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증상(?)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언제부턴가 조용히 나타나는 건 머리와 옷에 신경 쓰는 것.
첫째는 집을 나서기 전에 한동안 거울 앞에서 손으로 탁탁 치듯이 머리 모양을 잡는다. 머리가 맘에 안 든다는 둥, 이쪽이 이상하다는 둥 짜증 내면서. 헤어젤이나 스프레이로 머리 모양을 고정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손으로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구나 짧은 남자 머리가 거기서 거기인 것을.
내가 "바람 한 번 불면 똑같아지거든." 해도 아니란다. 거울 앞에서 유난히 오래 머리를 털고 (?) 있을 땐 한 마디 덧붙인다. "아이야.. 사람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한테 관심이 없어." 아이는 들은 척도 안 한다.
나도 안다. 내가 아무리 얘기한들 귓등으로도 안 들릴 거라는걸. 나도 중 2,3 때 앞머리 동그랗게 마는 데 엄청 집착했다. 그루프(?)로 한참 말아 땡글땡글 솟은 앞머리는 내 자존심이었다. 비 오거나 안개 낀 날은 앞머리가 쳐져서 너무너무 싫었다.
한 번은 내 앞머리를 보면서 이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너무 동그랗게 말린 것보다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앞머리가 더 예쁘다고. 하지만 역시나 내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그 시절 사진을 다시 보니.. 앞머리가 가관이다. 그리고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동그랗기만 한 내 앞머리. 그리고 깨닫는다. 그 시절 멋쟁이라고 했던 아이들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꾸안꾸 스타일이었다는 걸.
앞머리는 정확한 반원, 돌돌 말아 올린 청바지는 덤
아이는 작년부터 내가 사주던 스타일과 다른 자기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샛노란 색 반팔 티셔츠, 얼룩덜룩한 후드티, 보라색 맨투맨 티, 오래 못 입을 것 같은 티.. 내가 보기엔 갸우뚱할 때가 있지만 가격만 과하지 않으면 그대로 사게 한다. 저건 좀 아닌데 싶어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해도 사겠다고 하면 그대로 사준다.
대학교 3학년 때 만난 남편은 그때까지도 엄마가 사주는 옷을 입고 다녔다. 헐. 마마 보이어서는 아니었다. 옷에 별 관심이 없는 데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골라 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거다.
조금씩 자기 옷 사는 걸 연습시켰다. 가끔 같이 안 골라준다며 서운하다고 할 때도 있었는데 난 선을 그었다. 나이 먹은 성인이 자기 입을 옷은 자기가 사야 한다고. 덕분에 지금은 남편도 혼자 옷 고르는 데에 많이 익숙해졌다.
아이들이 특히나 남자인 첫째는 엄마가 사주는 대로 입다가 나중에 스스로 옷을 고를 때 난감해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내 눈엔 별로여도, 오래 못 갈 것 같아도 직접 고르고 겪어보게 한다. 실패가 있어야 얻는 게 있는 법. 그리고 개중엔 '당해봐라' 했던 내 바람(?)과 달리 생각보다 괜찮아서 잘 입고 다니는 옷도 있다. 아이가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나를 뛰어넘으면 좋겠다.
언젠가부터 마스크도 까만 면 마스크만 쓰고, 지금 한겨울에도 목 짧은 여름 양말만 신고, 자기가 관리하겠다며 산 흰색 운동화를 회색으로 만들어 신고 다니는 아이. 한 마디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웬만해선 그냥 고개를 돌려버린다. 내가 그러고 다니는 건 아니니까 하면서.
굳이 이런 글을 남기는 건 앞으로도 변치 말자는 내 다짐일 수도 있겠다. '사춘기에 부모의 사랑은 지켜봐 주는 것'이라는 법륜스님 말씀을 되새겨본다. 지켜보기가 힘들 땐..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자. (그리고 몰래 몰래 사진도 찍어두자. 나중에 굴욕 사진으로 보여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