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아니면 창가라는 여자
편하신 데 앉으세요.
라는 말을 들으면 난 늘 구석아니면 창가다. 에어컨바람이 잘 드는 곳, 따뜻한 곳은 내 체크리스트엔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함께일 때는 구석, 혼자일 때는 창가를 선택한다.(바뀐 것 같다고? 단지 여러분의 기분 탓일 뿐) 그렇다. 난 혼자일 때 용감해 지고 함께면 숨어버린다. 그런 내가 뜬금없이, 계획없이, 애정없이 제주도로 향했다.
'혼저옵서예'라고 말해주는 듯한 동그란 무지개를 보았다. 이런 경우에 나는 대부분 '내 여행이 얼마나 좋을라고 이러나?'하는 합리화를 하곤 한다.
이번에는 동쪽에서 2박 3일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1년 전 1월, 친한 언니와 함께 서쪽에서 2박을 했으니 이번엔 반대로 가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첫 번째 행선지로 월정리나 함덕 보다는 왠지 모르게 김녕이 끌렸다. 혼자인 내가 왔는지 갔는지 모르게 다녀올 수 있는 곳 같아서 말이다.
그나저나 난 가을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는데 왜 이리 더운 것일까? 이렇게 여행지에 대한 애정의 부족은 고스란히 여행 중의 불편으로 되돌아온다. 난 미련하게더 더운 옷을 껴입은 채, 하루종일 관광지를 활보하였다. 비자림은 숲길이었다. 예상 외로 오감 중에서 시각이 아니라 후각을 많이 사용했던 곳. 피톤치드를 죄다 흡수하겠다는 일념하에 강아지마냥 킁킁거리며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딱 두 곳만 둘러보곤 숙소로 향했다. 910번을 타고 또 다시 701번을 타고 도착한 두 밤 머무를 이 곳은 찬타 앤 제이 하우스. 그 곳을 생각하면 '아늑'과 '한적'이란 두 단어가 떠오른다. 누구도 신경 쓸 필요없고 누구도 날 신경쓰지 않는 곳. 혼자가 아니었다면 마당에 있던 자전거를 씽씽타고 달렸을지도 모르고 밤 늦게까지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을지도 모를 장소였지만, 그 곳에서 나는 온전히 혼자였다.
한 밤을 자고 나는 의무감에 성산항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승선 신고서를 작성하며 나는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가는 게 맞을까 해서 말이다. 이성을 찾고 내가 우도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보았다. 하나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갈지 몰라서 또 하나는 우도보러 제주도 간다고 엄마에게 말했기 때문에. 둘 다 급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한 시간 남짓 버스를 갈아타고 여기 온 게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배에 올랐다.
타자마자 내렸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리 좋아하는 바다를 보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즐겁지도 않았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했다. 늘 여행을 하면서 진짜 이 장소가 좋은건지 내가 흥이 많아 그저 모든 장소를 좋아하는 건지 궁금했었는데 다행히(?) 전자였다.
우도에서는 개인버스투어로 돌아다녔다. 5000원을 주고 티켓을 사면 하루종일 5군데의 유명한 관광지를 돌고 도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 중에서 나는 우도봉, 검멀레해변, 그리고 사빈백사해수욕장까지 다녀왔다.
삼삼오오모여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을 뒤로한 채, 우도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고로 어제는 더웠다. 내가 우도를 오면서 왜 이런 차림으로 집을 나섰는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없었나 봉가.
숨을 불규칙적으로 내쉬며 우도봉의 정상을 향해 걸었다. 푸름의 조화가 아름답지 아니한가?
올라가는 길에는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풍경이 내려가는 길에는 눈에 쏙 들어왔다. 분명 풍경은 아까도 이 자리에 그대로 있었을텐데 내게는 여유가 생긴 후부터 제대로 보였다. 늘 그랬다. 마음의 여유란 상당히 큰 존재이다. 여유가 없으면 모든 상황, 모든 대상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제 아무리 좋은 것들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제일 중요한 건 내 마음의 여러 방 중 한 방을 비워두는 일이다.
의무감에 온 우도이니 의무감에 땅콩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동일함을 거부한다는 우도왕자아이스크림!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는 와중에 과자이름을 생각했다. 와플, 구운양파, 미쯔, 바나나킥! 내가 과자를 좋아하긴 하는가 보다. 정답률 100%인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성상항으로 향하는 우도발 배에 탑승하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사빈백사해수욕장에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본 일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를 받았다. 하얀 모래같던 홍조단괴 조각들을 아무생각없이 손으로 움켜쥐었는데 일부러 고른 것 마냥 개성강한 녀석들이 잡혔다.
따라오려는 우도를 뒤로하고 성산항에 가까워 지는 배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 자의 방법으로 순간을 느끼고 있었다. 똑똑한 갈매기들은 소년에겐 새우깡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나 보다. 자신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소년에게 갈매기들은 눈길은 커녕 그 흔한 날개짓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삼시세끼는 커녕 식사 시간이 한 참 지났을 무렵, 배꼽시계의 경고음에 뭐라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숙소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토끼섬이 있는 해변가가 나온다는 지도정보를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짧고 바쁜 시간에 등 뒤로 오늘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해를 보냈으며 이름모를 꽃과 인사도 나눴다. 순간, 혼자라서 쓸쓸했고 무서웠다. 나는 곧 죽어도 독신으로 살 팔자는 아닌가 보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와 숙소 근처의 유일한 카페에 왔다. 요즘 나답지 않게 독서평민(아예 독서를 하지 않던 독서노비생활에서 벗어남을 가르키는 서툰 나만의 표현)이 되어 열심히 책 탐험 중이다. 그래서 이 카페가 더욱 반가웠다. 너무 부드러웠던 아이스카페라떼를 마시며 제주잡지도 보고 사진집도 보며 조용하게 하루의 마침표를 찍었다.
마지막 날, 떠나는 날, 눈은 일찍 떴지만 몸은 그대로 꼼짝마라 상태! 체크아웃 시간을 1분 남겨둔 채, 진돗개들과의 일방적인 작별인사를 끝내고 숙소를 나섰다.
마지막 행선지는 옆 마을인 종달리, 소심한 책방에 들르려던 계획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밥부터 먹자는 생각에 근처 안나의 촐라체로 향했다. 밥을 먹으며 시간 계산을 하는데 '아뿔싸'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내겐 소심한 책방에 들를 시간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잠깐이라도 가볼까 했더니 두 번째 '아뿔싸' 점심시간이네! 그래서당연스레 건너뛰고 공항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예쁜 종달리에 밥만 먹으러 온 것이었을 뿐.
마지막으로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여행지에서 학교가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일시정시를 하게 된다. 내가 본 제주도의 모든 초등학교는 잔디운동장에 아주 작고 귀여웠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잔잔한 학교분위기 이런 곳에서의 삶을 잠시나마 상상해보았다.
제주에서의 3일이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지나갔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느낌이다. 몸 속에서 나갈 생각을 안한던 불순한 알갱이들은 이제 안녕. 개인적으로 나와 제주도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제주도에 묘하게 끌린다. 선선한 날씨에 완벽한 옷 매무새로 다시 오고 싶다. 그 때는 내 옆에 기댈 어깨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