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지 Nov 17. 2019

인사에 담겨있는 것들


인사는 서로 주고받는 것


우리는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가서 점원을 부를 때 사장님, 저기요, 이모, 여기요 등을 사용한다. 그중 이탈리아에서 쓸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저기요" 대신 쓸 수 있는 영어 표현인 "익스큐스 미(Excuse me)"를 사용했다. 물건을 사기 위한 장소니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저기요"하고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익스큐즈 미라고 이야기하면 가게 주인들은 항상 다른 말로 대답했다. 본 죠르노부터 보나세라, 살베(Salve) 등등 다양한 인사말이 돌아왔다. 보통 가게에 들어가면 가게 주인이 손님에게 "안녕하세요"나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하니까 여기도 그러려니 했다.


이탈리아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한참 자신감이 차오르던 어느 날, 친구 생일선물을 사러 악세사리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 주인은 카운터에서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나는 발음을 연습할 생각으로 "익스큐즈미"대신 "보나세라"라고 인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침부터는 본 죠르노(Buonjourno), 늦은 오후부터는 보나세라(Buonasera)라고 저녁 인사를 한다. 그런데 내가 이탈리아어로 인사하자 직원이 내게 이탈리아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 대충은 알겠는데 정확한 뜻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서툰 이탈리아어로 "죄송한데, 영어로 부탁드립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직원이 깜짝 놀라며 영어로 이야기했다. "이탈리아어 할 줄 아는거 아니예요?""엄청 조금이요.""아, 난 또. 이탈리아어로 인사하길래 이탈리아어를 하는 줄 알았어요. 관광객들은 보통 인사를 안 하거나 헬로(Hello)라고 짧게 이야기하거든요. 혹은 익스큐즈미라고 하죠." 나는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중이라고 덧붙여 대답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 선물을 사서 가게를 나왔다. 우리도 한국어를 쓰는 외국인을 보면 왜 한국어를 배우는 지 궁금하기도 하고 더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지는 것처럼 이들도 서투른 이탈리아어를 쓰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모양이다.


가게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이 간단한 방법이 가게 주인이 현지인과 관광객을 구분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가게나 식당에 갔을 때 인사를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인사는 내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내는 돈에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인사는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즉,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사람을 만나서, 사람을 통해야지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을 부르는 "저기요" "익스큐즈미"가 아니라 사람을 만날 때 하는 인사가 필요한 것이다. 가게 직원도 인사를 하고 나도 인사를 하는 곳, 가게는 만남이 일어나는 공간 중 하나일 뿐이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는 사람을 만날 때도 인사를 하고 처음 보는 사람하고도 인사를 한다. 식당에서는 물론 가게에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빠지지 않고 인사를 꼭 한다. 대중교통이 있는 지역에서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버스 기사와 인사를 한다. 이곳 사람들은 인사가 일상인 사람들이다. 인사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금새 친구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동안 이탈리아 사람들이 불친절하다고 느낀건 나는 인사를 하지 않으면서 받기만 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의 인사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친한 사람들하고 인사할 때는 


베네치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산마르코 광장에서 카페에 앉아있는 여행자들을 바라보곤 했다. 산마르코 광장 가게들은 비싸니까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냥 여행 온 것 같은 분위기만 내는 나만의 방법이다. 테이블에 중년 부부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멀리서 손을 들어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는 테이블로 걸어오더니 앉아있던 부인을 가볍게 안으며 볼에 뽀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옆에 있는 남편을 두고 부인에게 뽀뽀를? 그러더니 남편에게도 똑같이 볼에 뽀뽀를 해줬다. 놀라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래졌다. '이게 이탈리아에서 인사하는 방법이구나.'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 뽀미언니와 함께 부르던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질 땐 또 만나요 뽀뽀뽀'는 이탈리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친구를 만나면 껴안으며 볼뽀뽀로 인사를 나눴다. 거리마다 사랑이 넘쳐났다.


내가 직접 이탈리아식 인사를 했던 건 베네치아에 온 지 한 달 만에 구한 집에서였다. 나랑 같이 사는 친구들은 4명으로, 베네치아에 있는 카 포스카리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이탈리아 각지에서 온 친구들이다. 처음으로 같이 저녁을 먹고 부엌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발렌티나가 졸리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한 명 한 명에게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자 내 볼에도 입을 맞췄다. 서로 뺨을 맞대고 "쪽!"하고 입 맞추는 소리만 내는 줄 알았는데 발렌티나는 진짜 뽀뽀를 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살짝 놀란 나는 입 맞추는 소리는 못 내고 잘 자라는 말만 했다. 얼떨떨하면서도 친근감의 표시라고 생각하니 고마웠다. 그 친구에게 나는 이탈리아 사람도 아닌 타지에서 온 이방인인데 말이다. 그 뒤로 발렌티나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잘 자라고 인사한 뒤 볼에 뽀뽀를 해줬다. 신기하게도 매일매일 사랑받는 기분이다. 발렌티나가 부모님 댁에 가고 없을 때는 뭔가 허전하다고나 할까?


나는 누군가와 만났을 때보다 헤어질 때 볼뽀뽀를 더 많이 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갈림길에서 헤어질 때, 친구네 집에 초대받아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올 때 등등. 내 친구는 통화를 하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지게 될 때면 손 키스를 날려준다. 이렇게 헤어질 때 볼뽀뽀를 하고 헤어지면 뭔가 내 안에 도장이 찍힌 채로 남아있는 기분이다. 그리고는 집에 갈 때까지 볼에 남은 따스한 온기가 나를 지켜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인사에는 다정한 눈빛이 담겨있다.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수많은 우연이 겹쳐 내가 당신을 만났다는 눈빛. 그들의 키스에는 반가움과 애정이 담겨있다. "보고 싶었어" 혹은 "보고 싶을 거야"라는 말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오늘 하루도 내가 받은 따뜻한 인사들을 떠올려본다. 잘 자요, 보나노떼(Buona notte)!


이전 01화 당신도 이탈리아가 무서운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