 초에 다시 발매됐다. 솔직하고 당당한 자기고백으로 꽉꽉 채운 이 노래는 ‘완벽’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특히 ‘외모’와 ‘몸’에 대해 더 완벽해져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동시대의 여성들에게 완벽하지 않은 상태 그 자체가 내게는 ‘완벽’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곡과 가사를 직접 쓰는 앤 마리는 자기가 경험하지 않았던 것을 노래로 만들지 않는다. 말하자면 모든 노래가 곧 자신의 이야기인 셈인데, <Perfect To Me>는 그 정점에 있는 곡이다. 노래의 화자인 앤 마리는 자신의 본래 모습 그대로를 가사에 담았다. 그 안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 뮤지션이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앤 마리가 있다.
가사에서 앤 마리는 뺨에 화장을 하고 싶지 않고, 멋진 옷 보다는 배기팬츠와 같은 편한 옷이 좋다고 말한다. 또, 손톱을 물어뜯거나 생각하지 않고 말을 먼저 내뱉을 때도 있고, 가끔은 이도 닦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노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은 ‘자기 긍정’이다. 앤 마리는 노래를 통해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진짜 나야. 그게 뭐 어때서?” 이러한 자기 긍정은 아래와 같이 후렴구 가사에서도 반복된다.
내 몸의 모든 부분을 사랑해
Love every single part of my body
머리부터 발끝까지
Top to the bottom
난 잡지에 나오는 슈퍼모델이 아니야
I’m not a supermodel from a magazine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I’m okay with not being perfect
그게 나한텐 완벽한 거니까
‘Cause That’s perfect to me
어렸을 때부터 앨러니스 모리셋, 로린 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앨리샤 키스 등 ‘강한 여성’을 노래하는 가수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앤 마리는 자신도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는 가수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이 곡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같은 여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까지 나아간다. 노래 후반부에서 앤 마리는 “화장하기 싫으면 하지 마.”, “집에 가고 싶으면 가도 돼.”, “그만하라고 말해도 돼”라며 여성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행동하기를 당부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이제 네 인생은 네 것”이라고.
노래와 함께 공개된 <Perfect To Me> 뮤직비디오는 곡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뮤직비디오의 첫 장면은 앤 마리가 자신에게 ‘완벽’이란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하는데서 시작한다.
아주 어릴 때는 스포츠에서 이기면 완벽한 날이었고, 10대 때는 최대한 마르면 완벽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남과 다른 게 완벽한 거라고 생각해요.
뮤비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도 담겨 있다. 바비인형 몸매가 완벽한 거라고 주입당하며 자랐다거나,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얼굴과 옷, 머리를 평가한다거나 남들과 다르면 이상하다는 얘길 듣는다던 사람들의 말은 사실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성별과 인종, 연령, 직업, 하물며 갖고 있는 ‘몸’의 형태도 다 다른 이들에게 ‘완벽’의 의미도 그만큼이나 다양하다. 누군가에게 완벽이란 ‘겉모습이 아닌 내면’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나다움’이다. ‘뒤죽박죽인’ 상태가 완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연하게도 정답은 없다. 중요한 건 내 스스로가 ‘완벽’을 어떻게 규정하고 받아들이는가다.
뮤비의 다른 한 편에서는 광고 모델로 변신한 앤 마리가 등장한다. 진한 화장에 노출있는 옷과 화려한 악세사리를 걸쳤던 그는 후반부에서 이 모든 것을 벗어던진다. 몸을 조으고 있던 벨트를 풀고, 붙였던 긴 머리를 떼어내고, 귀걸이와 반지를 빼고, 화장을 지우는 것이다. 그리고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화면을 가만히 응시한다. 앤 마리는 자신의 맨 얼굴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고, 이 모습은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용기로 가닿을 것이다.
사회가 규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을 거부하며 여성들의 “탈코르셋” 운동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에서, 이 노래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흔히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지우는 것으로 대표되는 탈코르셋은 사실 여성을 억압하는 모든 ‘꾸밈노동’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이며, 나아가 ‘나다운’ 모습으로 자유롭게 살겠다는 의지의 실천이기도 하다. 앤 마리는 <Perfect To Me>를 통해 나답게 살기를 선택한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Perfect To Me>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은 하나의 질문으로 끝난다. “당신에게 완벽이란 무엇인가요?” 이 노래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물음이기도 하다.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완벽한’ 완벽을 위해 너무 애쓸 필요는 없다. 그 기준은 어쩌면 내가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 낸 환상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는 ‘잡지에 나오는 슈퍼모델’도 아니니까. 아니, 설령 슈퍼모델이라 할지라도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Perfect To Me / 음악]
발매일: 2018.11.02
노래: 앤 마리
작사/작곡: Anne-Marie Nicholson, Jennifer Decilveo, Levi Lenn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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