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다시 돌아가 보고 싶은 시절이 있다. 특정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은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행복한 시간을 다시 살고 싶어서 아니면 이번에는 다르게 살아봐야지 하는 아쉬움 때문에.
되돌아가 보고 싶은 시절은 수없이 많다. 물 만난 물고기 같았던 대학교 시절, 내가 이렇게 적극적인 인간이었던가 싶었던 재작년 미국 생활 기간, 좀 더 가벼운 20대로 살아보고 싶은 회사원 시절..
반면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언제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딱 '그때'를 꼽을 것이다. 힘들기도 힘들었을뿐더러 다시 돌아간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그 '그때'는 입시와 열등감에 절어있던 고등학교 시절도, 줄곧 야근을 하면서 득도를 했던 신입사원 시절도 아닌... 첫째 아이 신생아 시절이다.
십여 년 전, 결혼 2년 차에 출산 계절까지 맞춰 계획했던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 기간 내내 언제든 뜀박질도 할 수 있을 것처럼 지냈다. 태동이 신기해서 인간의 임신 기간이 2년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초산이라 진통 시간은 좀 길었지만 나름 편안하게 아기를 만났다. (그것도 한국에서는 드문 가정분만으로) 출산 후 몸 상태도 좋으니 아기 낳는 건 열 번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바라던 대로 진행된 건 딱 여기까지였다.
모유 수유는 책에서 말하듯이 수월하지 않았다. 바른 자세로 수유를 해도 처음 해보는 자세가 영 힘들었다. 앉아서 수유할 때는 계속 고개를 숙인 상태라 멀미가 났다. 아기가 양껏 먹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잘 먹다가 왜 갑자기 우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아기가 오래 자느라 수유 간격이 길어지면 가슴이 무섭게 불었다. 젖몸살까지는 아니었지만 유관이 자주 막혀서 전문가 선생님 도움도 받았다. 몸조리를 해야 한다는데 손 관절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몸의 변화와 은근히 졸리고 피곤한 느낌, 익숙하지 않은 자세, 그 와중에 산후 몸조리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모두 스트레스였다. 유모가 24시간 아기를 전담하지 않는 한 몸조리라는 게 현실에서 가능할까 싶었다.
어떤 때는 아기가 왜 그리 우는지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걱정스러운 마음보다 왜 우는지 답답하고 울음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팔도 아파 죽겠는데 기약 없이 안고 달래는 것도 답답했다. 첫 6개월 정도는 아기가 예뻐 보일 때보다 부담스러울 때가 더 많았다. 귀한 아기를 두고 시끄럽다, 힘들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이니 더 답답했다.
아기가 밤에 자주 깨는 것도 고역이었다. 밤낮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밤에도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서 통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살면서 매일 두세 시간에 한 번씩 누가 깨우는 경험을 해 본 적 있는가. (신기한 건 항상 기절한 듯 자느라 아무 소리도 못 듣던 내가 아기가 엥 하는 작은 소리에 바로 깼다는 사실.) 뒤집기를 시작하면서는 자다가 잘 안 뒤집힌다며 짜증 내고 우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다가 뒤집기가 웬 말인가. 잘 안되면 그냥 자면 될 것을. (내가 도와줄 수도 없는데 왜 자고 있는 나를 깨우냐고!)
초반에는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계셔서 잠깐씩 숨통이 트였지만 결국 낮에도 밤에도 아기 수발을 드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남편이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는 상황이었으니 더더욱. (남편이 매일 있었던들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는 의문이지만) 가까이 사는 엄마가 오셔서 도와주실 수 있는 것도 주로 '급한' 살림이었다. (살림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 시절엔 진심으로 살림을(살림만) 하고 싶었다.) 급한 것만 정리하다 보니 좁은 집은 계속 늘어나는 신생아 용품으로 늘 어수선했다.
육아는 그때까지 내가 경험한 '힘든 상황'과는 차원이 달랐다. 육아가 아닌 세상에선 적어도 신체의 자유는 있었다. 신생아를 전담해서 키워보면 안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기본권인지.
육아가 아닌 세상에선 누구 한 사람 때문에 힘들면 그지 같은 인간이라고 욕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기는 나를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것도, 인간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 아기 때문에 힘든 건 맞는데 나쁘다고 할 수 없으니 그냥 참기만 해야 하는 상황. 악 쓰듯이 우는 아기를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니 더 미칠 듯이 화가 났다. (인내심의 한계에 이르러서는 기어이 화가 분출됐다.)
신생아 육아는 육체노동뿐 아니라 감정 노동에도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아기가 예쁜 것과는 별개였다. 소중하고 감사한 아기이니 화내면 안 된다는 강박, 소심한(?) 응징도 못 하는 상황에 억울하기까지 했다. 언제까지 이대로 살아야 하는지 기약도 없으니 더 암담했다. 아기는 나를 힘들게 하는 얼굴 없는 그림자와 그나마 그런 생활을 버티게 하는 귀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잘 나가는 남들에 비해 자신이 초라해져서 힘들었다고도 하던데 난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밥해 먹고 애 보면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눈 앞에 닥친 과제였으니까.
'말 다운 말'이 그리워 한두 마디라도 할 수 있는 택배 아저씨가 그렇게 반가웠고, 인터넷으로 문의할 수 있는 일도 굳이 전화를 걸어 남과 '대화'라는 걸 하던 시절. 식탁이나 싱크대 앞에 서서 반찬 두세 가지로 최대한 빨리 끼니를 때우던 시절. (그것도 한 번에 다 먹을 수나 있으면 다행) 아기가 장소 낯가림이 심해서 집 밖을 나서는 게 두려웠던 시절. 외출을 해도 언제나 큰 가방에 한 짐 가득하던 시절. 내 기억에 그 시절은 그렇게 외롭고 어수선하고 절박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드라마에서 세상 모르게 자거나 가만히 눈만 깜빡이는 아기, 마냥 행복하게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어디 있냐며 분노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처음 아기를 낳아 키우는 초보 엄마들이 모두 나처럼 힘들지는 않을 거다. 여러 상황에 따라 다르니까. (한 성질 했던 내 성격 때문이었을 수도..)
조만간 둘째 아이 이야기도 쓰겠지만.. 내가 둘째 같은 아기 하나만 키웠다면 아마 태교의 힘, 육아 방식 운운하며 엄마가 잘하면 아기도 편하게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최근 아는 분이 출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옛 기억이 떠올라 그 시절 이야기를 길게 풀어봤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 묻어둔 이야기라 그런가 길지도 않은 글을 쓰는 데 며칠이나 걸렸다. 덩달아 그때 느낌이 되살아나서 살짝 우울감도..)
지금도 밤낮없이 아기 키우느라 고생하고 있을 많은 아기 엄마들에게 마음 깊이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얘기해주고 싶다. 잘 하든 못 하든 멀쩡하게 살아남는 것만도 장하다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시간도 어느 순간 슬그머니 끝나기 마련이라고. (물론 다른 버전으로 고난이 찾아오기는 하지만 적어도 신체의 자유는 어느 정도 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