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예능 <나 혼자 산다>
불금의 마무리는 침대에 누워 <나혼자산다>를 보는 게 제맛이다. 티비 예능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본방사수하는 프로그램이고, 놓치면 다음날에라도 꼭 챙겨 보는 편이다. 물론 연예인들의 화려한 집을 볼 때마다 ‘내 방은 저 집 화장실보다도 작네…’라며 가끔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1인 가구로서 공감되는 내용도 많고 무엇보다 요즘엔 멤버들의 케미가 좋아서 그 재미로 본다.
지난 9일 밤에는 지난주에 이어 가족들이 있는 캐나다집에 방문한 헨리 이야기가 방송됐다. 12년 만에 만난 바이올린 선생님과 오랜 친구들, 이웃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는 더없이 유쾌했고, 헨리 아빠가 헨리의 생일을 함께 보내는 게 무척 오랜만이라며, 정말 행복한 날이라고 눈물을 글썽였을 땐 덩달아 울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감동의 순간마다 비집고 들어오는 방해물이 있었다. 멤버들이 헨리 친구들의 ‘얼굴’을 두고 나이 들어 보인다며 “아빠 친구 아니냐”, “띠동갑 아니냐”며 조롱하고 깔깔대는 장면이 몇 차례나 반복됐던 것이다.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아래 장면들을 읽어보자.
#1. 헨리 친구들이 들어오는 장면
나래: 누구에요? 아버지 친구에요?
헨리: 아니 제 친구들이요.
현무: 아버지 친구라뇨.
기안: 너랑 동갑이야?
헨리: 네.
나래: 아니, 아버지 친구인 줄 알고.
헨리: 아니에요.
기안: 왜 이렇게 삭았어 근데?
현무: 삭았다니요. (웃음) 외국 사람들이 원래 자기 나이보다 들어보여요.
기안: 어우, 그래요?
헨리: 둘 다 저랑 동갑이에요.
현무: 띠동갑 아니고?
나래: 53년생 아니시고? (웃음)
헨리: 저랑 중학교부터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에요.
헨리의 집을 방문한 첫 번째 손님은 중학교부터 함께 다닌 헨리의 오랜 친구들이었다. 이 친구들이 들어오는 장면에서 박나래는 “아버지 친구인 줄 알았다”고 말하고, 심지어 기안84는 “왜 이렇게 삭았”냐고 묻는다. 참고로 ‘삭다’의 본래 뜻은 ‘물건이 오래되어 본바탕이 변하여 썩은 것처럼 되다’로, 나이 들어 보이는 경우에 쓰는 ‘얼굴이 삭았다’는 당.연.히.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특히 처음 보는 남의 친구를 두고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전현무는 처음에 다른 멤버들의 발언을 제지하는 듯 하더니, 본인이 한 술 더 떠 “띠동갑 아니냐”고 되묻는다. 다음 장면을 보자. 이건 시작에 불과하니까.
#2. 이웃집 가족들이 들어오는 장면.
헨리: 우리 옆집 사는 친구에요.
현무: 저 머리 없으신 분이요?
나래: 아버지 친구 아니고요?
헨리: 아니에요.
(일동 웃음터짐)
현무: 누가, 누가 니 친구야?
나래: 잠깐만, 이게 내가 오해하는거예요?
기안: 다 친구 먹어? 다 친구 먹어?
현무: 나도 당황스러워. 위아더월드야 뭐야. 어떻게 된거야.
헨리: 설명할게요. 앞에는 엄마, 친구엄마. 뒤에는 친구 아빠. 그 뒤에는 이제 제 친구.
현무: 에이, 거짓말. 뒤에 있는 분이? 바이올린 선생님 아니구?
기안: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헨리: 아니에요.
나래: 나는 아버지가 친구인 줄 알고.
친구들에 이어 헨리의 옆집 가족들이 들어오는 장면이다. 박나래의 ‘아버지 친구’ 드립은 여기서도 계속되고, 전현무는 도대체 ‘누가 니 친구’인지를 추궁한다. 헨리가 친구를 소개하자 다들 입을 모아 ‘바이올린 선생님’인 줄 알았단다. 이만하면 그만할 때도 됐다싶건만,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3. 손님들이 서로 인사하는 장면
현무: 이렇게 섞여 있으니까 진짜 누가 헨리 친구인지 모르겠다.
나래: 그러니까.
헨리: 아니 좀 어려보이는 친구들은 제 친구고.
현무: 그게 어렵단 말입니다.
나래: 그게 어려워요.
#4. 헨리 친구가 아버지 요리를 돕는 장면
현무: 이 친구가 친구였죠? 그죠?
나래: 아빠 친구 같은데.
기안: (웃음)
헨리: 아니 아빠 친구 말고 제 친구.
나래: 아, 아빠 친구 아니고.
지난 러시아월드컵 때 한국과 독일의 경기 결과로 멕시코가 16강에 진출하자 멕시코 사람들이 고맙다며 SNS에 눈을 찢는 제스처 사진들을 업로드했다. 이를 두고 ‘동양인 비하’, ‘인종차별’이라며 논란이 있었다. 과연 그 때와 무엇이 다른가? 멤버들은 무려 네 장면에 걸쳐 상당 시간을 할애해 헨리 친구들의 ‘얼굴’을 두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헨리는 연신 당황해하며 자기 친구가 맞다고 대답하느라 바빴다. 대체 이 의미 없고 불편한 대화들을 왜 듣고 있어야 하나.
이런 장면들을 들어내기는커녕 웃음 포인트랍시고 편집한 제작진도 문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 1위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라니, 다들 감수성 훈련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다. 언제까지 ‘얼평’과 ‘비하’에 기대어 웃음을 짜내는 구시대의 게으름에 빠져있을건가. 이건 ‘개그’가 아니라 ‘무지’하고 ‘무례’한 것이다. 부디 부끄러운 줄 알고 미안해하길 바란다. 삭은건 다름 아닌 당신들의 그 낡은 개그코드다. 이제 낡은 시대는 좀 끝내자.
[나 혼자 산다 / 예능]
날짜: 2018.11.09.(267회)
출연: 기안84, 박나래, 이시언, 전현무, 한혜진, 헨리 등
제작: 기획-김구산, 연출-황지영
방송: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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