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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Mar 01. 2024

전 직장 동료에게서 과거의 나를 보다

나는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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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그녀는 작년에 논문을 쓰면서 나의 논문을 봤다고 했다. 올해 나온 타 기관 책에서도 나의 논문을 인용했다며 알려주었다.

그 동안 내가 쓴 논문들을 상기 시켜주었다. 그렇다. 나는 연구소에서 논문을 꼬박꼬박 써냈다.

학위를 따면서도 직장을 다니면서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이 일년에 하나씩 논문을 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여러 학술지에는 내 논문들이 남아있다.


한국연구재단 등재가 되어있는 학술지만이 인정을 받는다. 그 안에서 또 등급이 나눠진다. 우수학술지가 더 높게 쳐준다.

그 학술회가 학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도 굉장히 중요하다. 때문에 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술지일수록 논문의 위상은 높아진다.

학회비, 논문 심사비, 게제비까지 백여만원을 내가면서 등재해야한다.


그렇게 내가 돈을 줘가면서까지 논문을 등재하려고 했던 것은 오롯이 자기만족 때문이었다.

정말 재밌었기 때문에 나의 전공에 몰입할 수 있었다.

논문 쓸 거리가 샘 솟 듯이 솟아났다. 물론 심사평을 볼 때 마다 반발심이 욱욱하고 올라왔지만

그래도 내가 수정해야 게재 할 수 있지 하면서 꾹꾹 참고 수정했다.

끔은 인신공격 같은 심사평도 있는데, 누군지 밝혀내서 악담을 똑같이 해주고 싶다.

하지만 학계에서 알만한 사람이니 그러려니하고 참는다.



2년 동안 나는 없어졌지만 내 글이 남아서 아직도 인용되고 있다.

직장동료 샘은 나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10년동안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냐고 물었다. 나의 글은 남아서 있다고. 여전히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고 했다. 글을 그렇게 뚝딱 써내는 것도 정말 재능이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없다고.

어떤 분야에서 10년을 일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 나의 분야에서 나의 이름을 학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조금씩 내가 누군지 사람들이 궁금했을 무렵 뛰쳐나왔다.


그녀의 말은 나에게 너무 감사하고 뿌듯한 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한 나에게는 참으로 마음아픈 말이었다.

 

그녀에게 솔직한 나의 심정을 전했다.

일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고, 작년에는 어떻게 몸이 아팠으며 그리고 올해는 무슨일을 시작했는지.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었다. 여전히 내가 하는일은 그녀에게 너무도 낯선 일이며,

연구소에서 전공분야를 파는 연구원인 그녀에게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다. 한마디로 벙져서 내 말을 들었다.

그녀의 표정이 내게 말을 해주고 있었다. 계속 중얼 댔다. 다른 세상이라고. 나랑 같은 또래가 아닌 것같다고 했다.


쐐기를 박는 말을 했다.

연구소에서 나와 새로운 일을 다양하게 많이 하다보니까 시야가 너무 커져버렸다고.

처음부터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밖에 나와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한 이상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같다고했다.


정말 진지하게 작년 말부터 생각했다. 다시 연구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인지. 나는 공부를하고 논문을 써내고 싶은지.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더이상 그런 열정이 생기지 않았다. 나의 커리어를 내려 놓는 것이 어려웠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예전만큼 몰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밖에서 연구가 아닌, 논문의 글이 아닌

람사는 현생에서 부딪히니 그 것들이 너무나 좁게 느껴졌다. 갑갑했다. 다시 내가 연구자가 된다고?

예전처럼 그렇게 좁고 깊게 전문가의 길을 걷는다면 나는 행복할까?질문한 결과 아니었다.



작년 말에는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을까, 나에게는 더 이상의 재능이 없는건가. 낙담하고 우울했다.

그러나 올해 달라진 것은 일어나서 뭐라도 배워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독학도 해보고 강의도 들으면서 어떤 건 나에게 맞고 어떤 건 나에게 안 맞는지 테스트 중이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 일이 10여년 동안 해온 연구의 길과는 굉장히 다르다.



나중에 헤어질 쯤에 그녀는 어떤 일을 하던 응원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꼭 한번 연구소에 오라고 했다. 나를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 말은 진심으로 들렸다. 내가 뭘하고 대체 왜저렇게 됐는지 이해는 안되지만

나를 응원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어디선가는 팀장급 이상의 직위를 달고 일해야하는 나이가 됐다.

그러나 나는 10여년간의 커리어를 내려놓고 또 다른 나를 찾아서 나섰다.

아주 밑바닥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신생아가 된 기분이다.

엄마는 내 커리어를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에 너무도 못마땅해 한다.

엄마와 통화 중에 오늘 동료연구원 선생님을 만난다고하니 한숨부터 쉬었다.

굳이 나가야하냐고. 가서 못할 말은 하지 말라고.

대체 못할 말은 하지 말라는게 무슨 말이지?

나는 엄마의 묘한 뤼앙스를 읽었지만 모른척했다.


나는 당당하다. 내가 벌어 내가 학위를 땄고, 내가 연구자길을 선택했고

그리고 내가 박차고 나왔으며, 나의 의지로 지금의 일도 시작했다.

엄마의 뤼앙스에 기분이 좋지 않지만 내 삶은 내가 사는 것이니 좀 더 떳떳해지기로 했다.



나는 나의 삶을 응원한다. 지금 시작해서 10년 지나면 난 또 전문가가 되어 있겠지.

뭐든 처음이 어렵다. 너는 지금 스타트 라인에서 나이 타령을 할 때가 아니다. 시작에는 나이가 없다.

내 자신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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