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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Nov 17. 2019

이탈리아에서 필요한 건 눈맞춤



사무소에 출근한 지 한 달 반 정도 되었을 때다. 그날따라 배는 왜 이렇게 안 오는지 아무래도 지각할 것 같았다. 늦게 온 배에 몸을 싣고 배가 빨리 달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배를 타고 20분 정도 지나 산마르코 광장 근처에서 내렸다. 빠른 걸음으로 사무소까지 걸어갔다. 지각의 위기를 겨우 모면하고 급하게 자리에 앉으며 컴퓨터를 켰다. 숨을 고르며 칸막이 넘어 동료들에게 "굿모닝(Good Morning)"하고 인사를 했다. 회의 전까지 이메일도 확인하고 자료도 준비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했다. 하룻밤 사이 쌓여있던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회의에 다녀왔다. 회의에 다녀오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렇게 오전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점심시간이 되어 칸막이 넘어 동료 R에게 물었다. "오늘 점심  먹을 거야?" 대답이 없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자리로 갔더니 화가  얼굴이다.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지 묻자 R 머뭇거리다가 내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오늘   무시했어?" "내가 언제?" "아까 그냥 말로만 인사했잖아.""아까 너무 급해서. 미안." "인사를  때는 눈을 보고 인사해야 하는 거야." "무시한  아니야, 정말로. 우리나라에서는 눈을  안마 주치거든. 습관이 되었나 . 미안해."  친구는 그제야 굳은 얼굴을 조금 풀었다. 본인을 무시했다고 느꼈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는 예의 바르게 눈을 마주치는 방법을 연구하고 연습했다. 아침에 사무실에서 부장님과 눈을 마주치고 나면 "안녕하세요."와 함께 재빨리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인사 후에는 잠깐의 눈 맞춤이 내가 다니던 회사의 아침 인사의 전부였다. 다른 분들께도 같은 방법으로 인사를 한 뒤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어떤 날에는 집중하고 계신 일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고개가 올라올 때 상사와 눈을 잠깐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인사할 때는 상사와 눈을 맞추는 것보다,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행동을 상사가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일이 터져 급박한 상황에는 모니터만 바라보며 고개를 숙인 채 목소리로 인사할 때도 있지 않은가. 이게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습관이었다.


내가 잘 몰랐다고 하자 친구는 몇 가지 말을 덧붙였다. "네가 인사를 하면 상대방도 눈을 바라보면서 인사할 거야. 그리고 미소를 지으면 돼. 간단하지만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지." 생각해보면 이 친구는 매일 아침 칸막이를 지나서 걸어와 한 명 한 명에게 인사했다. 말해주지 않으면 몰랐을 텐데. 얘기해준 친구가 참 고마웠다. 나는 당장 다음날부터 새로운 인사 방법을 시작했다. 출근해서 칸막이를 두 번 두드렸다. 친구와 눈을 마주쳤다. "본 죠르노(Bonjourno)!" 그러자 라즈반도 웃으며 인사했다. 그 뒤로는 인사할 때는 반드시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환하게 웃는다. 그럼 정말이지 상대방도 환하게 웃어주더라. 신기하게도 기분이 좋아진다.


와인을 마실 때 제일 중요한 것도 건배할 때 눈을 마주치는 것이다. 인사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와인잔을 부딪힐 때도 상대방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나는 이 눈 맞춤을 플랫메이트 B의 생일 축하 자리에서 배웠다. 다 같이 "살루테(Salute)"를 외치고 한국에서 늘 하던 대로 둘러앉은 사람의 한가운데로 손을 뻗어 잔을 부딪치고 입에 가져가려는데 오른쪽에 앉은 B가 어깨를 톡톡 치더니 와인잔을 내밀었다. 팅- 소리가 나게 와인잔을 부딪치자마자 "오우, 노우. 우리 다시 하자. 잔을 부딪칠 때는 서로의 눈을 바라봐야 해. 이건 정말 중요한 거야." "이게 다시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야?" "응. 눈을 바라보지 않으면 상대방은 평생 연애도 결혼도 못한대." "헐, 진짜야?" 다들 진짜라고 큭큭 웃으며 이야기하는 통에 이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친구의 앞 길을 막을 수는 없으니 일단 믿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손으로는 잔을 부딪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눈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손을 얼마나 뻗어야 잔을 깨뜨리지 않고 부딪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살루테"를 외치고 B의 눈을 바라보며 잔을 든 손을 아주 조금 내밀자 B는 웃으며 나보다 손을 더 내밀어 내 잔에 부딪쳤다. 그리고 왼쪽에 앉은 소냐와도 눈을 마주치며 건배했다. 식탁에 둘러앉은 다른 사람들과도 '리모컨' 건배를 했다. 오른손으로 와인잔을 들고 한 명씩 눈을 마주쳤다. 아주 조금은 어색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이렇게 지긋이 바라본 게 얼마만일까 생각해본다.


이탈리아에 오고 나서 이제는 낮에도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풍요로운 마음을 갖췄지만 와인에 대해서 아직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더 기분 좋게 마시는 방법은 알 것 같다.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를! 와인을 더 달콤하게 하는 것은 바로 서로를 향한 눈맞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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