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등 6학년 때부터 첫째 아이는 주말에 친구들과 2,30분 자전거를 타고 큰 공원에 가서 라면을 사 먹고 돌아오는 코스로 하루 반나절을 보냈다. 가끔은 동네에서 농구, 축구, 배드민턴을 하면서 한참을 놀고 오기도 했다. 그럴 때 늘 사 먹는 건 라면, 떡볶이 같은 분식이었다.
지난여름을 기점으로 노는 친구들 한 둘이 바뀌더니 점심 메뉴도 달라졌다. 훨씬 비싼 부대찌개나 즉석 떡볶이를 사 먹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라면을 안 좋아한다나.
10월 어느 주말. 아이는 친구들과 점심 먹고 자전거를 타겠다며 1시쯤 나갔다. 5시쯤 전화가 왔다. 애들이랑 저녁에 갈비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중학생들끼리 고깃집에서 갈비를 사 먹는다고? 전혀 생각 못 한 상황이라 잠시 당황했다. 아이가 안 되냐고 묻는데 딱히 안 될 이유도 없어서 "너 돈 많나 보다?" 하고 그럼 그러라고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갈비는 13,000원 밖에(?!) 안 하고, 무한리필이란다.)
나는 집에 있는 둘째랑 둘이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8시쯤 집에 들어왔다. 첫째가 친구들이랑 갈비를 먹고 온다고 하니 남편은 "중학생들끼리 갈빗집에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하며 탐탁지 않아하는 거다. 나는 가끔 이렇게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을 들으면 사춘기 아이에 빙의가 된다. "왜? 그건 왜 안 좋아 보이는데?" 하면서 하나씩 물으면 남편도 결국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 수순.
그러고 나니 시간은 8시 반.
밖이 깜깜하니 슬슬 불안해졌다. 저녁은 벌써 다 먹었을 텐데 왜 이렇게 안 오지?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하면서. 전화를 했더니 핸드폰은 방전 상태. 연락이 안 되니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두운데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집에서 나간 지 여섯 시간이 넘었는데 저녁 먹고 가도 되냐는 자기 필요한 말만 하고. 이렇게 늦어지면 중간에 연락을 해야지 이건 너무하잖아!'
문득 같이 있을 친구 한 명이 카톡 친구로 추천되어 있던 게 생각났다. 친구 카톡으로 전화를 했다. 나인 줄 알고 아이가 바로 받았다.
"어, 엄마..."
나는 화를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돌았냐?"
아이는 지금 계산하고 있다며 금방 간다고.
남편한테 왜 애들끼리 고깃집 가는 게 안 좋아 보이냐고 아이를 방어(?) 하더니 금세 아이한테 분노하다니. (나도 아이들 어릴 땐 이런 캐주얼(?)한 말은 하지 않았다.)
계속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아이가 돌아왔다. 거의 밤 9시가 다 돼서. 아이가 쭈뼛거리면서 말했다. "우리가.. 고기를 처음 구워봐서.. 시간이 많이 걸렸어." 푸하하하. 왜 이렇게 웃긴 거냐. 귀여운 것들. 화난 마음은 금세 풀리고 그렇게 싱겁게 마무리된 이야기.
고깃집에서 항상 어른들이 구워주는 고기만 먹다가 이젠 너도 직접 구워 먹을 줄 알게 됐구나. (이후 친구 생일이라고 친구들이랑 그 고깃집에 한 번 더 갔다 왔다. 두 번째 갔을 땐 좀 익숙하게 구웠으려나. 생일엔 생일인 사람이 내는 거라며 친구가 계산하는 것도 아이는 처음 경험했다.)
내가 직접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가 할 줄 아는 게 하나씩 생기는 것이 신기하다. 세상에서 스스로 많이 배우길.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길.
나중에 고깃집에 같이 가게 되면 아이가 구워주는 고기 좀 먹어봐야겠다. 핏물이 고여있거나 까맣게 태우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집게는 아이 손에. 참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