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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릿한 달팽이 Sep 04. 2023

잊히지 않는 선생님의 눈빛 1

1989년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아마도 30대였던 키 작은 남자 도덕 선생님은 우리에게 조금 독특한 주문을 하셨다. 반장 구령에 맞춰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건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올 때 각자 편하게 인사하자고.


나는 도덕이 정말 좋았다. 칸트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같은 정답 없는 주제들을 얘기하는 것이 어찌나 재밌던지. 키가 작아 맨 앞자리에 앉으니 선생님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쪼끄만 애가 맨 앞에 앉아서 눈 반짝반짝하면서 듣는다'라고 하셨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89년 봄. 전교조라는 학교 선생님들 노조가 만들어졌으나 여기에 가입한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해직됐다. 당시 내가 어찌 알았는지 심상찮은 분위기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루는 도덕 수업 중에 무슨 주제가 나왔다. 선생님이 그 일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그 얘기구나 하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용기가 없어' 전교조에 가입하지 '못' 했거나 막판에 탈퇴하신 것 같았다. 칠판을 보고 필기하는 시간, 선생님은 맨 앞 내 책상 발 놓는 가로봉을 발로 쓸어내리며 나를 바라보셨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답답하지만 할 수 없는 눈빛으로. 까만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던 선생님의 눈빛, 그리고 '왜요?' 하는 눈빛으로 힐끗거릴 수밖에 없었던 나.



당시 전교조에 대해, 현재 전교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소수여도 폭력 교사, 촌지 교사들이 버젓이 있던 시절, 좋은 선생님이 슬픈 얼굴을 하고 계시는 걸 보자니 내 마음도 서늘했다.


서이초 선생님 추모제가 열리는 오늘 9월 4일. 교육부가 연차나 병가를 쓰는 교사를 징계하겠다는 뉴스를 보자 30여 년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설마 하던 일이 정말로 실현되는 요즘이라 계속 마음이 쓰인다. (교육부는 교사를 넘어 개별적이고 '정상적인' 현장체험학습이 아니면 미인정 결석으로 처리하겠다며 학부모들 처벌까지 운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 아니 언제라도 부디 아이들이 슬프고 무기력한 선생님의 눈빛을 보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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