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한테 총 맞아요!
이탈리아에 가봤든 가보지 않았든 이탈리아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여러 가지 소문에 대해 익히 들었다. 소문들에 따르면 내가 상상했던 이탈리아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매우 불친절하며 가는 곳마다 더럽고 냄새나는 나라였다. 음식도 그저 그렇다고 했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먹는 파스타가 더 맛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도시마다 중앙역은 왜 그렇게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앙역이 위험하면 대중교통으로 다니지 말라는 뜻인가? 그럼 차를 빌려서 다니면 어떨까 고민하던 찰나, 운전을 진짜 뭐 같이 한다는 말도 덧붙여준다. 특히 영화 <대부>를 본 사람이라면 이탈리아를 더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영화 <대부> 보니까 이탈리아에 마피아 있던데! 나폴리에 가서 잘못하면 총 맞는다고 하더라. 나는 이탈리아 여행은 절대 안 갈 거야."
앞으로 이탈리아에 가서 살아야 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소문들을 듣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국제기구에 합격해서 드디어 그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이탈리아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혼자 이탈리아에 가는 거 안 무서워? 어우, 나는 너무 무서운데." 나에게 흉흉한 소문을 들려준 사람들은 본인이 이야기하고 본인이 더 겁에 질린 표정이다. 그냥 소문일 뿐이겠지 하면서도 점점 소문을 믿게 되었다. 짐을 챙기면서도 "가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출국 전날 엉엉 울며 못 가겠다고 주저앉고 말았다. "나 못 가겠어. 안 갈래. 흐엉엉."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오늘 비행기표를 취소하면 수수료가 얼마냐고 물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그날 밤 가족들과 친구들의 단호하고 따뜻한 격려(?)로 마음을 다잡고 밤새 짐을 챙겨 베네치아로 떠났다.
그런데 새벽 열두 시에 도착한 베네치아에서 마주한 광경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 들었던 소문대로 으스스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베네치아 바로 옆에 맞닿아 있는 메스트레 기차역에 내린 순간 알 수 없는 스산한 느낌이 몰려왔다. 긴장한 탓에 입안이 바싹 말라왔다. 양손에 캐리어를 끌고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지나 도착한 호텔은 입구가 굳게 닫혀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호텔 입구를 쾅쾅 두드렸다. 호텔 직원과 오랜 실랑이 끝에 겨우 호텔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음날 베네치아 섬 안쪽으로 짐을 옮기는 데 핸드폰도 안 되고, 길 찾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베네치아에 온 지 이틀 만에 "나 여기서 살 수 있을까?"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알고 보면 다정한 사람들
나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입국하고 일주일 뒤 바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현지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이곳이 소문 그대로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라도 말이다.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에 어딜 가나 '정신 차려야지!'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체류 허가를 받기 위해 각종 관공서를 들락날락했고 틈틈이 집을 구하러 다녔다. 준비할 서류도 많다 보니 몸과 마음은 24시간 긴장한 상태였고 나에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압박감이 느껴졌다. 끼니도 조각 피자나 케밥으로 대충 때웠다. 그런데 점점 출근하는 날이 다가오고 집을 구하지 못하자 직감적으로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곳에 와서 현지 문화를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편견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던 것이다. 베네치아에 살려고 온 거니까 경계 태세로 주위를 둘러볼 게 아니라 이들의 문화에 물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위험한 곳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살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또한 현지인처럼 생활하는 방법이 나에게 실질적으로 이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우선, 집을 계약하고 물건을 사는 데 사기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탈리아어를 모른다고 무시당하고 싶지도 않았고, 인종차별을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걱정과 생각들 다 내려놓고 한번 경험해보자고 다짐했다. 굳게 닫아뒀던 빗장을 열고 바라보니 현지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들은 정말 친절했다. '왜 이렇게 잘 도와주지?' 작게는 길을 알려주는 사람부터 집을 구하는 데 도와준 사람까지,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해서 그렇지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든 내게 도움을 줬다.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본 내가 부끄러웠다. 처음엔 나의 이득을 위해 이들을 이해하려고 했던 나는 점점 이들의 문화에 빠져들었다. 문화를 좀 더 흠뻑 느껴보고 싶어서 새로운 것들에 많이 도전했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태어나서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에스프레소를 마셨으며, 한국에서는 거의 먹지 않았던 아이스크림과 생선 요리를 좋아하게 됐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한다.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우리는 낯선 것을 두려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와보고 직접 경험해보면 별거 아닌데 말이지.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단면만 보고는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은 아닐까. 마치 동굴 속에서 벽면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겁을 먹었던 네안데르탈인처럼 말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는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한다.'는 구절이 있다. 나의 편견 역시 내가 베네치아를, 그리고 더 크게는 이탈리아를 사랑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점점 더 베네치아에 푹 빠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애매모호한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다. 현지인도, 관광객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서있는 사람. 현지인에게는 외국인인데 그렇다고 관광명소에서 지갑을 여는 관광객도 아니니 말이다. 현지인처럼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현지인이 되지 못한 사람. 그리고 실상은 그때그때 마주친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날은 현지인인 척하다가 어떤 날은 관광객인척도 하는 '현지객인'이다. 가게나 식당에서 이탈리아어를 연습한답시고 느릿느릿 이탈리아어를 쓰다가도 나를 무시하거나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알파벳 'r'을 굴려가며 영어로 이야기하곤 한다.
때문에 내가 베네치아와 이탈리아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지인과 관광객 중간지대에 서있는 사람으로서 이탈리아에서 관찰한 것들을 그려내고자 한다. 지난날의 나처럼 이탈리아를 여행하기가 무서운 사람들이 있다면 오해를 해소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이탈리아 여행, 특히 베네치아 여행을 앞둔 사람들은 여행 중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멀리까지 여행 와서 사진 남기는 것 이외에도 내가 느꼈던 다채로운 것들을 함께 느끼면 좋겠다. 더불어 이탈리아의 문화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